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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에 대한 엇갈린 견해, 현대 아슬란 G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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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수입차의 약진에 대응하겠다고 내 놓은 아슬란은 실제 시승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한 것에 비해 상품성이 매우 높은 차임을 확인했다. 주행 안정성, 파워트레인, 첨단 편의사양 등 앞바퀴 굴림 모델 중 동급 최고의 경쟁력을 가졌다. 지금 당장 보여지고 있는 일부 거부감은 품질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 시간이 갈 수록 나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차의 상품전략과 그 진정성까지 받아들여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차는 그냥 신형 그랜저였어야 했다.

현대차에 대한 거부감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차는 사상 최대의 판매 실적을 달성했는데, 문제는 국내에서 수입차의 성장은 그보다 더 거세다는 것이다. 수입차에 대응하겠다는 목표로 내 놓은 앞바퀴 굴림 대형차 아슬란에 대한 반응도 미지근하다. 전후 사정이야 따로 살펴봐야겠지만 우선은 아슬란 자체에 대한 평가가 더 궁금한 상태에서 아슬란을 시승했다. 터키어로 사자라는 뜻을 가진 아슬란, 과연 초원의 제왕다운 뛰어난 품격과 상품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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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에는 아슬란 G330 최상위 트림에 풀옵션 차량이 동원됐다. 차량 가격은 G330 익스클루시브 4,590만원에 옵션이 모두 포함되어 5,065만원이다. 5,065만원이면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BMW 3시리즈, 아우디 A4 등의 중하위 트림, 렉서스 IS 중간트림, 폭스바겐 CC 상위트림, 렉서스 ES 하위트림 정도에 해당한다. 토요타 아발론보다 200여 만원 비싸고, BMW 5시리즈의 최하위 트림보다 1,200여 만원 싸다. 파워트레인과 첨단 편의, 안전 장비 등을 고려하면 수입차 대비 가격 경쟁력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국산차 중에서는 상당히 비싸다는 평가다. 제네시스 G330 기본인 모던트림이 4,604만원으로 아슬란 최상위 트림과의 차이가 불과 14만원 밖에 나지 않는다. 물론 포함된 사양에서는 큰 차이가 나긴 하지만 흔히 말하듯 조금만 더 보태면 윗급인 제네시스가 바로 코 앞에 보인다. 결국 아슬란은 G300이 주력이 되어서, 그랜저에서 HG300을 고려하는 이들은 아슬란으로, 아슬란에서 G330을 고려하는 이들은 제네시스로 올라갈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자연스럽게 그랜저와 제네시스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기를 현대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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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것처럼 아슬란은 그랜저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같은 플랫폼으로 윗급이나 아랫급의 모델을 만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윗급 모델을 만들 경우 휠베이스를 늘여서 차급을 다르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슬란은 그랜저와 휠베이스가 같다. 차체 크기가 4,970 x 1,860 x 1,470mm에 휠베이스 2,845mm로, 그랜저의 4,920 x 1,860 x 1,470mm에 휠베이스 2,845mm와 비교하면 너비, 높이, 휠베이스가 모두 같고 길이만 5cm 더 길다. 아슬란을 그랜저 윗급 모델이라고 이야기하는 현대차의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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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도 말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LF 쏘나타와 너무 많이 닮은 앞모습이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나마 조금 익숙해져서 자세히 살펴보면 쏘나타와 구분이 되는데, 초기엔 길에서 아슬란을 만나도 쏘나타와 쉽게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슬란은 쏘나타보다 2단계 더 높은 고급 모델인데, 늦게 나온 아슬란이 아래 급 모델과 디자인이 닮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물론 외관 디자인에서 일부 그랜저도 보이고, 제네시스도 보이긴 한다.

