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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가 의미, 1957 랜드로버 시리즈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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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게이든에서 특별한 랜드로버를 만났다. 랜드로버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경험한 시리즈 I은 1956년에 제작된 모델이다. 57년이 된 모델이지만 여전히 고객과 함께 현역으로 뛰고 있다.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는 모델이다.

재규어랜드로버의 본사가 있는 게이든에 가면 헤리티지 센터가 있고 그 안에 랜드로버 익스피리언스 센터가 있다. 익스피리언스 센터는 랜드로버의 탁월한 오프로드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모델부터 시리즈 I 같은 초창기 모델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거기다 랜드로버의 개발과 생산 라인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영국에는 9개의 익스피리언스 센터, 전 세계적으로는 36개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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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짚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오프로드 전문 브랜드이다. 원래는 로버의 모델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발전해서 별도의 브랜드가 된 케이스이다. 그리고 로버(1948~1967), 레이란드(1967~1968), BMC(1968~1986), 로버(1986~1988),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1988~1994), BMW(1994~2000), 포드(2000~2008), 그리고 현재의 타타까지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었던 역사도 갖고 있다. 소유주는 많이 바뀌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최고급 SUV 브랜드라는 것은 변함없다.

랜드로버라는 이름은 로버가 1948년에 내놓은 차명에서 비롯됐고 그 첫 모델이 랜드로버 시리즈 I이다. 시리즈 I은 로버의 치프 디자이너였던 모리스 윌크스가 디자인을 맡았으며, 잘 알려진 것처럼 윌리스 짚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센터 스티어(운전대가 가운데 위치했다)라는 별명의 첫 랜드로버 프로토타입도 짚의 섀시와 액슬을 사용했고 엔진과 변속기는 로버 P3의 것을 갖다 썼다. 랜드로버의 1992년 발표에 따르면, 랜드로버 시리즈의 70%가 여전히 도로에서 운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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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시리즈 I은 1948년의 암스테르담 모터쇼에서 최초 공개됐다. 스틸 박스형 섀시에 알루미늄 보디를 덮었으며 1949년에는 스테이션 왜건 버전도 나왔다. 스테이션 왜건 보디는 라곤다와 롤스로이스의 코치빌더로도 유명했던 틱포드가 맡았으며 우드 프레임에 7명이 탑승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그리고 일반 랜드로버보다 내장재나 편의 장비도 좋았다.

1954년에는 부분 변경 모델이 나왔는데 바로 당시까지의 80인치 휠베이스가 86인치로 확대된 것이다. 후에 107인치의 픽업 버전도 나왔다. 그리고 1956년에는 107인치 휠베이스에 첫 5도어 모델이 추가됐다. 스테이션 왜건으로 불리는 10인승이었다. 기존의 86인치는 3도어에 7인승이었다. 새 스테이션 왜건은 기존의 틱포드와 완전히 달라서 우드 프레임 대신 간단하게 메탈 패널을 조합한 방식이었다. 스테이션 왜건에는 사파르 루프 버전도 추가됐다.

이후 휠베이스는 88인치와 109인치 두 가지로 확대됐고 새 디젤 엔진도 올라갔다. 기존 107인치 스테이션 왜건에는 디젤 모델이 없었다.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만난 모델은 88인치 휠베이스의 2리터 디젤로 시리즈 I의 마지막 시기 모델이다. 시리즈 I은 1958년에 시리즈 II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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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경험한 시리즈 I의 공식 차명은 랜드로버 시리즈 I 스테이션 왜건이다. 등록 넘버는 WPO 156, 섀시 넘버는 111702194이며 1957년형 모델이다. 이 차량은 나름 사연이 있다. 생산된 때는 1956년 11월로, 랜드로버 딜러를 통해 1957년 1월 1일에 쇼햄의 라이스 형제에게 팔렸다. 첫 오너인 라이스 형제는 이 차를 20년 동안이나 소유했다가 다시 던스폴드 랜드로버가 되샀으며 이후 브라이언 바샬의 개인 차량으로 사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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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에는 다시 오너가 바뀌었는데 애호가였던 차주가 소프트톱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반면 다음 오너는 원래의 보디인 스테이션 왜건으로 복구했다. 가장 최근의 오너는 재규어랜드로버이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이 차를 사들여 던스폴드 랜드로버에 되돌려줬고 차량을 전면적으로 복구했다. 그리고 올해 초 디스커버리 누적 생산 100만대를 자축하는 버밍햄-베이징 익스페디션의 문을 열기도 했다. 이 루트는 1955년의 버밍햄-베이징 ‘더 퍼스트 오버랜드 익스페디션’를 따라간 것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사정상 싱가폴로 종착지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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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에는 엔진을 원형으로 되돌리는 것은 물론 시리즈 3톤 액슬은 오리지널 액슬로 교체했다. 그리고 뉴 시리즈 2 트랜스퍼 박스가 새롭게 더해졌다. 완전히 복구된 이후에는 웨일즈 지역에 위치한 화이트브레드에게 보내져 롤 케이지와 안전벨트까지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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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색을 위해서는 레오민스터 비클 페인터에게 보내졌다. 투톤 색상은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을 상징하며 오리지널 익스페디션인 런던-싱가폴을 의미한다. 차체에는 당시 오리지널 멤버였던 앤소니 배링턴 브라운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그는 당시 익스페디션을 계획하던 중에 사망했다. 이 1957 시리즈 1은 버밍햄에서 밀라노까지의 첫 번째 레그에서도 단 한 번의 기계적 결함 없이 코스를 완주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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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요즘 기준으로 봐선 절대적으로 구식이다. 1,997cc의 배기량인데 출력이 55마력/4,000 rpm, 최대 토크는 13.9kg.m/1,500 rpm에 불과하다. 연료 탱크는 운전석 아래에 위치해 있다. 연료가 넘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절반만 주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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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기는 4단이고 2단 트랜스퍼 케이스가 있다. 노란색 기어 레버는 4WD, 빨간색은 로우와 하이이다. 하이 트랜스퍼 레인지에서는 뒷바퀴굴림만 가능하고 4WD를 사용하려면 노란색 노브를 조작해야 한다. 로우 레인지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4WD가 된다.

