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Home / Review / 북기은상 켄보 600 시승기, 보이지 않는 대륙의 위협

북기은상 켄보 600 시승기, 보이지 않는 대륙의 위협

kenbo05

중국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나라다. 하지만 적어도 자동차에 관한 한 중국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연간 2,500만 대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지만, 거대하기 때문에 고립된 역설적인 시장이기도 하다.

각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중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이자 쉬지 않고 높은 성장률을 보이니 너도 나도 중국인 입맛에 맞는 전용 모델까지 만들어가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반면 의욕적인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거대한 내수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전 세계에 중국산 자동차를 팔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kenbo06

현재 중국 내의 ‘완성차 업체’라고 할 만한 회사는 280여 개.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자동차 회사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켄보 600을 생산하는 북기은상기차도 그 중 하나다. 메르세데스-벤츠, 현대차 등과 합작회사를 설립한 북경기차가 모터사이클 전문 기업인 은상기차와 함께 세운 합자회사로, 지난 2010년 설립됐다.

켄보 600은 그런 북기은상기차의 수출전략차종이다. 환쑤(Huansu, 幻速) S6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모델로, 켄보(KENBO)는 남미와 중동에서 사용되는 브랜드명이다. 상용차가 아닌 승용 모델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중국차라는 데에 출시부터 많은 관심이 쏠렸다.

kenbo07

이 차의 족보를 따져 올라가면 꽤나 복잡해진다. 북경기차 그룹이 인수한 사브의 9-3 플랫폼이 이 차의 뼈대. 같은 플랫폼을 그룹 내의 세노바 X65, 보르그바르트 BX7 등 그룹 내의 SUV들이 함께 사용한다. 당장 기틀부터 허투루 만들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중국 내에서는 나름대로 럭셔리를 지향하는 모델인 만큼 디자인도 어설프지는 않다. 전면부의 크롬 장식이 시선을 잡아끌어 얼굴이 커 보이지만 사진보다 실물 쪽의 비례감이 훨씬 안정적이다. 모래시계꼴 라디에이터 그릴은 일견 렉서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kenbo09

헤드라이트 내장형 LED 주간주행등은 전 모델 기본 사양. 시승차는 2,099만 원의 상위 트림으로 HID 프로젝션 헤드라이트까지 적용됐다. 테일램프 역시 LED 타입이 기본 적용되는 등 당장 외관부터 ‘가성비’를 생각하게 만든다.

kenbo21

후면부는 번호판을 범퍼 하단에 배치하고 테일게이트 중앙에 화려한 크롬 기둥을 넣었다. 이 크롬 장식은 별로 조화롭지 못하고 부담스럽다. 그 아래 레터링도 약간 철 지난 폰트가 아쉽다. 조금만 세련되게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kenbo18

전장*전폭*전고는 4,695*1,840*1,685(mm)에 휠베이스는 2,700mm. 대표적인 중형 SUV 싼타페와 비교하자면 전장과 전고는 겨우 5mm 짧고 전폭은 40mm 좁은 수준이다. 휠베이스는 두 모델이 동일하니 제법 몸집이 크다. 휠이 작고 라디에이터 그릴의 존재감이 강한 탓인지 실제로는 차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지만, 어쨌거나 상당히 넉넉한 체급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kenbo27

개인적으로는 인테리어의 만족도가 꽤 크다. 일반적인 자동차의 ‘새차 냄새’와는 다른, 미묘하게 건강에 해로울 것 같은 냄새가 나지만, 소재감이나 인테리어의 정돈된 상태는 만족스럽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것을 빼닮은 스티어링 휠이 다소 민망하지만 만듦새가 어설프지는 않다.

kenbo22

대쉬보드 상단이나 도어트림 등 많은 부분에 플라스틱 대신 연질 소재가 쓰였고, 버튼 조작감도 괜찮은 편. 버튼의 프린트 상태나 재질은 다소 저렴한 느낌이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용서된다. 1열 시트는 좌우 모두 전동식으로 조절되며 2열 리클라이닝 기능도 기본 사양.

