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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에비에이터 PHEV 시승기, 도로 위의 초음속 여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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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에비에이터 PHEV는 안락하고 웅장한 차체에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감춘 프리미엄 SUV다. 화려하면서도 실용적이고, 강력하면서도 효율적이다. 여러 이율배반적인 요소들을 절묘하게 조합해 어떤 용도의 프리미엄 SUV를 원하는 소비자든 만족시킬 수 있다.

독일차가 수입차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은 가운데 아메리칸 럭셔리를 지향하는 링컨은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다. 독일차 대비 낮은 가격대도 주효했겠지만, 독일차 특유의 스포티함과 꽉 조여진 절제미에 피로감을 느끼는 까닭도 있겠다. 같은 미국산 프리미엄 브랜드임에도 유러피언 스타일을 좇는 캐딜락과 달리, 링컨에는 옛 미국차 특유의 풍요로움과 여유가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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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여러 모델 중 최근 활약이 돋보이는 건 단연 에비에이터다. 지난 4월 출시된 이래 올해 11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145대로, 2분기 출시됐음에도 올 1~11월 링컨 전체 판매량의 1/3이 넘는다. 스테디셀러인 MKZ를 넘어서 링컨 브랜드의 볼륨모델로 자리잡은 셈이다.

SUV, 그것도 덩치 큰 모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탓이 크지만, 유럽차에 준하는 풍부한 사양과 마감 품질, 퍼포먼스를 갖추면서 미국차만의 풍요로움을 잃지 않은 점이 주효했다. 요컨대 잘 버무려진 유럽풍 퓨전 미국요리인 셈이다.

그나마 에비에이터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한다면 성능만큼이나 먹성이 좋다는 것이었다. 일반 에비에이터의 공인연비는 복합 8.1km/L다. 주말에만 타는 차라면 상관 없지만, 데일리 카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부담되는 수준이다. 9월에 새로이 라인업에 추가된 PHEV는 그런 에비에이터의 효율을 보완해 주는 좋은 솔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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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상 PHEV와 일반 모델의 차이점은 거의 없다. 운전석 앞 휀더에 충전 단자가 있고 일반 모델보다 한 치수 작은 21인치 휠이 적용됐다는 점 정도다. 레터링과 링컨 스타 엠블럼에 친환경 모델임을 상징하듯 파란색 포인트가 더해졌지만, 이 차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효율을 위해 성능을 포기하진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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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에비에이터 PHEV의 파워트레인은 링컨 양산차 역사 상 가장 강력한 성능을 내기 때문이다. 3.0L V6 에코부스트 트윈터보 엔진은 혼자서 405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75kW급 전기모터를 더해 시스템 출력은 무려 501마력이나 된다. 시스템 최대토크는 86.7kg.m으로, 웬만한 고성능 SUV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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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괴물같은 심장을 숨기고도 에비에이터 PHEV는 태연하게 점잖은 SUV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 컨티넨탈로부터 시작된 새 패밀리 룩은 적당히 중후하고, 적당히 트렌디하다. 개인적으로는 옆모습이 매우 마음에 드는데, 모든 필러를 검게 처리한 플로팅 루프 스타일 덕에 5,065mm의 실제 전장보다 훨씬 길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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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뒤로 갈 수록 루프가 낮아져 속도감이 느껴지면서도, 자칫 이런 형태의 SUV에서 폭이 좁아 보이기 마련인 뒷모습은 테일램프와 크롬 가니쉬를 가로로 두툼하게 배치했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웅장함과 역동감이 살아 있는 디자인은 이 차가 링컨의 주 고객층인 중장년층만을 타겟으로 하지 않는다는 걸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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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식 도어 핸들을 당겨 문을 열면 다소 차분한 실내가 맞이한다. 좋게 말하면 유행을 타지 않고, 나쁘게 말하면 고루한 레이아웃이다. 버튼식 변속기를 송풍구 아래에 배치하고 자주 사용하는 오디오 및 공조장치를 그 밑에 정갈하게 배치했다. 친숙한 방식이기에 사용하기는 편리하지만, 버튼의 형상이나 마감, 조작 질감은 조금 더 세련미를 추구했어도 좋았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칫 “할아버지 차”처럼 보일 법한 우드 트림이 그렇게 촌스럽지는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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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면 디스플레이와 LCD 계기판, 30-way 퍼펙트 포지션 시트 등 사양은 충실하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부메스터 스피커를 연상시키는 오디오는 레벨 울티마 3D 오디오 시스템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답게 오디오 음질도 훌륭한 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스티어링 휠의 버튼 조작 체계가 그다지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몇 개의 버튼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매번 스티어링 휠의 아이콘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익숙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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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PHEV는 7인승 그랜드 투어링(GT) 단일 트림으로 판매된다. 일반 모델이 기본형인 리저브와6인승 고급 버전인 블랙 레이블 트림으로 판매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2열 편의성과 고급감이 극대화된 6인승 옵션을 선택할 수 없는 건 아쉽지만, 7인승 모델의 2열도 충분히 넓고 쾌적한 공간이다. 슬라이딩과 틸팅을 모두 지원하며, 2열 독립공조는 물론 오디오 제어 기능도 일부 제공한다. 3열 역시 일반 모델과 공간 차이가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일반 모델과 동일한 디자인이나 실내보다는 아무래도 달리기 성능이 더 관심이 간다. 앞서 이야기했듯 역대 링컨 모델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이자, 현행 라인업에서도 유일하게 500마력이 넘는 고성능 모델이기 때문이다. 사실 링컨과 퍼포먼스는 별 접점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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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능은 다다익선이다. “일반 모델보다 효율을 끌어올리고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는 소정의 목표가 달성됐다면, 그 뒤에는 기왕이면 힘이 넘치는 쪽이 좋다. 연비를 위해 엔진의 최고회전수를 낮추고 퍼포먼스를 거세해 버리는 짓 따위 하지 않는 호탕함이 지극히 미국차 답다.

