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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처럼 사랑스러운, 피아트 500X 팝스타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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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공산품이다. 기본적으로는 잘 팔리는 제품이 좋은 제품이고, 좋은 제품이 잘 팔린다. 하지만 자동차는 동시에 하나의 문화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름의 헤리티지나 아이코닉한 디자인 요소가 있는 경우 시공을 초월해 그 아이덴티티가 되살아나기도 하고, 설령 완벽하지 않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문화적 요소로 인해 인기를 끌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쉬운 부분들이 있음에도 그와 무관하게 사랑스러운 차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가령 미니의 경우 딱딱한 승차감과 부족한 편의사양, 조악한 마감품질-최근에는 많이 좋아졌다-에도 불구하고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즐거운 달리기 실력으로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자동차의 인기를 단순한 숫자나 사양의 나열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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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500 역시 이탈리아 국민차로서의 헤리티지와 시선을 강탈하는 앙증맞은 디자인으로 “사랑스러운 차” 대열에 올라선 모델이다. 특히나 피아트는 500을 미니와 같이 하나의 서브 브랜드로 육성하고자 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2007년 현행 500이 부활한 뒤로 캔버스탑 컨버터블인 500C와 고성능 버전인 아바르트,  5/7인승 소형 MPV 500L이 잇달아 출시돼 500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추가된 500X는 글로벌 트렌드인 소형 SUV 시장에 500의 아이덴티티를 덧씌운 모델이다. 지프 레니게이드에도 사용된 소형 4X4 플랫폼을 유용하지만 레니게이드가 동급 최고의 오프로드 성능을 강조하는 반면 500X는 유럽의 도심에 더 어울린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가솔린 엔진으로 앞바퀴를 굴리는 팝스타 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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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X의 첫인상이 호감형이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헤드라이트, 살짝 미소를 띤 범퍼, 둥글둥글한 뒷모습까지 사랑스러움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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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500 옆에 있으면 꽤나 남성적인 면모도 돋보인다. 근육질의 휀더 라인이나 보다 날카로워진 라이트 배치 등이 그렇다. 반면 형제차인 지프 레니게이드 옆에서는 여전히 온순해보인다. 요컨대 상당히 중성적인 스타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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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전폭*전고는 4,270*1,795*1,620(mm)로 전장은 동급에서 가장 긴 축에 속한다. 500이 3도어인 반면 500X는 5도어이기 때문에 유독 더 커 보인다. 여기에 트림에 따라서 앞뒤 디자인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팝스타의 경우 도심 주행에 맞춰진 세팅인 만큼 바디와 동일한 컬러의 프론트 범퍼와 단순한 투톤 리어 범퍼가 적용된다. 반면 4륜구동 시스템과 디젤 엔진이 올라가고 오프로더 느낌을 살린 크로스 트림은 앞뒤로 스키드 플레이트를 더해 와일드한 스타일이다. 개인적으로는 500 특유의 귀여움이 살아있는 팝스타 쪽의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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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500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사실 같은 차가 아니니 개선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보들보들한 가죽으로 꽤 많은 부분을 감쌌고, 6.5인치 유커넥트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인포테인먼트 편의성도 대폭 향상됐다. 특히 500의 경우 블루투스 핸즈프리 연결을 위해선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해야 한다는 불편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타 차량처럼 간편한 오디오 조작이 가능하다. 크로스 트림에는 내비게이션도 탑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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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베스파 스쿠터를 연상시키는 500에 비해서는 많이 현대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그러면서도 고전적인 스타일의 도어 핸들이나 유광 처리된 대쉬보드 등은 여전히 복고적이다. 허전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있을 건 다 있다. 팝스타 트림은 아날로그 에어컨을 탑재하고 열선 스티어링과 SD카드 단자 등이 빠졌지만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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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 클러스터는 3-서클 타입으로 좌우에 속도계와 타코미터를 배치하고, 중앙의 3.5인치 디스플레이가 트립컴퓨터 역할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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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의 경우 뒷좌석은 그냥 가방을 놓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500X의 뒷좌석은 사람을 태워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장시간 이동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앞좌석을 젖히고 손님을 뒷좌석에 밀어넣는 민망한 광경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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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이라면 어색한 시트포지션. 좀처럼 꼭 맞는 자세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어중간한 시트 높이와 스티어링 휠의 협소한 이동범위가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헤드레스트는 보기만 좋을 뿐 끔찍하게 불편하다. 