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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후의 자연흡기 로드 파이터, 아우디 RS5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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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자연흡기 엔진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130년에 이르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해온 자연흡기는 환경규제와 에너지 절약이라는 미명 하에 멸종의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인류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자동차 매니아들에게는 가슴아픈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다운사이징과 터보차저가 자동차 업계의 대세로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주류 브랜드의 신차에서 자연흡기 엔진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특히 독일 브랜드들은 터보 엔진 적용에 매우 적극적이어서 BMW는 760Li에 들어가는 V12 엔진을 제외하면 전 라인업이 터보화(化) 됐고, 메르세데스-벤츠나 폭스바겐 그룹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슈퍼카들 역시 다운사이징에 돌입하면서 자연흡기를 고집하던 페라리가 순차적으로 파워트레인을 터보화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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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다운사이징의 광풍 속에서, 아우디 RS5는 동급의 마지막 남은 자연흡기 스포츠카다. BMW M4와 메르세데스-벤츠 C63 AMG는 모델 체인지와 함께 터보 엔진으로 변절했다. RS5도 머지 않아 모델 체인지가 이뤄진다면 터보 엔진으로 바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터보가 세상을 점령하기 전에 RS5를 시승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큰 행운이라 해두겠다.

RS(Rennsport, 독일어로 ‘레이싱 스포츠’에 해당)라는 이름처럼, RS5는 레이스카의 DNA를 이어받은 스포츠카다. 사소한 디자인부터 첨단 기술력에 이르기까지 레이스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매력 넘치는 최후의 자연흡기 전사, 아우디 RS5와 함께 사흘 간 곳곳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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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부터 남다르다. 근육질로 다듬어진 넓은 휀더와 휠하우스를 가득 채우는 20인치 휠, 온 세상의 공기를 다 빨아들일 것 같은 프론트 범퍼의 에어 인테이크가 예사롭지 않은 포스를 풍긴다. 원래 A5의 디자인 역시 멋스럽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바닥에 착 달라붙은 자세는 마치 달리기 출발선에 선 스프린터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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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는 RS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난 포인트가 들어가 있는데, 가령 벌집무늬 메쉬 타입 라디에이터 그릴, 프론트 및 리어 범퍼의 메탈릭 재질 립이나 반광 처리된 사이드 미러와 크롬 가니쉬가 그것이다. 이런 모델들의 매력은 바로 그 ‘은근함’이다. 길에서 마주치면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일반 모델에서 볼 수 없는 디테일에 다시 한 번 눈이 돌아가는 것. 그제서야 보이는 ‘RS’ 엠블렘과 대기를 울리는 중저음의 V8 사운드가 로드 파이터의 감출 수 없는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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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눈에 띄는 부분은 트렁크 리드에 장착된 전동식 스포일러와 RS5에만 장착되는 웨이브 브레이크 디스크. 전동식 스포일러는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하고, 운전석에서 조작할 수도 있다. 웨이브 타입 브레이크 디스크는 피나는 경량화의 산물이다. 드레스 업 효과 뿐 아니라 독특한 디자인을 적용해 브레이크 로터에서만 3kg의 경량화를 이뤄냈다. RS5가 얼마나 본격적인 스포츠 모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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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인테리어 레이아웃은 베이스 모델인 A5와 대동소이하지만, 알칸타라 재질의 D컷 스티어링 휠과 기이노브, 시트 등에서 차이가 난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타이트한 코브라 타입 버킷 시트. 어깨까지 감싸는 이 본격적인 버킷 시트는 운전자와 동승자의 몸을 꽉 조여 고정한다. 아니, 결속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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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꽉 끼는 버킷 시트에 앉아 두툼한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양산차에 탄 건지, 레이스카에 탄 건지 구분이 안 된다. 그 만큼 하드코어한 서킷 주행에도 부족함이 없는 실내 레이아웃인데, 나쁘게 말하자면 공도 주행에는 부적합할 정도로 불편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특히 몸집이 큰 기자의 경우 시트 하단의 볼스터를 최대한 넓혀도 골반이 꽉 끼어서 장시간 운전은 다소 고통스러웠다. 타고 내리기도 만만치 않은 RS5의 시트는 오직 준비된 드라이버에게만 허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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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급 모델답게 필요한 편의사양은 고루 갖추고 있다. 블루투스 스트리밍을 지원하는 아우디의 최신 MMI 플러스 AV 시스템과 뱅 앤 올룹슨 사운드 시스템, 다양한 주행모드를 지원하는 아우디 드라이브 셀렉트 등이 탑재됐다. 본격적인 스포츠 드라이브를 준비하면서도 필요 충분의 편의사양을 제공한다는 점은 꽤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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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말자. 4인승인 RS5의 뒷좌석에 장시간 사람을 태우는 것은 큰 실례가 될 수도 있다. 후열 탑승을 위해 시트를 젖혀도 등받이만 넘어갈 뿐, 원터치로 슬라이딩 되지 않아 수동으로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2열 탑승은 매우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RS5를 탈 능력을 갖췄다면 뒷문이 달린 패밀리 세단을 한 대 마련하는 것을 추천한다. RS5는 혼자 즐기기에도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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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둘러보느라 좀이 쑤셨다. 이제 꽉 끼는 시트에 몸을 집어넣고 시동 버튼을 눌렀다. 다기통 엔진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과격한 시동 모터 소리에 이어 V8 엔진이 우렁차게 고함 친다. 드라이브 모드를 컴포트나 노멀로 하면 가변 배기 시스템이 닫혀 배기음은 거의 들리지 않고, 낮은 톤으로 고동치는 엔진 사운드는 마치 사냥을 준비하는 맹수의 으르렁거림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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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돌덩이같은 서스펜션과 쿠션이 없는 시트는 드라이버의 허리에 적잖은 고통을 주지만, 스로틀 반응과 스티어링 무게는 의외로 일상 주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가볍다. 물론 컴포트 또는 오토 모드에서의 얘기다. 가속 페달은 가볍지만 반응을 늦춰 울컥임도 없고 막히는 시내에서도 부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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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 앞서 제원을 살펴보자. RS5의 심장은 4.2L V8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다. 지난 세대인 B7 RS4에 처음으로 탑재된 이 엔진은 B7 S4와 초기형 B8 S5에 디튠된 버전으로 탑재됐었고, 미드십 슈퍼카인 R8의 V8 버전에도 같은 엔진이 올라갔다. 하지만 최고출력 450마력, 최대토크 43.9kg.m의 성능을 내는 것은 RS5에 탑재된 것이 유일하다. 아우디의 V8 자연흡기 엔진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것이다.