가속 페달의 반응은 매우 빠른 편이다. 리스폰스가 좋은 건 장점이지만, 정차 상태에서 초반 발진 시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건 흠이다. 조금 더 우아하게 움직여도 좋지 않았을까? 약간 실망하려는 찰나에 폭발적인 가속이 시작된다. 공식적인 0-100km/h 가속 기록은 없지만, 5초 전후에 마무리된다. 2.7톤에 육박하는 무게를 생각하면 대단한 가속력이다. 이 괴물같은 가속은 지치지 않고 거구를 몰아붙인다. 독일제 SUV가 부럽지 않다.

일반 모델에도 기본 탑재되는 에어 서스펜션의 승차감은 탁월하다. 주행 모드에 따라 지상고와 감쇠력이 바뀌는데, 요철을 부드럽게 걸러내는 컴포트 모드에서도 고속 안정성이 발군이다. 굳이 더 단단한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지 않아도 고속 크루징에 부담감이 없다. 미국차가 ‘물침대’라는 것도 옛날 이야기다. 에비에이터로 오프로드 주행을 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오프로드 모드에서는 지상고를 더 높여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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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PHEV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렇게 근사한 차를 타고 출퇴근해도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외부 전원으로 배터리를 완충하면 복합 30km를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시승 기간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그럼에도 20km 가량을 EV 모드로 달렸다. 100마력의 모터 출력으로도 도심 주행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출퇴근 거리가 20km를 넘지 않는다면 기름을 넣을 일이 없다.

배터리를 모두 소진한 뒤 하이브리드 모드 주행 시 공인연비는 복합 9.3km/L로, 내연기관 모델보다 1.2km/L 높다. 시승 간에는 연비를 고려하지 않고 주행하면서 복합 8.5km/L 정도를 기록했다. PHEV인데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이 연비로 500마력의 파워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주행 중 이질감이 거의 없지만, 저속에서 엔진에 시동이 걸릴 때 다소 충격이 있는 편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의 이질감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구매 전 시승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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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PHEV의 주행 경험은 마치 프라이빗 제트를 타고 떠나는 비행과도 같다. 도로 위를 고고하게 내달리는 동안에도 차 안은 시종일관 쾌적하고 여유가 넘친다. 아주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오래 함께 해도 질리지 않는다. 여기에 폭발적인 성능까지 갖췄으니 이를테면 초음속 여객기라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차의 강력한 성능에 관심을 갖지만, 에비에이터 PHEV의 진가는 상술했듯 풍요로움이 가득한 미국식 프리미엄 SUV를 제법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성능은 거기에 덤으로 얹힌 ‘서비스’다. 뒤집어 말하면 본격적인 퍼포먼스 SUV를 기대하고 선택했다간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기본기는 충실히 갖추고 있지만, 이 차가 레이싱 트랙이나 와인딩 로드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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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PHEV의 가격은 9,850만 원(개소세 3.5% 적용)으로 일반 에비에이터 블랙 레이블(9,360만 원)보다 500만 원 가량 비싸다. 그나마 올해까지는 PHEV 보조금 수령 시 같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PHEV 보조금이 폐지되면서 다소 가격 부담이 늘어난다. 이 가격 차이를 단순히 연비 우위로 만회하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주유소 찾는 번거로움을 덜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는 정도로 만족하자. 이 차에는 그런 대범함이 어울린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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