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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X5 xDrive 40i 시승기, 디젤 SUV 시대의 종언을 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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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디젤 엔진이 만들어 진 건 1893년, 올해로부터 무려 128년 전이다. 1세기 넘는 세월동안 자동차는 물론 철도, 선박 등 인류의 운송에 지대한 기여를 해 온 디젤 엔진이지만, 2021년 현재만큼이나 디젤 엔진이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적이 있나 싶다. 철도나 선박이야 대안이 없다지만, 자동차에 사용되는 디젤 엔진은 지난 2015년 디젤게이트 이후로 사실 상의 퇴출 수순을 밟는 중이다.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배출의 주범이라는 낙인은 차치하더라도, 디젤 엔진은 배출가스 규제 장벽을 넘어서기 힘들어 지면서 가격 경쟁력을 점차 잃어 가는 추세다. 심지어 몇몇 회사들은 비전이 없는 디젤 엔진을 계속 연구하느니 전기차나 더 열심히 만들겠다며 개발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여기에 몇 년째 저유가 기조까지 이어지면서 연비가 강점이었던 디젤차들의 자연 도태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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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SUV와 RV 만큼은 디젤”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무거운 차체에 많은 사람이 타거나 짐을 잔뜩 싣고도 강한 토크로 우직하게 가속하고, 같은 이유로 나빠지는 연비를 그나마 디젤 엔진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이유가 컸다. 하지만 그나마 디젤차의 최후 농성장이었던 SUV 시장에서도 가솔린과 하이브리드가 득세하면서, 디젤차의 무대가 사라져 간다.

BMW X5 xDrive 40i는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 모델이다. 선대 모델인 3세대(코드명 F15)가 막바지 수입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M을 제외하면 디젤만 수입됐던 것과 달리, 4세대는 실로 오랜만에 가솔린 라인업을 마련했다. 넓은 공간과 호화로운 사양, 뛰어난 정숙성과 강력한 퍼포먼스까지, 프리미엄 패밀리 SUV의 미덕을 고루 갖춘 이 차는 가솔린 SUV의 높은 가치를 몸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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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40i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고가의 트림인 M 스포츠 패키지다. 편의사양 및 파워트레인은 일반 모델인 xLine과 대동소이하지만, 몇 가지 고급화 사양과 스포츠 배기 시스템,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 등이 추가됐다. 당장 눈에 띄는 차이는 외관이다. 앞·뒤 범퍼와 휠이 보다 스포티한 스타일로 꾸며졌는데, 확실히 xLine보다는 무게중심이 낮아 보이는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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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BMW 디자인 트렌드에 맞춰 라디에이터 그릴의 면적을 한껏 키웠는데, 이처럼 커진 그릴이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오히려 전체 크기는 구형보다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는 전장*전폭*전고가 4,920mm*1,970mm*1,745mm로 구형 대비 35mm 길어지고, 30mm 넓어지고, 20mm 높아졌다. 국산차 중 경쟁상대인 GV80과 비교하면 길이는 조금 짧고, 전폭은 거의 비슷하며, 전고는 더 높다. 어쨌거나 보이는 것처럼 작은 크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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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스타일링은 형님인 X7보다는 동생인 X3와 더 비슷한 분위기다. 테일램프 역시 X3처럼 각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라이트 그래픽이나 배치가 퍽 닮았다. 다만 X5의 전통인 클램쉘 테일게이트를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실용성 높은 클램쉘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정말 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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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역시 제법 화려하게 꾸며졌다. 알루미늄 테트라곤 트림이 적용됐으며, M 스포츠 패키지 답게 스포츠 스티어링 휠과 크리스탈 시프트 노브가 장착돼 멋을 더한다. 스포츠 시트가 아닌 컴포트 시트가 적용된 점은 아쉽지만, 이 차의 성격이 본격적인 달리기 지향이 아닌 스포츠성을 가미한 패밀리 SUV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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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에 비해 월등히 고급감을 더한 인테리어는 누가 타더라도 매력을 느낄 정도다. 게다가 4-존 공조 시스템, 암레스트에도 적용된 열선, 냉온조절 컵홀더, 무선 스마트폰 연결 등 편의성도 탁월하다. 1열이든 2열이든 매우 쾌적한 공간인데, 한 가지 납득되지 않는 건 2열 등받이 리클라이닝 기능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은 국산 소형 SUV에서도 2열 리클라이닝 기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1억 원이 넘는 SUV에 빠져 있다니, 더 비싼 X7을 사라는 뜻일까? 쉬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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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ine에는 7인승 모델도 있지만, M 스포츠 패키지는 5인승 뿐이다. 7명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고 싶다면 아쉽겠다만 대신 잘 정돈된 트렁크 공간을 위안 삼자. 3열 시트가 없기 때문에 트렁크 아래 트레이 공간도 약간의 수납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두 조각으로 나뉘는 클램쉘 테일게이트는 윗쪽만 열 수도, 위 아래를 모두 열 수도 있다. 