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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역사 – 1980년대 한국의 자동차

1970년대 중반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자동차 산업이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 1980년대는 신군부 국보위가 주관한 중화학분야 투자조정조치에 이은 81년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 소위 자동차공업 통, 폐합 조치로 인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이 오히려 후퇴한 시기였다. 하지만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이 이 땅에서 치러지고, 87년과 88년에 단계적으로 수입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국산 및 외산 자동차의 보급이 크게 확대되었고, 국산 자동차의 경쟁력 강화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1980년대 자동차 산업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80년에 발표된 투자조정조치의 개정판으로 1981년 2월 발표된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를 들 수 있다. 승용차와 픽업은 현대와 세한이, 1~5톤 트럭 및 미니버스는 기아가, 소방차, 탱크로리 등 특장차는 동아, 방위용(군수)차는 아시아가 생산을 맡는 다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현대와 세한은 트럭과 버스를 만들 수 없고, 기아는 승용차를 포기해야 했다. 기아의 2륜차 부문은 대림이 인수했다. 자유 경쟁 대신 과다 경쟁 방지를 위한 계획 경제인 셈이다. 아울러 기아와 동아를 통합한다는 방침이었으나 결국 82년에 통합이 무산되면서 특장차 부문 일부는 자유 경쟁으로 돌리게 됐다.

이 조치는 외국 제품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높으면 발전시키고, 불리하면 없앤다는 경제 이론상의 비교 우위론에 근거한 조치였지만 종합적인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시행되다 보니 선행된 막대한 투자를 포기해야 했고, 경쟁으로 인한 발전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70년대 후반 불어 닥친 석유파동의 여파와 신군부 출현 등 대내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80년대 초반 급감했던 내수는 82년 이후 되살아나 자동차 판매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1981년 등장한 기아 봉고 코치 신문광고

1981년 등장한 기아 봉고 코치 신문광고

1981년 신진이 (주)거화로 이름을 바꾸었고, 기아는 누적된 적자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김상문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고 김선홍 사장이 기아를 맡게 되었다. 승용차 생산이 중단 된 기아는 80년에 선보인 봉고 트럭에 이어, 승합차 봉고 코치와 봉고 3밴을 내놓으며 봉고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이 해에는 부산과 마산을 잇는 부마고속도로가 개통됐다.

1982년에 현대는 포니2 1.2, 1.4와 뉴 그라나다를 내 놓았고, 새한은 제미니를 개선한 맵시 1.5를 선보였다. 거화는 9인승 지프를 내놓았다. 대우에 흡수되었던 새한은 1983년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자동차 생산 및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해 판매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새한 맵시

새한 맵시

북미 시장으로의 한국 자동차 수출은 1984년 현대가 캐나다에 진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포니와 그 후속 모델 엑셀에 이어 스텔라가 차례로 캐나다로 수출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6년 1월 엑셀 1,050대가 울산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고, 2월 중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에 상륙하게 되었다. 엑셀은 그 해 말까지 16만 8천대가 판매 돼, 포춘지가 선정한 미국 10대 상품에 오르는 등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현대 엑셀

현대 엑셀

미국에서 성공 신화를 쓴 현대 엑셀은 1995년 포니2의 후속으로 등장했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앞바퀴굴림 방식이 적용된 모델이다. 5도어 모델은 엑셀, 4도어 세단은 프레스토로 이름이 붙여졌다. 95년에는 스텔라에 2천cc 엔진을 얹은 1세대 소나타도 등장했다. 그리고 그 해 5월 7일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현대 1세대 소나타

현대 1세대 소나타

1986년 1월 20일 현대자동차는 생산누계 100만대를 돌파하였고, ’86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공식 자동차 공급업체로 선정되었다. 7월 24일에는 미쓰비시 데보네어를 들여와 생산한 그랜저가 출시되었다. 처음에는 2천cc 시리우스 MPI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되었고, 후에 2,400cc 시리우스 MPI 엔진과 4단 자동변속기 등도 추가되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V6 3.0 모델은 1989년 9월에 추가되었다.

현대 그랜저

현대 그랜저

1986년에는 그 외에도 현대가 승합차 그레이스를 선보이면서 봉고의 뒤를 이어 같은 해 등장한 기아 베스타와 경쟁 구도를 이루었고, 대우는 GM과의 월드카 프로젝트로 탄생한 르망과 3도어 모델 르망 레이서를 선보였고, 로얄 프린스 1.5와 로얄살롱 수퍼를 라인업에 더했다.

대우 르망

대우 르망

쌍용은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하고, 1988년에 쌍용자동차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신진자동차 공업이 1974년 미국 AMC와 합작으로 신진지프를 설립하였다가 사명을 신진자동차로 변경하였고, 78년에는 AMC가 지분을 철수하고, 81년 사명을 거화자동차로 변경한다. 86년 동아자동차가 거화자동차를 흡수하였고, 다시 쌍용자동차가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것이다.

쌍용 자동차의 주력 모델인 코란도는 1969년 미국 Kaiser사의 지프 CJ-5를 라이센스 생산한 신진지프가 그 효시이며, 이후 계속 계량을 거쳐 CJ-7 지프에 이르렀다가 거화자동차 시절 지프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되면서 1983년 3월부터 코란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96년 뉴 코란도가 등장하면서 단종되었다.

거화 코란도

거화 코란도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가 해제되면서 다시 승용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기아자동차는 1987년 3월 포드와 월드카 프로젝트로 개발한 프라이드를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중형차 시장에서는 마쓰다 카펠라를 베이스로 개발한 콩코드를 10월에 선보여, 현대 쏘나타와 대우 로얄 프린스에 대항했다. 콩코드는 출시 당시 2.0 SOHC 엔진으로 최고출력 99마력, 최대토크 17.0kg/m를 발휘했으며, 수동 5단과 자동 4단 변속기를 장착했다.

기아 콩코드

기아 콩코드

1987년에 2천cc 이상의 외제차 수입이 허용된 데 이어 1988년 2천cc 이하 외제차까지 수입이 완전 허용되면서 외제차 수입 자유화 시대가 열렸다.

1988년 6월 현대는 2세대 쏘나타(Y2)를 선보였고, 대우는 르망 펜타 5(5도어)를, 쌍용은 코란도 패밀리를 선보였다. 12월에는 국내 자동차 연간생산량이 100만대를 돌파하면서 전국 자동차 보유대수도 200만대를 넘어섰다.

현대 쏘나타 (Y2)

현대 쏘나타 (Y2)

1989년에는 엑셀 수출누계 100만 대를 돌파한 현대가 캐나다 브로몽에 국내 자동차 메이커로는 처음으로 해외생산공장을 설립했다. 현대는 1세대 엑셀과 달리 곡선을 강조한 뉴 엑셀과 그랜저 3.0 V6 모델을 내놓았고, 기아는 캐피탈을 선보였으며, 수입자유화에 발맞춰 포드의 세이블을 들여와 기아 세이블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우는 수입차 개방에 대비해 임페리얼 3.0을 선보였다.

현대 스쿠프

현대 스쿠프

1990년 현대는 뉴 엑셀 3도어와 5도어, 스쿠프, 엘란트라를 선보였고, 기아산업(주)은 기아자동차(주)로 이름을 바꾸고 프라이드의 세단형 모델인 프라이드 베타를 출시했다. 대우는 첫 고유모델인 에스페로를, 아시아는 군용 지프를 민수용으로 개조한 록스타를 선보였다. 그 해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300만대를 돌파했다.

대우 에스페로

대우 에스페로

About 박기돈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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