섀시는 오프로더의 전통적인 래더 프레임이다. 박스 형태이며 사이드멤버와 크로스멤버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각 코너에는 스틸 용접을 통해 강성을 극대화 했다. 서스펜션은 라이브 빔 액슬과 세미 타원형 리프 스프링을 조합했고 댐퍼는 싱글 튜브 타입이다. 보디는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제작됐고 스틸은 안쪽의 격벽 등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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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는 10인치 드럼 타입이다. 요즘은 드럼 타입이 거의 쓰이지 않아서 보기 힘들지만 이때만 해도 광범위하게 쓰였다. 드럼 타입이면서도 사이즈는 10인치로 작다. 휠도 당연히 주철이며 700×16 사이즈가 달렸다. 스티어링도 웜 & 너트 방식으로 정말 고전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외관을 살펴보면 확실히 잘 관리된 차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보이긴 한다. 보디 패널을 얼핏 봐서는 손으로 대충 두들겨서 만든 것 같고 손상이 된 곳도 보인다. 오래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으며, 험한 오프로드를 주행해야 하는 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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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 패널에는 버밍햄-베이징 오버랜드 익스페디션 관련 로고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디자인이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류의 디자인이야 말로 생명력이 길지 않나 생각된다. 최대한 가장자리로 바퀴를 밀어낸 것은 오프로드 능력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테일램프에 보면 ‘랜드로버 포 휠 드라이브 스테이션 왜건’이라는 플레이트가 붙어 있다. 이것도 알루미늄이고 빈티지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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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들어서면 과연 움직일까라기보다는 운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만큼 원시적이다. 창문도 보면 두꺼운 나사를 돌려서 열림을 막는 방식이다. 이런 것은 처음 본다. 인스트럭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조금의 움직임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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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도 어렵다. 시동을 하려면 우선 계기판에 이그니션 스위치를 온 상태로 한다. 그럼 연료 펌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후에 계기판 하단에 검은색 스타터와 클러치 페달을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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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이 시동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스티어링은 당연히 파워가 아니며 클러치와 브레이크, 가속 페달의 위치도 통상적인 위치와 다르다. 거기다 기어 레버는 옛날 버스의 수동처럼 길쭉하다. 시범 삼아 움직여 보니 생각보다는 기어가 들어가고 나오는 느낌은 있다. 그리고 4WD의 하이 & 로우 기어 전환은 반드시 멈추고 클러치 페달을 누른 상태에서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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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치 페달은 정말 무겁다. 웬만한 클러치 페달은 그냥 저냥 밟을 만하다고 느꼈는데, 시리즈 I은 조금 차원이 다르다. 버릇처럼 잠시 정차하는 상황에서는 클러치 페달을 밟은 채로 있으려 했지만 무거워서 계속 밟고 있을 수가 없다. 996 포르쉐 GT3나 잠시 앉아만 본 1천 마력 GT-R의 트리플 플레이트 클러치도 이보다 무겁진 않았다. 

엔진이 요란하고 진동이 많은 것은 그렇다 쳐도 회전이 정말 무겁다. 마치 대형 트럭이나 선박의 디젤 엔진처럼 무겁게 움직인다. 이 엔진이 과연 제원에 나온 것처럼 4,000 rpm까지 돌아갈지도 의심스럽다. 저속 토크는 좋아서 클러치 페달 조작이 미숙해도 좀처럼 시동이 꺼지지 않는다. 거기다 2단에서 발만 떼도 부드럽게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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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리즈 I은 모든 것이 무겁다. 파워가 아니기 때문에 스티어링도 열심히 잡아 돌려야 하고 특히 멈춘 상태에서는 더 그렇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지만 잠깐의 오프로드 체험 이후에는 셔츠가 땀에 젖어 버렸다. 오프로드 지향 모델이니만큼 스티어링은 유격이 크고 감각도 정확치 않다. 오프로드에서는 이것이 더 유리할 수 있는데, 온로드에서는 조작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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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WD로 주행할 경우 회전 반경도 크다. 저속에서 회전할 때는 운전대를 돌리는 것에 한참 못 미쳐서 차체가 따라온다. 나뭇가지에 사이드미러를 부딪치기도 했다. 급격한 내리막을 내려올 때는 1단에 로우 기어를 걸면 된다. 브레이크 페달 조작 없이 가파른 내리막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다. 요즘은 HDC처럼 편한 전자장비가 있지만 과거에는 시리즈 I처럼 순수한 기계식으로 오프로드를 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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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시리즈 I의 오프로드 체험은 2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오프로드 코스도 능력에 비해 아주 간단한 곳만 지나갔을 뿐이다.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는 최근 모델보다 비싼 차이고 기념비적인 모델인 만큼 귀하게 관리되는 차다. 수심이 100mm 이상인 곳의 운행도 금지하고 있다. 시리즈 I과는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원초적인 오프로더의 매력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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