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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미니멀리즘의 정수, 피아트 500 컬러 플러스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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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는 조금 주춤하지만, 2000년대 레트로 디자인 열풍이 자동차 업계를 휩쓸었던 시기가 있다. 폭스바겐이 비틀을 패션 카로 부활시키고 BMW가 미니를 사들여 현대적 디자인을 입히면서 시작된 열풍은 이윽고 머스탱, 카마로, 챌린저 등 미국 머슬카로 번졌고, 세계적으로 과거 성공적이었던 모델을 21세기에 되살리는 노력이 이어졌다.

자동차의 헤리티지 축적 면에서 레트로 디자인은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과거로부터 일관되게 이어져 내려오는 디자인 큐는 모델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하게 만들고, 새로움에 지친 이들이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쉬어 갈 여유를 준다. 수십 년 전의 흑백 사진에서 튀어나온, 그러나 영화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변신한 자동차들은 보다 특별한 것을 원하는 젊은 세대는 물론 과거의 향수를 기억하는 오랜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에도 좋은 방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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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의 A 세그먼트 해치백, 500(이탈리아 어로 ’500′을 뜻하는 친퀘첸토라고도 불린다)은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국민차, 누오바 500(Nuova 500)에 대한 오마주로 탄생한 시티 카다. 한국에서는 썩 인기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수입 초기에 비하자면 상품성이 대폭 개선되고 가격도 많이 내려가 이제는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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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오바 500은 폭스바겐 클래식 비틀, 시트로엥 2CV, 클래식 미니 등과 함께 대표적인 유럽의 소형 올드카로, 누적 389만 대 이상이 생산되며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이탈리아의 도로에서는 심심찮게 누오바 500을 만날 수 있고, 이탈리아의 여행 기념품점에서 500의 다이캐스트나 사진도 흔히 볼 수 있다.

‘누오바’는 영어의 ‘new’에 해당하는데, 그 이유는 이전에도 500이라는 모델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토폴리노(생쥐)’라 불리는 최초의 500 역시 1936년부터 1955년 까지 52만 대가 팔린 히트작이었고, 이 것이 4기통 600cc 엔진을 얹은 600과 2기통 500cc 엔진을 얹은 누오바 500으로 갈라졌다. 누오바 500 단종 이후에 피아트의 소형차 라인업은 126으로 이어졌고, 그 뒤에도 1991년 친퀘첸토라는 이름을 부활시킨 적 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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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오바 500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뭘까? 이동을 위한 필요충분의 공간과 성능을 갖춰 경제적이며 실용적이라는 점이 컸을 것이다. 이를테면 미니멀리즘의 미학이라 해 두겠다. 더욱이 고건물 사이를 지나는 좁은 길이 많은 이탈리아에서 굳이 거추장스러운 대형차를 탈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양철 로봇을 연상시키는 순진무구한 표정과 유려한 곡선 디자인은 예술적 감각이 넘치는 이탈리아에 잘 어울린다. 지금까지도 누오바 500이 베스파 스쿠터와 함께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클래식 이동 수단으로 손 꼽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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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부활한 500 역시 그런 누오바 500의 설계 사상과 아이덴티티를 충실히 따랐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실용성을 갖추되 앙증맞은 디자인 특징들은 살려 냈다. 현대적인 설계에 맞춰 차체 뒷편에 있던 엔진을 앞으로 옮겨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 그나마 가장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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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부에서는 동그란 두 개의 눈과 그 아래 보조개같은 차폭등 및 방향지시등, 웃는 모습의 범퍼 하단 에어 덕트가 전반적으로 귀여운 인상을 보인다. 특히 클래식 500을 연상시키는 엠블렘 주변의 크롬 장식이나 불룩 튀어나온 범퍼의 형태는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진한 사이드 캐릭터 라인과 크롬 사이드미러 커버도 이색적이다. 벌써 선보인 지 8년이나 된 디자인이지만, 아직도 신선하고 질리지 않는 점도 레트로 디자인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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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또한 크롬으로 감싼 테일램프 형상과 범퍼의 크롬 몰딩이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에 컬러 플러스 에디션에 추가된 멀티 스포크 타입 16인치 휠 역시 근사하다. 흔히 외관 디자인에 크롬을 많이 쓰면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지만, 복고풍의 500 만큼은 예외다. 적절한 크롬 장식이 500만의 복고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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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500은 소형차를 위해 개발된 피아트 미니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데, 피아트 판다와 같은 그룹 산하의 란치아 입실론은 물론, 포드 카(Ka)와도 플랫폼을 공유한다. 전장*전폭*전고는 3,550*1,640*1,555(mm)에 휠베이스는 2,300mm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차와 비슷한 크기인데, 전장과 전고는 경차 규격을 충족하지만 전폭이 경차 규격을 40mm 초과한다. 참고로 500은 국내에 정식 시판 중인 양산 승용차 중 스마트 포투와 다음으로 전장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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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만으로 사랑에 빠지기에는 이르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 탄성이 나온다. 베이지와 브라운 투톤 가죽 시트, 베이지 톤으로 정리된 신선한 인테리어는 클래식 스쿠터의 유선형 바디를 연상시키는 외장 컬러의 대쉬보드에서 절정에 이른다. 옛날 냉장고 손잡이를 닮은 크롬 도어 핸들조차 재치가 넘친다. 500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미소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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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기에 예쁘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우선 시트 포지션이 SUV 뺨치게 높다. 시트고를 최대한 낮췄음에도 키 180cm의 기자의 경우 머리가 루프에 닿았다. 게다가 페달을 밟기 수월하게 시트를 뒤로 밀자 텔레스코픽을 지원하지 않는 스티어링 휠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 어쩔 수 없이 벌 받듯(?) “앞으로 나란히” 한 채로 시승해야 했다. 보기에 깜찍한 원형 헤드레스트도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썬루프의 햇빛 가리개는 거의 햇빛을 가리지 못해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정수리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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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단점들을 용서할 만큼 예쁘니까. 외모지상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이 귀여운 차와 함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포용력이 생긴다. 디자인이 근사한 제품을 쓰면서 번거로운 점들을 사소한 문제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예쁜 물건을 찾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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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나름대로 필요한 편의사양들이 잘 갖춰져 있는데, 디스플레이는 없지만 블루투스 스트리밍과 핸즈프리 기능도 내장돼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오직 음성 인식 기능으로만 연결할 수 있다는 점. 왜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채택했는 지는 알 수 없다. 이탈리아 감성이라고 애써 믿어야 한다. 반면 풀 디지털 방식의 계기판 클러스터는 최첨단 분위기라 클래식한 실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왠지 500같은 차에는 흰색 바탕의 고전적인 바늘식 클러스터가 더 어울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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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이 짧은 편이라 뒷좌석은 국산 경차보다도 좁다. 성인 남성 세 명 이상이 타야 한다면 ‘가위 바위 보’ 내기에서 진 사람이 뒷좌석에 앉으면 된다. 반면 C필러가 누워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은 제법 여유가 있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면 50:50으로 폴딩되는 뒷좌석을 눕혀 트렁크 용량을 759L까지 늘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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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500은 고성능 버전인 아바르트를 제외하더라도 북미와 유럽에서 다양한 엔진이 탑재된다. 그 중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북미 사양인 1.4L 직렬 4기통 멀티에어 엔진. 최고출력 102마력에 최대토크는 12.8kg.m으로 경차급인 차체를 생각하면 나름 넉넉한 제원상 성능을 내는 셈이다. 다만 소형차 시장에서도 디젤 엔진이 강세를 보이는 만큼, 유럽에서 탑재되는 1.3L 멀티젯 디젤 엔진을 탑재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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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귀여운 차에 출력이 넉넉한 엔진. 이 얼마나 이상적인 조합인가? 그런데 막상 실제로 주행에 나서면 동력성능이 썩 인상적이지는 않다. 6단 자동변속기의 반응 속도는 나쁘지 않지만 엔진 성능이 제원 상의 수치에 못 미친다는 느낌이 강하다. 요란한 엔진 사운드가 무색하게 가속이 더디다. 오히려 두 자릿 수 출력을 내는 국산 경차들보다 못하다.

