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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CT4 시승기, 미국차에서 독일차의 향기를 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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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CT4는 독일차보다 더 독일차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난 미국산 컴팩트 세단이다. 작고 다부진 차체와 경쾌한 파워트레인의 조합 덕에 운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고, 개성 강한 디자인은 도로 위에서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만 부족한 상품성과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캐딜락은 독특한 브랜드다. 지난 오랜 역사동안 가장 미국적인 고급차를 만들어 왔고,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를 제작할 만큼 미국인들에게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문화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국 브랜드 중에서는 가장 유럽차같은 주행 감각을 지향하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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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캐딜락의 라인업은 철저히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와 같은 구성으로 재편됐다. 풀사이즈 SUV인 에스컬레이드와 미국 및 중국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XT6 정도를 제외하면, 특히 세단 라인업은 후륜구동 독일 경쟁자들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다.

CT4는 그런 캐딜락의 세단 라인업 중 막내다. 족보를 타고 올라가 보면 캐딜락 최초의 컴팩트 세단인 시마론이나 사브의 설계를 유용한 BLS 등이 있지만, 후륜구동 레이아웃을 채택하고 독일 컴팩트 세단과 제대로 경쟁을 시작한 건 선대 모델인 ATS부터다. 판매량 측면에서는 라이벌들에 비해 뒤처지지만, 어쨌거나 오랫동안 아메리칸 럭셔리를 쌓아 온 캐딜락으로선 제대로 된 풀 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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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S의 완전한 후속 모델을 자처하지만, 사실 CT4는 기술적으로 ATS의 많은 요소들을 계승한다. GM의 알파2 플랫폼을 공유하고, 전고와 휠베이스는 ATS와 동일한 1,425mm, 2,775mm다. 대신 전장과 전폭은 각각 115mm, 10mm 늘어났다. 실용성 강화를 위해 몸집은 키웠지만, 본질적인 주행 감각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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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지만, 디자인은 대폭 일신했다. 전면부에서는 세로형이었던 헤드램프를 에스칼라 콘셉트카 이후 적용된 ‘T’형 헤드램프로 변경해 한껏 공격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로형 DRL의 존재감도 강해지고 라디에이터 그릴의 면적을 키워 스포티한 감성도 더했다. ATS와 비교하자면 보다 무게중심을 낮춘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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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부에서는 테일램프의 면적을 줄여 밸런스를 맞추는 동시에 최근의 디자인 트렌드를 따라 번호판 위치를 트렁크 리드에서 범퍼 쪽으로 옮겼다. 또 큼지막한 머플러 팁을 부착해 한껏 멋을 부렸다. 전체적으로 ATS와 비교하자면 무게감과 역동감을 더 강조한 디자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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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더욱 변화의 폭이 크다. 최신 캐딜락 인테리어 스타일을 반영했는데, 유럽차들의 디자인 트렌드와도 닮아 있다. 과거 ATS의 인테리어가 외관과 마찬가지로 세로선을 강조한 모습이었다면, ATS는 가로선을 강조하면서 안정감을 준다. 대시보드를 깎고 디스플레이를 위로 올려둔 형태라든가, 높은 센터 터널 배치 등은 경쟁 유럽차들을 많이 참고한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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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테리어에서 과거의 조작감 나쁘고 쉽게 지문이 남던 터치 버튼 대신 물리 버튼을 되살린 점이 큰 변화다. 디스플레이 주변의 구성과 2개의 다이얼 조작 방식은 다소 낯설지만, 전체적으로는 정갈해 진 구성이 마음에 든다. 공간 배치에 있어서도 제법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넉넉한 크기의 무선충전 패드나, 무선충전을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를 위해 유선 연결한 핸드폰을 꽂아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부분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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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열 공간은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 체감 상으로는 국산 준중형은 커녕, 경차나 소형차와 견줘야 할 무릎공간이다. 전장은 3시리즈나 C-클래스, G70 등 경쟁자보다 훨씬 길지만 휠베이스는 3시리즈보다 76mm, 동급 중 짧은 축에 속하는 G70보다도 50mm나 짧다. 아무리 D-세그먼트 세단이 운전자 중심의 모델이라도, 성인이 발을 집어넣기조차 어려운 공간은 곤란하다. 기왕 전장을 화끈하게 늘릴 거라면 휠베이스도 함께 늘리는 것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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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LSY’라는 코드명의 2.0L 직렬4기통 터보 엔진과 8속 자동변속기의 조합. 엔진은 ATS에 탑재됐던 LTG 엔진의 개선형인데, 최고출력은 기존보다 32마력 낮아진 240마력, 최대토크는 5kg.m 낮아진 35.7kg.m을 낸다.

퍼포먼스가 약해졌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전보다 크게 넓어진 1,500~4,000rpm의 실용영역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하니 초반 가속감은 소폭 개선됐다. 여기에 실린더 휴지 기능인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AFM)와 스타트-스톱 시스템이 추가돼 효율 개선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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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포기한 대신 얻은 건 ‘손맛’이다. 여전히 CT4는 날렵한 거동을 지녔다. ATS에 비해 커진 몸집에도 가벼운 엔진과 짧은 휠베이스 덕에 회두성은 뛰어난 편이다. 다만 리어 오버행이 길어진 탓에 차체 뒷편이 따라오는 반응성은 느리다.

가속력은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제법 경쾌한 편이다. 여기에 기분 좋은 핸들링 감각이 더해지니 부담 없이 운전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일상적인 용도로 사용하면서 잘 갖춰진 기본기를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브레이크 역시 브렘보 제 퍼포먼스 사양이 장착돼 시종일관 안정적인 제동력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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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에는 캐딜락이 자랑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어댑티브 서스펜션이 적용돼 있다. 주행 모드에 따라 서스펜션 감쇠력이 조절되는데, 스포츠 모드에서는 꽤 극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노면을 매우 세밀하게 읽어주는 하체의 감각이나, 고속 주행에서의 안정성은 매우 뛰어난 편. 노면이 좋은 고속화 도로라면 오히려 스포츠 모드의 하체 세팅이 훨씬 안정감 있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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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4는 독일 컴팩트 세단이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컴팩트하고 경쾌한 차”라는 명제를 미국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적당한 파워를 내는 엔진과 기민한 바디, 탁월한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등 여러 요소들의 궁합이 좋고 본질적인 달리기 성능에 집중한 설계 사상을 느낄 수 있다. 디자인은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지만 보다 보편적으로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점, 선대 모델보다 당당한 풍채를 갖췄다는 점도 가점 요소다.

하지만 잘 달리는 것과 “제품으로서의 매력”은 별개의 문제다. 국내 법규 상 GM이 자랑하는 슈퍼크루즈 기능이 빠지면서 ADAS 성능은 경쟁 모델들보다 뒤떨어진다. 굳이 ADAS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날로그 계기판이나 편의성이 떨어지는 8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무엇보다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후열 거주성 등은 CT4의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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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캐딜락이 ‘아트 & 사이언스’를 표방하며 재출발을 선언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캐딜락 브랜드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점은 프리미엄 브랜드로선 치명적인 문제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단순히 패밀리 룩을 적용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스포츠든 럭셔리든,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어야 하며, 그 메시지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돼야만 한다.

CT4를 시승하면서 느낀 점은, 차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의 만듦새는 뛰어나지만 이를 통해 캐딜락의 지향점이나 방향성을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술에 통달했으나 전략이 부재하다는 의미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제대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캐딜락 브랜드의 정체성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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