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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208 GT Line 시승기, 서울에서 즐기는 유럽 로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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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B-세그먼트에 해당하는 소형차는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없는 체급이다. 길이 좁고 주차난이 심한 유럽에서야 작고 실용적인 소형 해치백은 가장 인기있는 차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차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준중형보다 넓지도 않은데 가격은 큰 차이가 없는 까닭이다. 전통적으로 세단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의 성향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소형차에는 소형차의 ‘맛’이 있다. 작은 차체에서 나오는 예리한 손맛과 1인 또는 2인 가구를 위한 필요충분의 실용성, 경차보다는 든든한 퍼포먼스와 안락함 등, 큰 차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재미다. 소형차들이 극단의 운동성능이 필요한 랠리에서 사랑받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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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르노삼성이 클리오를 들여오겠다고 해서 새삼 화제가 됐지만, 클리오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던 B-세그먼트 해치백이 바로 푸조 208이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208 중에서도 상위 트림인 GT Line이다. 보다 매력적인 디테일과 풍요로운 편의사양을 더해 진짜배기 유럽차의 강렬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208은 꽤 오랫동안 한국에서 시판됐지만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정서에 맞지 않아서다. 하지만 과거의 206, 207에 이어 208까지 꾸준히 국내 시장에 선보이며 도로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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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부분변경을 통해 디테일이 조금 바뀌었는데, 전면부와 후면부의 터치를 다듬은 정도다. 원래부터 웃는 얼굴로 유명했던 208의 앞모습은 이전보다 조금 침착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변경됐다. 둥글둥글하던 범퍼에 각을 잡아준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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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부의 큰 실루엣은 대동소이하지만, 테일램프에 LED 그래픽이 삽입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세 갈래의 LED 그래픽은 푸조 전 차종 공통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푸조의 상징인 사자가 발톱으로 할퀸 자국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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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현지에는 고성능 버전의 GTi가 존재하는데 GT Line은 그 GTi의 이미지를 일반 모델에 옮겨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령 BMW의 M 스포츠 패키지같은 것이다. 다만 퍼포먼스에는 큰 차이가 없고 GT Line 레터링이 부착되며 화려한 17인치 알로이휠이 적용돼 주행감각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타이어는 205/45R17 규격의 미쉐린 PS3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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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전폭*전고는 3,965*1,740*1,460(mm)에 휠베이스가 2,540mm에 불과하다. 해치백을 기준으로 봤을 때 미니 3도어보다는 조금 크고 현대 엑센트 위트나 기아 프라이드 5도어보다는 작다. 길이는 엑센트 위트보다 150mm나 짧지만 휠베이스는 30mm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차는 매우 작지만 실내공간은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전장 대비 긴 휠베이스 덕에 안정적인 비례감을 자랑한다. 애초부터 세단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설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차체 네 모서리 끝단에 위치한 바퀴와 둥그스름한 루프라인까지, 누가 봐도 전형적인 유럽산 해치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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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는 있을 건 다 있다. 디자인이 낯설지 않은 것은 형제차인 2008을 통해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직물과 스웨이드, 가죽을 섞어 만든 시트는 닿는 부위마다 질감이 좋고 무게가 많이 실리는 엉덩이나 등 부위의 가죽이 울 염려도 덜어준다. 독립 공조장치와 1열 열선시트, 블루투스 및 크루즈 컨트롤 등 선호 옵션은 모두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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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역시 푸조의 아이콕핏(i-Cockpit) 인테리어의 수혜자다. 조막만한 스티어링 휠과 그 너머의 날렵한 클러스터, 조작이 간편한 터치식 디스플레이가 매력적이다. 다만 순정 내비게이션이 아예 없는 점은 아쉽다. 요즘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많이 쓴다지만, 막상 없으면 불편한 것이 순정 내비게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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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형뻘인 308보다도 인테리어의 만족도가 높다. 빈번하게 사용하는 공조기 조작버튼은 터치가 아닌 물리버튼을 남겨둬 직관적인 사용이 가능하고, 센터페시아의 허전함도 덜어준다. 또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타코미터 바늘에 당황할 필요도 없다. 파격적인 아이콕핏과 기성 자동차 인테리어의 적절한 타협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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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이나 트렁크 공간은 넉넉하지는 않다. 전형적인 소형차의 그것이다. 키 180cm인 필자를 기준으로 운전석 시트 포지션을 맞췄을 때, 뒤에 앉으면 가까스로 무릎이 닿지는 않지만 오래 타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시내에서 한두 명의 손님을 태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패밀리 카로서의 활용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편 GT Line은 실내 트림과 안전벨트, 스티치마다 붉은 색으로 포인트를 줘 설렘을 더한다. 시각적 자극을 통해 운전자에게 조금 더 운전 재미를 느껴보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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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졌다시피 푸조는 유서 깊은 랠리 명가다. 205 시절 전설적인 그룹 B 랠리에도 출전했고, 206, 207 등 역대 모델들이 연이어 랠리 무대에서 활약했다. 208도 매뉴팩처러 팀으로는 출전하지 않지만, 많은 프라이빗 팀들이 208로 각종 랠리 대회에 출전 중이다. 그 말인즉슨 기본기 하나는 알아줄 만 하다는 것이다. 시종일관 유럽산 해치백의 진수를 보여주는 차가 바로 20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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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1.6L 직렬4기동 BlueHDi 디젤 엔진에 6단 MCP의 조합이다. 99마력에 불과한 최고출력이 부족해 보일수도 있지만, 최대토크는 25.9kg.m에 달해 2.5L급 자연흡기 가솔린과 맞먹는다. 고속주행보다는 좁은 시내 도로나 시골길에서 빈번한 재가속이 필요한 유럽의 도로 환경을 고려한 세팅이다.