전반적으로 그랜저가 YF 쏘나타 스타일의 파격적인 디자인인 것을 감안하면, 아슬란은 LF 쏘나타와 제네시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디자인 흐름의 중간에 위치하고, 그랜저는 이들과는 동떨어진 모델이 되고 만다. 아슬란이 그랜저 후속 모델이었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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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이 상당히 진중한 분위기인데도 옆모습에서는 무척 날렵한 쿠페스타일의 지붕 라인이 돋보이고, 지붕에서 내려온 부드러운 곡선이 트렁크 끝부분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면서 스포티함을 강조했다. 측면 도어 하단의 크롬 장식은 그랜저를 닮았다. 전반적으로 고급차다운 느낌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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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의 실내가 과거 YF 쏘나타와 흐름을 같이하는 것과는 달리 아슬란의 실내는 최신 LF 쏘나타, 제네시스와 흐름을 같이 한다. 결국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모두 아슬란은 LF 쏘나타와 제네시스의 중간 위치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아슬란은 그랜저가 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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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느낌의 실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다이아몬드 패턴이 적용된 프라임 나파 가죽시트다. 꽤나 고급스럽다. 의외로 딱딱한 느낌이 들고, 패턴 덕분에 지지력이 나쁘지 않지만 전체 형상은 라인이 단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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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 하우징이 센터 모니터까지 같이 덮어서 S클래스 느낌이 난다. 대시보드에서 도어패널로 내려오면서 라운드 처리한 부분은 그랜저와 같은데 여전히 매력적이다. 도어 패널 상단 앞쪽으로 배치된 시트 조절 버튼은 손을 뻗기에 너무 멀어서 다소 불편하다. 등을 시트에 붙인 상태에서 쉽게 손이 닫을 수 있는 정도 거리는 돼야 하겠다.

나무와 알루미늄으로 꾸민 장식은 느낌도 좋고 깔끔하게 잘 마무리했다. 센터 터널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버튼들도 배열이나 만듦새가 상당히 고급스럽다. 센터터널 뒷부분으로 가면서 센터 콘솔 커버 부분은 라인이 무척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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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의 버튼들로 조절하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은 조작하기도 편리하고, 실제로 작동도 무척 정교하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컬러풀한 그래픽이 돋보이고, ASCC, 네비게이션 등과의 연동도 매우 뛰어나다. 그랜저에는 적용되지 않는 기능이어서 그랜저와의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이며, 아슬란에는 기본형부터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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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인지 전반적으로 실내가 그랜저보다 더 넓은 느낌이 드는데, 실내 공간 확보의 달인이라해도 될만한 현대차의 장기가 잘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차체 크기에서 그랜저와 차별화되지 않는 아슬란은 엔진 라인업에서 약간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랜저가 기존에 2.4, 3.0, 3.3의 엔진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2.4와 3.0만 남겼고, 아슬란은 3.0과 3.3으로 라인업을 꾸렸다. 주력은 3.0이 되겠지만 시승에는 3.3 모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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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다Ⅱ V6 3.0 GDi 엔진은 최고출력 270마력, 최대토크 31.6kg•m를 발휘하고 자동 6단 변속기와 어울려 복합연비는 9.5km/ℓ(18인치 타이어 기준)를 보인다. 시승에 투입된 G330에는 람다Ⅱ V6 3.3 GDi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294마력, 최대토크 35.3kg•m의 성능과 역시 자동 6단변속기와 어울렸는데, 복합연비도 9.5km/ℓ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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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속력은 매우 경쾌하다. 무엇보다 엔진 회전 상승 질감이 무척 매끄럽고, 사운드도 경쾌하다. 엑셀에 대한 응답성도 매우 좋다. 가속감은 중고속까지도 꾸준히 이어진다. 엔진과 변속기 모두 완성도가 높고 서로의 밸런스도 매우 뛰어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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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 변속에서 회전수 매칭도 예전보다 정교해 졌다. 완벽하게 회전수를 미리 올려서 연결시키는 회전수 매칭은 아직 아니지만 비교적 적극적으로 매칭해주려고 노력한다. 기어 레버를 수동모드에서 위 아래로 조작하는 조작감도 기아차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더 절도 있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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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가속할 때 앞머리가 살짝 들리는 현상은 다소 당황스럽다. 앞바퀴 굴림차의 한계일 수 있는데, 굳이 분석을 해 보자면 전장대비 휠베이스가 짧다 보니 급가속이나 제동에서 앞 뒤로 고개를 숙이거나 들리는 현상이 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랜저와 비교하더라도 휠베이스는 동일한데 길이가 더 길다. 뒷바퀴 굴림이라면 앞 바퀴 축이 차체 앞쪽으로 많이 전진해서 휠베이스가 더 늘어나고 이런 현상은 효과적으로 억제될 수 있다. 아우디의 경우에도 앞바퀴 굴림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지난 A8 시승에서 가속 시 앞이 들리는 이런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승차감이라고 표현되는 주행 감각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을 정로로 세련됐다.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부드럽다. ‘적당히’라는 표현 자체가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중저속으로 주행할 때도 안정감이 몸으로 느껴지는 한편 차체가 튀는 정도의 느낌은 들지 않는 안락함이 공존하는 수준이다. 수 없이 많은 차들을 시승하면서 비교해 온 경험에 비춰서 딱 기분 좋은 정도의 승차감이다. 이 정도 감각이면 평소에 다니면서도 주행이 즐거워질 수 있겠다. 물론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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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란은 고속으로 주행할 때도 안정감이 약해지지 않는다. 확실히 그랜저보다는 주행 감각 면에서 한 수 위다. HG 그랜저가 처음 나왔을 때, 당시 큰 인기를 끌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말투를 흉내 내서 ‘최선은 아니다’라고 표현했는데, 이번 아슬란은 여로 모로 살펴 봐도 현대차가 앞바퀴 굴림으로 내 놓을 수 있는 준대형 세단의 ‘최선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이 정도가 세계 수준에서도 최선인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BMW가 5 시리즈에 3.3 엔진을 얹는다면 이 정도보다는 확실히 강력한 달리기 실력을 선보일 것이 틀림없다. 자동 8단 변속기와 최첨단 연비 절감 시스템을 더해 연비도 대폭 개선했을 것이다. 결국 앞서 말한 최선이다라는 표현에서 ‘현대차 수준에서’라는 표현에 반드시 비중을 둬야 하겠다.

