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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만난 메르세데스-AMG, 악당은 항상 멋지다

사진2-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Test Drive

자동차 업계는 바야흐로 친환경의 시대다. 이제 작은 엔진과 공기저항을 낮추는 디자인, 뛰어난 효율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가 됐다. 모든 회사들은 더 연비가 좋거나, 혹은 아예 연료를 소모하지 않는 차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고, 심지어 내연기관 종주국인 독일 의회는 아예 유럽에서 내연기관을 몰아내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자동차 제조사와 운전자들의 책임있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굉음과 함께 지축을 박차고 내달리는 스포츠카에 대한 아련한 향수는 언제가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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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차들은 내연기관 자동차를 처음 발명한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장 강력하고 빠른 친구들이다. 연료효율, 하이브리드, 전기모터같은 ”바람직한” 장치들은 애써 외면해 본다. 그것도 속도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질주할 수 있는 서킷에서 만났으니 마음 속 고삐가 풀린 것은 당연지사다.

사진1-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Presentation

메르세데스-AMG 퍼포먼스 투어는 이름 그대로 메르세데스-AMG 모델들의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세계 각지의 메르세데스-AMG 고객들을 찾아다니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소형차부터 대형트럭까지 삼각별을 달지만, 이 투어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성능인 AMG 뿐이다.

메르세데스-AMG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2010년 287대에 불과했던 판매량은 지난 해 1,688대로 늘었다. 연평균 33.2%의 성장이다. 몬스터 해치백인 A45부터 V12 바이터보 엔진을 얹은 S65까지 거의 전 라인업에 걸쳐 촘촘하게 구성된 제품 포트폴리오 덕이 크다.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도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고 있다. 이미 올해까지 3년 연속 F1 컨스트럭터 및 드라이버 챔피언을 확정지었고, 올해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서는 1, 2, 3, 4, 6위까지 휩쓸며 화제가 됐다.

사진13-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Event Sketch

그런 AMG의 여러 준마들을 만난 곳은 용인 스피드웨이. 직접 여러 차를 바꿔 타며 서킷을 달릴 수 있고, 그 밖에도 대기 시간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즐길 거리와 가족단위로 방문하는 고객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물론, 짧은 시간이니 최대한 많은 차를 경험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전에는 AMG라 하면 ”빠르지만 지루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괴물같은 대배기량 V8 엔진을 탑재했지만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안락함을 버리지 못해 날카로운 와인딩이나 서킷에서는 뭔가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브랜드를 분리해가면서까지 작정하고 갈고 닦은 노력의 결실이다. 이제 메르세데스-AMG는 평상시의 여유로움과 스포츠 주행에서의 매서움을 동시에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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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AMG들을 이전에 시승해 봤지만 서킷에서 달려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특히 소음이나 속도제한을 신경쓰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모든 차량의 드라이브 모드는 스포츠 플러스로 설정해 최소한의 제어만 허용했다.

사진6-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Test Drive

서킷 체험은 해외 전문 드라이버와 국내 인스트럭터가 함께 탑승한 선도차량 뒤로 성능에 따라 5대의 차가 줄지어 주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처음에는 코스 적응을 위해 천천히 달렸지만, 나중에는 선도차량의 페이스를 따라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높은 페이스로 주행했다.

첫 차는 A45. AMG 라인업 중 가장 작은 모델이다. 4기통 바이터보 엔진 역시 가장 작아서 배기량은 2.0L에 불과하다. 그러나 얕보지 말 것, 이 엔진은 양산 엔진으로는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2리터 엔진이다. 부분변경을 거쳐 최고출력은 381마력, 최대토크는 48.4kg.m에 달한다. 전륜구동으로 이 출력을 받아내기는 어려우니 4매틱 전자제어식 4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해 구동력을 후륜에 50%까지 밀어준다.

너무 작은 차에 너무 강한 엔진이 실려 다루기 어려울 법도 하다. 하지만 그 날뛰는 엔진의 고삐를 4륜구동 시스템이 잡아준다. 휠베이스가 짧은 해치백 바디 덕에 코너를 돌아나가는 맛은 제법 예리하다.

전륜구동 기반, 대형 터보차저 등 여러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서킷에서의 달리기 실력은 기대 이상으로 준수했다. 특히 용인 스피드웨이의 후반부 고저차가 심한 구간에서도 자세를 놓치지 않는다. 언더스티어 상황에서는 후륜에 구동력을 배분해 밀어주고, 오버스티어가 날 양이면 전륜이 재빨리 차체를 끌고 간다. 막내지만 서킷에서 V8 엔진의 형님들을 쫓아가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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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 씩 운전하고 동승하는 짧은 체험을 마치고 곧바로 다음 차로 넘어갔다. 이번 행사에 준비된 차량은 총 9종. 그 중 필자가 탑승한 것은 4종이다. 2.0L 엔진을 탑재한 A45, CLA45, GLA45 셋을 제외하면 모든 모델은 AMG가 자랑하는 V8 엔진이다.