실제로 주행에 나서보면 99마력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로 힘은 충분하다. 특히 최대토크가 1,750rpm에서 터져나와 시내에서도 답답하지 않은 초반 가속이 가능하다. 직결감 높은 MCP도 여기에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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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P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소개됐다시피 자동화된 수동변속기의 일종이다. 오토 모드에서는 변속이 될 때마다 이질적인 울컥임이 있는데, 이때 가속 페달에서 살짝 발을 떼 주면 매끄러운 가속이 가능하다. 아예 변속기를 수동 모드에 놓고 패들 시프트로 원할 때 변속하면 훨씬 빠르고 경쾌한 변속이 가능하다.

MCP의 가장 큰 매력은 직결감에 있다. 물론 수동변속기의 손맛에는 못 미치지만, 현실적으로 수동 판매가 어려운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변속기 중 가장 수동과 비슷한 감각을 지녔다. 특히 오토 모드에서 차와 운전자가 변속 타이밍을 맞춰나가는 과정을 통해 차와 교감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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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직결감만큼이나 큰 매력 포인트가 바로 연비. 유럽 현지에서도 MCP는 수동변속기보다도 연비가 좋다. 208의 공인연비는 복합 16.7km/L이지만, 약 350km 정도의 거리를 전혀 연비를 고려하지 않고 막히는 시내와 고속도로까지 섞어서 운전했던 시승 간 평균 연비는 20.0km/L을 기록했다. 공인연비보다 훨씬 뛰어난 푸조의 실연비에 대해서는 두 말하면 입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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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마음 놓고 달려보자. 208의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차 안은 유럽이 된다. 지독한 교통정체와 거추장스러운 대형차로 가득한 서울 시내에서도 208은 유럽의 주행감각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푸조 특유의 쫀득한 서스펜션은 노면을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모든 속도영역에서 허둥대지 않는다. 소형차지만 저속 뿐 아니라 고속 안정감도 뛰어나다. 풍부한 토크에 힘입어 조금만 단수를 낮춰주면 고속도로에서의 추월도 어렵지 않게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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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인가, 작고 기어비 짧은 스티어링 휠은 한 바퀴만 돌려도 좁은 도로에서 가볍게 유턴이 가능하다. 골목길 사이를 달릴 때도, 좁은 지하주차장에 들어설 때도 부담이 없다. 불필요한 유격 없이 조금만 조향각을 줘도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니 차와 내가 하나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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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두 자릿수 출력에 잘 달리겠어?” 괜한 심술에 와인딩 로드에서 차를 좀 더 몰아붙여 본다. 물론, 이전 모든 푸조 모델과 마찬가지로 오르막을 쉬지 않고 내달리기 시작하자 곧바로 의심이 사그라든다. 다른 차로 비좁게 느껴지던 산길은 작고 민첩한 208에게는 서킷만큼 넓다.

하나의 차선 안에서 제한속도를 준수하면서도 208의 운전자는 랠리 드라이버로 변신할 수 있다. 불필요한 무게감 없이 매 순간의 코너링이 흥미진진하고 아쉬움이 없다. 오히려 제한된 출력이기에 온전히 코너링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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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적으로 208이 폭발적인 성공을 기대할 만한 차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같은 가격이면 더 큰 국산차를 사고도 돈이 남는다. 그렇다고 더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리는 미니처럼 컬트적인 아이덴티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색깔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미니와 달리 208은 지조있는 유럽산 해치백이다. 편안함을 찾는 북미 소비자들과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개성이다. 보다 흔히 볼 수 없고 특별한 모델을 원한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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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편안한 차를 선호하는 필자지만 208과의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나니 그 매력에서 한 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답답한 서울 도심 어디서나 운전석에만 앉으면 유럽 로드트립을 떠났을 때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큰 차가 필요없고 차로 통근하는 직장인에게 안성맞춤이다.

부담없고 실속있는 엔트리급 수입차를 찾아보고 있다면 반드시 208을 한 번 만나보자. 혼자 타기에 전혀 부족함 없는 크기의 차체, 압도적인 연비를 자랑하는 디젤 엔진과 MCP, 끝내주는 손맛의 주행감각까지. 시선을 강탈하는 화끈한 외모는 덤이다. 2,590~2,790만 원에 불과한 가격도 착하다. 꼭 SUV여야 하는게 아니라면 소형 SUV보다도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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