게다가 11.8km/L에 불과한 복합 공인 연비는 웬만한 국산 중형차보다도 못한 것이다. 복합 실연비는 그보다도 나쁜 10km/L 정도를 기록했다. 과연 이 엔진이 최선이었을까? 다시 한 번 연비 좋고 토크가 넉넉한 디젤 엔진이 아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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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에 대한 불만을 뒤로 하고 차의 거동을 살펴보면, 높은 차고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션의 움직임은 퍽 만족스럽다. 고속 안정성도 수준급이고 부드러움과 탄탄함이 절묘하게 분배돼 있다. 휠베이스는 짧고 트레드가 넓으니 작은 코너에서 이리 저리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재미있다. 차급에 넘치는 브레이크 성능까지 갖춰 다운힐 코스에서도 망설임 없이 속도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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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모드에서는 변속 타이밍이 뒤로 밀리면서 좀 더 극적인 주행도 가능하다. 출력이 부족한 이 엔진으로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아바르트가 손을 댄 고성능 버전들은 얼마나 경쾌할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동시에 맥없는 1.4 엔진에 대한 불만이 다시 커 진다. 북미에서 판매 중인 1.4 터보나 디젤 엔진의 도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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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말해서, 단순히 실용성이나 편의성, 주행 성능만 봤을 때는 피아트 500이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는 없다. 비슷한 크기에 더 넓고 실용적인데다 혜택도 다양한 국산 경차나 소형차, 심지어 준중형과 중형 모델까지도 넘볼 수 있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수입 모델 중에서도 조금만 더 투자하면 폴로같은 소형차를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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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500은 그 디자인 아이덴티티로부터 나오는 특유의 감성이 존재한다. 도시 어디서나 빛나는 레트로 디자인은 다른 흠결을 모두 가릴 정도로 사랑스럽고,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필수 사양들도 충분하다. 작고 좁다? 아무렴 어떤가, 혼자 또는 둘이서만 타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이미 갖추고 있다. 9박 10일 오지 캠핑을 떠나야 한다면 더 큰 차를 골라야 겠지만, 통근과 장보기, 데이트에는 부족함이 없다. 시티 카는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하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야말로 500이 지닌 미니멀리즘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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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이 소형차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적합하다고 추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상의 드라이브를 더욱 근사하게 바꾸고 싶다면 피아트 500은 최적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 처럼, 매일 다니는 도로도 개성과 멋으로 반짝이는 차와 함께라면 언제나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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