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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역사 – 1930년대 자동차

<위대한 개츠비>의 1920년대가 끝날 즈음 세계는 충격적인 대공황에 빠지게 된다. 1929년 10월24일. 주식시장 개장과 함께 폭락하기 시작한 주가는 5일 뒤 또 한차례의 폭락으로 1930년대를 공황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후 4년간 실업률은 20%를 웃돌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을 이루던 경제는 급격히 추락했다. 자동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롤스로이스와 같은 고급차 시장은 꾸준히 유지됐지만 대중화가 시작된 자동차 시장에서는 새로운 방향이 필요했다. 차를 보는 소비자의 눈은 깐깐해졌고 성능 외에도 공간활용, 가격, 브랜드의 신뢰성까지 꼼꼼하게 따지게 됐다.

불황의 여파로 자동차 업계는 모터스포츠까지 영향을 받았다. 1920년대 생겨난 이탈리아의 밀레 밀리아, 프랑스의 르망 24시간 경주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독자적인 경주차를 만들고 이를 양산차에 적용하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에 양산차를 바탕으로 경주차를 만드는 방식도 이때 등장했다. 특히, 무솔리니 정권의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 스포츠카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경제 대공황의 시대 1930년에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이 탈 수 있는 스포츠카가 늘어났다.

Jubilaeumsmagazin Historie
자동차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도 정부 차원의 투자를 시작했다. 모터스포츠에도 독일의 레이싱카가 맹위를 떨쳤으며 이따금 이탈리아의 알파 로메오를 비롯한 스포츠카가 등장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독일은 정부차원에서 국민차를 만들기도 했다. 1938년 히틀러의 주문을 받은 페디난드 포르쉐 박사는 ‘비틀’이라 불리는 ‘폭스바겐 타입 1’을 제작한다. 당시 인기를 끌던 유선형 차체를 도입했고 엔진은 마치 복싱 선수가 주먹을 주고받듯 피스톤이 좌우로 움직이는 수평 대향형 4기통 엔진을 장착했다. 1932년에는 지금의 아우디가 된 ‘아우토 유니온’이 설립된다. 경제불황으로 휘청거리던 독일 자동차 업계의 반더라, 호르히, 데카베, 아우디가 통합해 한 회사가 됐다. 지금은 벤츠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BMW가 이즈음 첫 차를 내놓는다.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시작한 BMW는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다 1929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다. 1932년 3/20 AM-1을 첫 차로 내놨고 1934년에는 지금과 비슷한 콩팥 모양의 일명 ‘키드니 그릴’을 선보였다. 이어 1936년에는 BMW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스포츠카 328을 내놓는다. 덕분에 유럽 스포츠카 경주는 BMW의 독무대가 된다.

1930년대 후반기에는 경기 회복과 함께 자동차 산업이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다름슈타트를 잇는 아우토반 착공에 들어갔고, 이미 많은 도시에는 포장된 도로가 깔렸다. 자동차들은 도로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모터스포츠의 기술이 적용된 소위 ‘스포츠카’가 도로에 등장하면서 고속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차가 늘어난다. 유럽에서는 일반인들도 파리에서 몬테카를로나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 달리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즐기게 됐다. 더불어 장거리 투어를 위한 이른바 GT카도 등장하게 된다.

1930년대는 불황이었지만 세계 각국의 자동차 산업은 발전하게 된다. 미국은 1931년에 자동차 생산 5000만대를 돌파했고 1935년에는 오클라마시에 주차요금 미터기도 등장한다. 1937년 일본에서는 도요타 자동차가 설립된다. 원래 직물 공장이던 도요타는 이때 ‘자동차 부’를 만들며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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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러 트럼프 쥬니어, 193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두고 있던 아들러가 제작한 소형차다. 995cc의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속도 92㎞/h를 냈다. 폭스바겐 ‘타입 1’ 이전의 원조 ‘국민차’인 셈. 2차 세계대전 때 까지 무려 10만대 이상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5ℓ와 1.7ℓ 급 엔진을 탑재했던 ‘아들러 트럼프’의 소형차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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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 로메오 티포 타입B, 1932년
이탈리아 정권의 도움을 받으며 급성장한 브랜드 알파 로메오의 역장이다. 비토리오 야노를 디자이너로하고 엔초 페라리를 팀 책임자로 앉히며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알파 로메오가 이 차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독일차를 제쳤다. 2650cc 직렬 8기통 엔진에 최고속력은 225㎞/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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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타입 1(비틀), 1938년
아돌프 히틀러의 주문을 받은 페디난드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국민차’다. 값싸고 내구성이 좋을 것이 주문 조건이었다. 1938년 선보인 이 차는 2003년까지 약 2153만대가 생산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다. 폭스바겐은 이 차를 ‘타입 1’이라고 불렀지만 마치 딱정벌레처럼 생겼다고 해서 ‘비틀’이란 애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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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W 328, 1936년
자동차를 생산하는 신생업체 BMW가 야심 차게 내놓은 기대작이다. 등장하자마자 독일 뉘른부르크링에서 열린 2.0ℓ급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328은 100차례 이상 경주에서 우승하며 BMW의 이름을 알리고 독일차의 자존심을 지키는 큰 역할을 한다. 지금은 BMW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전방의 키드니 그릴이 이 차에서부터 시작됐다.

사진5_롤스로이스 팬텀2
▲ 롤스로이스 팬텀2, 1930년
당시에도 최고급 자동차를 생산하던 롤스로이스가 1929년부터 1936년까지 1680대를 생산한 고급차다. 사진의 차는 1931년 롤스로이스 팬텀2 컨티넨탈 스포츠 살롱으로 당시의 화려함을 그대로 담고 있다. 7668cc의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최고속도는 145㎞/h에 이르렀으며 거대한 차체의 화려함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성능까지 갖춘 고급차였다.

사진6_메르세데스벤츠 260d
▲ 메르세데스 벤츠 260D, 1936년
당시 트랙터나 대형 트럭 일부에만 사용하던 디젤엔진을 벤츠는 승용차에 집어넣었다. 열효율이 가솔린 엔진보다 좋고 토크가 높았지만 소음과 진동은 승용차와 어울리지 않았다. 2545cc, 직렬4기통의 디젤 엔진으로 최고속력 97㎞/h를 냈다. 대중적으로 판매되진 않았지만 미래 디젤 승용차의 원조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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