여기에 7단 S 트로닉 듀얼 클러치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번개같은 변속을 해내며, 설계된 아우디가 자랑하는 콰트로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이 평상시에는 앞뒤 구동력을 40:60으로 배분하다가 주행 환경에 따라 70:30에서 15:85까지 동력을 몰아주면서 압도적인 트랙션과 주행 안정성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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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지면 어떤 결과물로 나타날까? 탁 트인 길이 나타나 드라이브 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꾸고 패들 시프트를 당겨 기어를 낮췄다. 가변 배기가 열리면서 고회전 배기음이 온 도로에 울려 퍼진다. 계기판의 레드 존은 8,000rpm을 넘어야 시작된다. 실제 퓨얼 컷(연료 공급 차단)은 약 8,300rpm 정도에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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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까지 가볍고 둔했던 가속 페달과 스티어링 휠은 순식간에 레이스카의 그것처럼 돌변했다. 0-100km/h 가속을 4.5초 만에 마치는 가속력이 등을 힘껏 떠민다. 공공도로에서 이 성능을 100%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RS5의 최고속도는 280km/h에 전자적으로 제한돼 있지만, 충분히 300km/h까지 치고 나갈 성능이 남아 있다. 물론 빠를 뿐 아니라 안정적이다. 다운포스를 강화하는 리어 스포일러와 RS5를 위한 공기역학적 설계, 섬세한 하체 세팅 등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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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중에는 예상 외로 배기음보다 엔진음이 더 크게 들린다. 카랑카랑하게 고동치는 V8 엔진 사운드는 자꾸만 다운 시프팅을 유도한다. 레이싱을 고려한 모델 답게 가속 시에는 레드존을 두들겨도 절대로 강제 변속이 되지 않고 운전자의 명령을 기다린다. 반면 다운 시프팅 시에는 칼 같은 속도로 8,000rpm까지 레브 매칭을 해 준다. 시퀀셜 기어가 장착된 레이스카와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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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에서 빠르다고 코너에 약하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와인딩 로드에 들어서면 되려 RS5의 진가가 드러난다. 여느 후륜 스포츠카라면 오버스티어가 날 만한 깊은 헤어핀 코너에서도 RS5는 빨려 들어가듯 코너를 파고 든다. 이내 코너를 탈출할 때는 앞바퀴가 차를 끌고 나가듯 매끄럽게 빠져 나간다. 구동력을 적극적으로 배분해 주는 콰트로 시스템의 공이 크다. 275/30 R20 시리즈의 극단적인 P-Zero 타이어도 가혹한 코너링에서 꾸준한 그립력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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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스트가 터지면서 급격하게 토크가 쏟아지는 터보 엔진과 달리 어느 회전 영역에서도 고르게 토크가 뿜어져 나오는 자연흡기 엔진이기 때문에 코너링에서의 스로틀 조작도 한결 수월하다. 코너링 안정성은 후륜구동 터보 엔진을 탑재한 경쟁자들보다 확실히 한 수 위다. 아찔한 오버스티어의 재미는 덜 하겠지만, 달리기 실력으로만 보자면 분명한 강점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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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할 독자를 위해 시승 간의 평균 연비도 첨언한다. 공인 연비는 복합 7.3km/L인데 시내 주행 평균 연비는 4.5km/L를 기록했다. 80~100km/h 내외의 크루징 환경에서는 10km/L까지도 연비를 올릴 수 있지만, 우렁찬 엔진 소리를 들으면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좋은 연비를 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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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두자. RS5는 성능 상 경쟁 모델인 M4, C63 AMG 등과는 약간 다른 지향점을 지닌 차다. 경쟁자들이 서킷 주행을 즐기면서도 데일리 카로 타기에 큰 불편이 없는 반면 RS5는 보다 본격적인 레이싱 DNA를 많이 품고 있다. 고성능 GT카의 포지션에 위치한 S5라는 하위 모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과 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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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RS5를 선택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일상 주행에서의 편안함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보다 편안한 다른 차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RS5는 때문에 퍼스트 카 보다는 세컨드 카로써 빠르고 강력한 스포츠카가 필요한 드라이버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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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신형 모델이 머지 않아 출시되는 시점에서 곧 구형이 될 RS5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차는 400마력 대 D-세그먼트 고성능 모델 중 최후의 자연흡기 V8 엔진 모델이 될 지도 모른다. 그것 만으로도 RS5를 소장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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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슈퍼카 못지 않은 아찔한 가속력과 놀라운 안정감, 심장을 뛰게 만드는 사운드까지… 다소간의 편안함을 희생하고 RS5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여전히 많다. 도로 위에서의 매 순간을 열기 가득한 카 레이스의 현장으로 만들어주는 이 차를 구입하는 데에 1억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준비된 드라이버에게 강력한 로드 파이터, RS5는 가장 역동적인 스포츠 드라이빙을 선사한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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