아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중국차=싸구려’라는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모양새다. 그나마 이질적인 것이 한국에서 추가된 것으로 보이는 코일 타입 바닥 매트 정도. 그 밖에는 전체적인 마감품질에 크게 흠잡을 부분이 없다.

kenbo15

2열 공간도 상당히 넓다. 오히려 동급인 싼타페와 비교해 봐도 2열 레그룸과 헤드룸이 넉넉하게 느껴진다. 다만 의도된 것인 지, 아니면 세단 플랫폼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수정이 미비한 것인 지 알 수 없지만  1, 2열 모두 시트 포지션이 상당히 낮아 뒷좌석의 경우 방석 부분이 붕 뜨는 느낌을 받는다. 시트 포지션을 상당히 낮추는 필자에게는 큰 문제점은 아니었다.

kenbo28

겉 보기에 나쁘지 않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직접 몇 가지 기능을 조작해 보면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 한국형 내비게이션은 원활히 작동하지만 디스플레이 바로 아래의 조작 버튼은 조작법이 불명확하다. 블루투스 연결 자체는 간단하지만 오디오 음질은 단연 역대 최악 수준. 불안정한 연결때문에 계속 볼륨이 오르락 내리락 하거나 앞이나 뒤 중 한 쪽에만 오디오가 나오는 등 엉뚱한 일이 발생했다.

그 밖에도 공조장치를 작동할 때마다 블로워 모터에서 원인 미상의 소음이 발생하는 등-다만 이것이 시승차 만의 문제인 지, 혹은 원래 그런 소음이 발생하는 지는 불명확하다- 기능들을 작동시키면 신경쓰이는 부분들이 있다. 이런 2%의 미흡함은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과제다.

kenbo11

한국에서는 디젤 SUV가 대세지만, 중국에서는 가솔린 엔진이 대세다. 특히 주행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성능을 갖춘 다운사이징 가솔린 엔진이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성능보다는 종합적인 실속을 따진다는 이야기다.

켄보 600도 마찬가지여서 1.5L 직렬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을 채택했다. 최고출력은 147마력, 최대토크는 21.9kg.m으로 배기량 대비 성능으로만 비교하면 그다지 인상적인 수치는 아니다.

kenbo19

시동을 걸면 가솔린이 무색한 우렁찬 소리가 난다. 최근에는 디젤 엔진들이 상당히 정숙해져 비슷한 배기량의 디젤 엔진과 소음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아이들링 상태에서는 디젤 엔진보다는 진동이 작지만, 회전수를 높이면 마찬가지로 디젤과 큰 차이가 없다. 가솔린의 장점인 정숙성을 살리기에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kenbo32

구동력은 네덜란드 DAF사의 자회사, 펀치 파워트레인에서 제작한 CVT를 통해 앞바퀴에 전달된다. DAF는 대형 상용차 제작으로 유명한 회사이며, 동시에 세계 최초의 실용 CVT를 발명한 회사기도 하다.

CVT 변속기는 상당히 질감이 독특하다. 정차 직전에 분리됐다가 출발하는 순간 결합되는 클러치가 변속기와 엔진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DCT나 반자동변속기 차량이 출발할 때와 비슷한 진동이 발생하며 더디게 움직인다. 클러치가 체결된 이후에도 초반 지독한 터보래그가 몰려와 시내 주행에서는 상당히 답답한 기분이다. 차라리 전기차였다면 동력성능에 대한 스트레스가 훨씬 적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kenbo16

터보 엔진에 CVT가 조합되면 가변 기어비를 활용해 터보래그를 최소화하면서 경쾌한 초기 가속을 구현할 수도 있는데, 켄보 600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세팅 노하우 부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터빈의 스풀업이 끝나면 이 때부터는 나쁘지 않은 가속감을 보여주지만, 일반적인 중형 SUV의 묵직한 가속에 비하자면 한참 부족하다. 딱 필요한 만큼의 성능이다.