이게 대수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면 제법 요긴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물건을 싣기도 수월하고, 날씨가 좋으면 간이 벤치로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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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4세대 X5 자체는 많이 소개된 모델인 만큼, 중점적으로 볼 요소는 역시 파워트레인이다. 5~8시리즈에 이르는 여러 승용 모델은 물론 X6, X7 등에도 탑재되며 검증받은 B58 엔진이다. 직렬6기통 3.0L 엔진에 싱글 터보를 더해 340마력의 최고출력, 45.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특히 이 엔진의 장점은 강한 토크다. 과거에는 8기통 자연흡기 엔진에서나 낼 법한 묵직한 최대토크가 1,500rpm부터 5,200rpm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서 골고루 뿜어져 나오니 SUV에 기대하는 ‘힘 센’ 이미지를 충족시킨다. 물론 63.2kg.m의 넘치는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30d 모델에 비하자면 좀 약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대신 75마력이나 높은 파워가 이를 만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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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주행에 있어서도 공차중량이 2.2톤에 육박하는 제법 몸집 큰 SUV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이 거구가 ‘덜덜덜’ 거리는 소리 대신 직렬6기통 특유의 매끄러운 사운드를 내며 튀어나가니 뭔가 낯설다는 느낌마저 든다. 최고속도는 243km/h, 0-100km/h 가속 시간은 5.5초에 불과하니 적어도 이 차가 힘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로 위에서는 큰 체구가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핸들링 감각이 일품이다. “역시 BMW!”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무래도 비슷한 성능을 내는 디젤 버전, X5 xDrive 40d보다 가벼운 엔진 덕일까? 이 만한 차에서 흔히 느껴지는 무게로 인한 언더스티어 성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전 세대보다도 크게 진일보한 주행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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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Drive 40i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 사양으로 장착된다. 상황에 따라 총 5단계로 지상고를 조절할 수 있는데, 일상적인 주행에서 사용하는 것은 3단계 정도다. 가장 낮은 단계는 짐을 싣거나 타고 내릴때만, 가장 높은 단계는 저속으로 험한 오프로드 주행을 할 때만 사용한다. 물론 21인치 휠에 썸머 타이어를 끼운 채로 모래밭을 달릴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SUV의 본질에 충실하게 힐 디센트 컨트롤 등 기본적인 오프로드 기능은 탑재돼 있다.

이 에어 서스펜션은 상황에 따라 제법 극적으로 태세 전환을 하는데, 컴포트 모드에서는 한 없이 편안하다가 스포츠 모드에서는 ‘M 스포츠 패키지’답게 자세를 낮추고 달릴 준비를 한다. 일상적인 시내 주행에서는 지상고를 살짝 높이고 컴포트 모드로 주행하는 것이 편하지만, 컴포트 모드에서는 아무래도 롤을 많이 허용하는 편이기 때문에 고속 주행에는 스포츠 모드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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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달리기 실력 덕분에 퇴근길이 즐거워 졌다. 뻥 뚫린 길에서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면 멋진 배기음을 즐기며 달릴 수 있다. 변속이 이뤄질 때마다 이른바 ‘팝콘’ 소리도 조금씩 들린다. “SUV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 건 반칙 아닌가?” 세단 예찬론자로선 너무 잘난 SUV가 얄밉게도 느껴지지만, 고속 코너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돌아 나가는 솜씨를 보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공인연비는 복합 8.0km/L로, xDrive 30d(10.0km/L)나 xDrive 40d(10.1km/L)보다는 조금 떨어진다. 이 정도의 재미를 즐기는 댓가다. 그래도 온 가족이 편하게 탈 수 있는 데다 100km/h를 5.5초 만에 주파하는 4륜구동 SUV라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효율은 결코 아니다. 평일보다 주말 사용 빈도가 높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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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5 xDrive 40i는 단점을 찾기 힘든 SUV다. 편의성, 거주성, 고급감, 퍼포먼스, 안락함까지 두루 갖췄다. 디젤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불쾌했던 이들이라면 정숙하고 잘 달리는 엔진도 가산점 요인이다. 손쉽게 패밀리 카로 낙점하기에는 1억 1,600만 원의 가격표가 결코 만만치 않지만, 같은 가격대의 수입 프리미엄 SUV들과 비교했을 때 이 만한 완성도와 밸런스를 지닌 모델을 고르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제는 가솔린 SUV 구입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걸 이 차는 증명한다. 부족한 견인력, 밋밋한 가속감, 처참한 연비 따위는 모두 지난 이야기다. SUV라서 운전이 지루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온 가족을 위한 안락함과 운전자를 위한 즐거움을 고루 갖췄다. X5를 사기 전, 디젤 외에도 꼭 가솔린 모델을 시승해 볼 것. 바야흐로 디젤 SUV 시대의 끝을 알리는 차를 만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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