아슬란의 성격이 스포츠 세단이 아닌 이상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에 동의한다. 아슬란은 정말 충분히 잘 달리고, 충분히 안정적이고, 충분히 세련됐다. 거기다 정말 조용하고 편의 장비는 동급에서 세계 최강 수준이다. 그 어떤 브랜드도 이 가격대의 자동차에 이 정도의 장비를 얹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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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풍시트, 히티드 스티어링 휠, 어라운드 뷰 모니터, 주차보조, 오토홀드, 하이패스, 파노라마 썬루프,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헤드업 디스플레이…… 정말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장비들이 그득하다. 아슬란 가격 정도의 예산으로 차를 고른다면 아슬란은 가장 강력한 후보다. 어쩌면 독보적인 후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랜저는 대한민국 고급차의 대명사라는 오래동안 쌓아 온 명성이 있고, 제네시스는 뒷바퀴 굴림 고급차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슬란을 투입해 누수를 막겠다는 전략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어 보이는 전략이다.

많은 매체에서 지적했듯이 만약 현대가 라인업을 늘려서 시장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그랜저 왜건, 그랜저 4도어 쿠페, 혹은 진짜 쿠페 등을 선보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쏘나타도 마찬가지다. 디젤 모델도 더 확충하고, 실제적인 연비도 더 높여야 한다. 당장 눈앞에서 큰 돈 들이지 않고 포장을 바꾸는 것 말고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더라도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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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것처럼 아슬란은 터키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유명한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신적인 존재인 사자의 이름도 아슬란이다. 멋진 이름이다. 하지만 사자가 용맹하고 위엄이 있으며 초원의 제왕인 것은 매우 좋은 면으로만 본 것이다. 또 다른 면으로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실제로는 개체수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서 조만간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할 처지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About 박기돈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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