두 번째 차는 C63S 쿠페. 아직 고객 인도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 곳에서 제일 먼저 체험해볼 수 있도록 준비됐다. 앞서 C63 세단을 타 봤으니 무엇이 다른 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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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전면부 디자인은 대동소이하고, S 클래스 쿠페와 닮은 우아한 라인의 뒷모습을 갖췄다. 실내는 낮고 비좁은 뒷좌석을 제외한다면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

하지만 서킷에 들어서니 ‘역시 쿠페’라는 생각이 든다. 코너에 들어설 때 뒷바퀴가 허둥대지 않고 재빨리 따라온다. 아무래도 쿠페형 바디이니 강성 확보 등의 면에서 더 유리하겠다. C63 세단도 이전보다 훨씬 스포티하지만 쿠페는 BMW M4같은 라이벌과 견줘도 서킷에서 지루할 틈이 없다.

최고출력은 무려 510마력, 최대토크는 71.4kg.m에 달한다. 4.0L의 ‘비교적’ 작은 8기통 엔진이지만 바이터보를 얹어 힘을 보탰다. 여기에 조합되는 MCT 7단 자동변속기는 독특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듀얼클러치 못지 않은 변속 속도를 보여준다.

사진9-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Event Sketch

같은 엔진을 프론트 미드십으로 얹고 좀 더 손을 본 뒤 트랜스액슬 방식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조합한 것이 AMG 최강의 스프린터, AMG GT S다. 엔진 성능은 동일하지만 드라이섬프 방식의 오일순환계를 마련한 것이 차이점.

AMG GT는 바로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를 휩쓴 주역이기도 하다. 최근 여러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잇달아 활약하면서 메르세데스-AMG의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앞서 AMG GT는 타 봤지만 상위 모델인 GT S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시승차는 스포일러와 고급 사양이 추가된 에디션 1. 운전석에 앉는 순간부터 가슴이 떨린다.

사진5-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Test Drive

처음 피트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긴 노즈가 적응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롱노즈 숏데크 스타일로 생각보다 스티어링 휠을 빨리 돌려야 한다. 하지만 달리기 시작하니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엔진 성능은 C63 S와 다르지 않지만 이 차는 철저히 달리기 위해 설계된 차다. 가벼우면서도 안정적인 거동은 일반적인 양산차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일반 승용차의 뒷좌석 쯤에 위치한 시트 덕에 우렁찬 배기음도 훨씬 선명하게 들린다. 가속페달을 밟아 V8 사운드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용인 스피드웨이의 중반부 긴 스트레치 구간을 지나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순식간에 속도계는 200km/h를 넘어 250km/h를 향해 솟구쳤다. 아주 약간 휘어진 길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느껴진다.

사진7-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Test Drive

눈 깜짝할 새 교차 구간을 지나 브레이킹 포인트가 다가왔고,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자 땅 속으로 꺼지듯 속도를 죽였다. 방금 전까지 고속열차만큼 빠르게 달렸던 것에 시치미를 뚝 떼고 태연하게 코너를 돌아나선다. 고저차가 심한 구간에서는 고성능 타이어조차도 종종 미끄러졌지만, 이를 엄격하게 제한하던 과거의 AMG와는 달리 가슴 철렁하는 아찔함을 맛보게 해준 뒤 칼같이 자세를 다잡고 가속한다. 어찌보면 미덥고, 어찌 보면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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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G GT S를 타고 나니 마지막 차인 CLS63은 영 심심했다. 이 날 준비된 차들 중 가장 강력한 557마력의 5.5L V8 바이터보 엔진을 얹었지만, 아무래도 이 차는 호화로운 투어러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CLS63은 직접 운전하기보다는 전문 드라이버 옆에 동승해 택시 드라이브를 부탁해보기로 했다.

이번 AMG 퍼포먼스 투어의 드라이버들은 모두 호주에서 현역 레이서로 활동 중이다. 바로 지난 주말까지 경기를 치르고 막간을 이용해 인스트럭터 활동을 하러 왔단다. 그는 세 사람을 태운 CLS63을 태연하게 가속했다.

비록 안락함을 강조한 모델이기 때문에 한계는 느껴졌지만, CLS63 역시 높은 잠재력을 지닌 모델이다. 드라이버는 종이 한 장 차이까지 차를 몰아붙이며 코너를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가속은 단호하게, 브레이킹은 부드럽게 이어지며 ‘빠른 주행’을 선보였다. 언제나 과격한 것이 빠르지는 않다. 평소 직접 주행하며 체험해보기 어려운 용인 스피드웨이의 이상적인 주행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사진5-메르세데스-벤츠 AMG Performance Tour-Event Sketch

메르세데스-AMG의 야심은 대단하다. 세계적으로 지치지 않고 늘어나는 성장세와 더불어 모델 라인업도 본격적으로 확대에 들어갔다. 우선은 AMG 63의 아래에서 데일리카와 고성능의 경계면을 담당할 AMG 43 라인업이 본격적으로 추가된다. 이미 국내에 SLC43이 출시됐으며, C450 AMG도 내년부터는 C43으로 바뀐다.

장기적으로는 보다 더 강력하고 아찔한 차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항간에서는 1,000마력이 넘는 하이퍼카를 개발 중이라는 소문도 들려온다. 너도 나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만드는 시대에, 친환경은 고사하고 더 빠른 차를 만들고 있으니 지구를 파괴하는 기계를 만드는 악당이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떠올려보자, 어린 시절 보던 만화 속에서나, 지금도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액션 영화에서나 악당은 늘 멋있었다. 강력한 힘과 야망, 악마적 카리스마를 지닌 그들은 지구를 지키는 주인공들보다 매력있다. 악당에 대한 치명적인 로망을 자극하는 차, 그것이 바로 메르세데스-AMG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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