이 어설픈 파워트레인 세팅은 시내 주행에서 끊임없이 운전자를 괴롭힌다. 부드러움이 장기인 CVT인데도 정차할 때마다 울컥이는데다, 재출발을 할 때면 속이 터진다. 그나마 변속기 레버를 옆으로 밀어 수동 모드로 전환하면 조금 민첩하게 움직여 주는 것을 다행이라고 할 지…

특히 오르막길이 압권이다. 경사로 밀림 방지장치가 탑재돼 있지만, 켄보 600의 시스템은 출발을 위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도 브레이크를 풀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2~3초가 다 지나야 브레이크가 풀리며 뒤늦게 출발한다. 그 때부터는 터보래그가 몰려오니 답답함이 두 배가 된다. 지금껏 이런 차를 타 본 적이 없다.

kenbo08

서스펜션은 유럽차를 따라한 흔적이 역력하다. 편평비가 높은 타이어임에도 상당히 단단하다. 좋게 말하면 단단하고, 나쁘게 말하면 신경질적이다. 요철을 고급스럽게 걸러주지 못하고 길 위를 통통 튀어나가는 고무공에 비유할 수 있겠다. 마치 10년 전의 염가형 튜닝 서스펜션 같다.

제법 단단함에도 차가 노면에 달라붙기보다는 붕 떠있는 느낌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조금 몰아붙여보니 여지없이 휘청거린다. 타이어 탓도 있겠지만 서스펜션 세팅 자체가 여타 수입차나 국산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피곤함을 감수해야 한다.

kenbo17

가만히 서 있는 켄보 600을 바라볼 때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는데, 오히려 주행을 하다 보니 아쉬움과 실망이 커진다. 파워트레인과 조향계통, 서스펜션이 모두 따로 노는 듯 하다. 2,000만 원대 엔트리 모델의 완벽한 대안일 것만 같았던 중국차의 벽이 여기서 등장하고 말았다.

저렴한 가격과 작은 배기량만 보고 사기에는 연비도 장애물이다. 공인연비는 복합 9.7km/L로 배기량과 연비 좋은 CVT 변속기를 생각하면 매우 나쁜 수준이다. 고속과 시내 주행이 뒤섞인 시승에서 누적 실연비는 9km/L에 조금 못 미쳤고 한참 시내 주행 중에는 6km/L 정도에 그쳤다. 경제성의 우위를 논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kenbo02

순수한 사적 견해를 밝히자면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짝퉁차, 형편없는 차라는 편견으로 가득했던 중국차는 어느 새 진지한 고민의 대상이 됐다.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다른 부분의 열세를 모두 만회하고자 하니 싸고 넓은 차가 필요하다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중한자동차 관계자에 따르면 완판된 초도물량 중 40% 가량이 법인차, 나머지 60%가 개인구매자라고 한다. 개인구매자 중에서도 적잖은 수가 넓은 적재공간이 필요한 개인사업자가 아니겠냐는 첨언이다. ‘저렴하지만 큰 차’라는 니치 마켓에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다.

kenbo01

물론 차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순수하게 켄보 600의 완성도를 절대적으로 비교하자면 업계 평균 이하임이 자명하고, 특히 자동차의 기본 중 기본인 주행 성능 면에서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단순히 ‘미완의 차’로 치부하고 비웃을 수 없는 것은, 이 차가 회사 설립 6년 만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짧게는 반세기, 길게는 100년이 넘는 여타 완성차 업체들을, 중국차는 유례없는 맹렬한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충돌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짝퉁 자동차를 만들던 중국이 이제는 어쨌거나 비교 대상에 오를 수 있는 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도 단돈 2,000만 원에 말이다.

kenbo03

앞으로 10년이 지났을 때도 중국차를 우습게 볼 수 있을까? 10년 전만 해도 한국 조선업이, IT산업이 중국에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많지 않았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발전속도라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더군다나 기계공학의 영역을 넘어 전장화와 전동화로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서 중국차의 잠재력은 얕볼 만한 것이 아니다.

켄보 600은 미약한 시작이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위협은 명백히 실존한다. 국산차는 물론 전 세계 자동차들은 이 미약한 시작, 보이지 않는 대륙의 위협에 긴장해야 한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