피아트의 실내 디자이너들은 이 헤드레스트에 기대어 보지 않고 디자인을 한 것이 틀림없다. 500에도 있던 센터 암레스트는 크로스 트림부터 장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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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X에는 2가지 심장이 탑재된다. 팝스타에 적용된 것이 2.4L 멀티에어2 가솔린 엔진이고, 크로스와 크로스 플러스에는 2.0L 멀티젯2 디젤 엔진이 탑재된다.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트림 정책이다. 우선 가솔린이 디젤보다 44마력이나 높은 188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그렇고, 또 소형 SUV 최고의 장점인 “낮은 유지비”와는 거리가 있는 “대배기량” 엔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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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시승차의 2.4L 가솔린 엔진은 크라이슬러에서 타이거샤크·피아트에서 멀티에어로 불리는 것으로, 2005년부터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 현대차가 공동 개발한 월드 엔진의 2세대 버전이다. 쉽게 생각하면 현대 쎄타 엔진의 크라이슬러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밸브트레인과 인테이크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최고출력 188마력에 최대토크 24.2kg.m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FCA 내 여러 모델에 사용 중인 ZF 9속 자동변속기가 탑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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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동때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거 가솔린 맞나?” 일반적으로 가솔린 엔진에 기대하는 정숙성이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칼칼함이다. 소형차, 게다가 이탈리아 차라서 그렇다고 치부하기에는 신경쓰이는 수준이다. 그나마 가속 페달을 밟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많이 부드러워지는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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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모드는 노멀(오토)·스포츠·트랙션 등 3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오토 모드에서는 효율을 위해 변속시기를 매우 빠르게 앞당기고, 40km/h 를 조금 넘는 시내 주행에서도 4단 이상을 사용해 엔진 회전수를 항상 낮게 유지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급격한 가속 시의 반응은 굼뜬 편이다. 대신 ZF 9속 변속기의 고질적인 변속충격은 이른 변속을 통해 잘 억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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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 중 가장 경쾌한 주행성능을 만끽하고 싶다면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된다. 변속기는 이내 높은 회전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변속 타이밍을 늦추고 달릴 준비를 마친다. 이 상태에서는 제법 운전 재미가 있다. 스티어링 유격도 적고 높은 지상고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서스펜션 느낌도 좋다. 무엇보다 촘촘한 기어비와 적극적인 변속 덕에 가속력이 우수하다. 여러 경쟁자들이 운전재미를 포기한 것에 비하자면 이탈리아의 고건물 사이 좁은 골목길을 내달리는 500의 재미 요소를 SUV에도 그대로 옮겨온 점이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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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연비를 생각하면 언제나 스포츠 모드로 달릴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성은 소형 SUV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중형 세단에도 잘 탑재되지 않는 2.4L 가솔린 엔진이라니! 공인연비는 복합 9.6km/L에 불과하고 스톱&스타트 기능도 없다. 막히는 시내에서는 8km/L 밑으로 떨어지는 연비는 물론이요, 48L에 불과한 연료탱크 용량때문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연료계도 부담스럽다. 효율을 생각하면 역시 디젤이지만 비싼 가격이나 가솔린보다 훨씬 심하다는 소음·진동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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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X를 탄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쉬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완벽한 차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고, 형편없다고 단정짓기에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다. 그래도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크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예쁜 구석이 더 많이 부각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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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차는 많지만, 그 사이에서 소형 SUV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개성이다. 이 부분에서 500X는 이미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누가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깜찍한 외모지만, 너무 여성스럽거나 마초적이지 않다. 남성이 타도, 여성이 타도 부담스럽지 않다. 굵은 선을 살려 남성성을 강조한 레니게이드와는 다른 매력이다. 팝스타 트림을 기준으로 6월 말까지 2,990만 원에 판매되니 가격대도 합리적이다.

다만 바라건대 기왕이면 좀 더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라인업이 들어왔으면 한다. 140~162마력을 발휘하는 1.4L 가솔린 터보나 120마력 짜리 1.6L 디젤을 도입한다면 훨씬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 이 근사한 소형 SUV에 지금의 엔진은 과유불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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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500X는 여자친구처럼 사랑스러운 차다. 여성 운전자라면 남자친구를 대입해도 좋겠다. 누구나 이상형을 만날 수는 없다. 부족한 부분,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걸리지만 그런 단점조차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매력들이 넘친다. 불만을 가졌다가도 차에서 내려 돌아보면 절로 웃음짓게 되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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