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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디젤 세단의 괜찮은 첫 걸음, 현대 그랜저 디젤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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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년 전만 해도 승용 세단을 고를 때 연료의 종류를 선택할 일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배기량을 선택하는 정도였고, 승용차에 휘발유를 넣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승용 디젤을 만들어온 독일 브랜드들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서자, 불과 몇 년 사이 업계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소형차든 대형차든 디젤엔진을 요구하고 있으며, 신차가 출시될 때 디젤 파워트레인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 만큼 승용 디젤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효율성과 경제성, 친환경성을 앞세운 승용 디젤이 시장을 지배하자 국산차들도 부랴부랴 디젤 라인업 구축에 나섰다. 소형 및 준중형급에 착착 디젤엔진이 도입되었고, 르노삼성과 쉐보레는 이미 중형차에도 디젤엔진을 도입했다. 현대는 수입 프리미엄 디젤 세단을 견제하기 위해 준대형급에 먼저 디젤엔진을 탑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그랜저 디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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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디젤은 이처럼 국내시장에서 쉽지 않은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의 고민에서 탄생한 모델이다. 디젤엔진의 추가에 따라 그랜저는 가솔린 4, 6기통, LPi, 하이브리드, 디젤을 아우르는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렇게 다양한 파워트레인 라인업을 제공하는 차는 흔치 않다. 그만큼 그랜저가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막강한 라인업에 힘입어 그랜저는 지난 달 국산 준대형 전체판매의 70%가 넘는 점유율을 보여주며 독보적인 인기를 증명했다.

연비 또한 중요하지만, 승용 세단에 디젤이 접목된 이상 성공의 키 포인트는 얼마나 소음, 진동을 잘 억제하여 휘발유 못지 않은 안락함을 제공하는가 이다.  현대는 과거에도 승용 디젤을 출시했다가 소음, 진동에 대한 많은 불만에 조용히 철수한 바 있다. 그 뒤로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현대가 내놓은 디젤 세단이 얼마나 많은 진화를 이룩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그랜저 디젤 시승에서 가장 눈여겨 본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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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부산 모터쇼에서 그랜저는 디젤 파워트레인 공개와 함께 페이스 리프트가 이뤄졌다. 최근 현대의 방침에 따라 그랜저 역시 디자인을 대폭 손보기보다는 디테일한 부분들을 고쳐 전반적인 무게감을 살리는 데에 집중했다.

전면부에서는 범퍼의 디자인이 바뀌었고, 헤드램프에 유광 블랙베젤이 추가되었다. 기존 그랜저가 플루이딕 스컬프처 1.0에 따라 곡선이 가득한 디자인이었다면, 새 범퍼는 조금 더 직선이 예리한 형태로 바뀌면서 제네시스, 쏘나타와 비슷해졌다. 안개등은 상위 트림에서 LED 안개등을 채택하고 크롬 장식이 추가되면서 한결 고급스러워졌다. 또 새로 디자인된 휠도 곡면을 예리하게 다듬으면서 입체감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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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은 한 눈에 디자인 변화를 찾기 힘들다. 범퍼 매립형 머플러 팁이 곡선에서 각을 살린 오각형 형태로 바뀌고 디퓨저 부분이 바디칼라와 무관하게 검은 색으로 바뀐 것이 그나마 차이점이다. 페이스 리프트가 이뤄질 때는 내부의 논의 외에도 소비자들을 초청하고 품평회를 진행하며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디자인 변화가 적다는 것은 그 만큼 기존 그랜저의 디자인적 완성도가 높았다는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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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디자인은 대동소이하지만, 디테일이 차량에 중후함을 한 결 더해주었다는 데에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가령 라디에이터 그릴의 경우 형상은 그대로지만 번쩍이는 유광 크롬 대신 메탈 느낌을 살린 반무광 재질을 채택하여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신형만 두고 보면 별로 안 느껴지지만, 초기형과 함께 세워두면 소소한 디테일 업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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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도 마찬가지로 큰 레이아웃 상의 변화는 없다. “그랜드 글라이드”라는 그랜저의 큰 디자인 틀은 유지되고 있지만, 보다 직관적인 조작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센터페시아를 뒤덮었던 버튼 수를 대폭 줄여 깔끔해졌음에도 조작편의성은 나빠지지 않았다. 익스테리어와 마찬가지로 소재의 재질감에 신경을 많이 써서 저렴한 플라스틱 느낌을 많이 해소하였다. 버튼의 형태나 조작감도 그렇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네시스와 쏘나타 등 최신 모델들과 궤를 같이 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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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가지고 있던 단점들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전동식 텔레스코픽 기능은 여전히 작동범위가 짧아 키가 큰 운전자는 편안한 자세를 잡기가 어렵다. 도어트림 안쪽 끝에 위치한 전동시트 조절 버튼은 메르세데스-벤츠의 것을 닮아 보기 좋고 직관적이기는 하지만, 너무 안쪽에 위치해 시트에 앉은 상태에서 조절하기 불편하게 되어있다. 드라이브 모드 셀렉트 버튼이 스티어링 칼럼 왼쪽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것도 생뚱맞다.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소한 배려가 더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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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넓다. 다른 건 몰라도 현대차의 놀라운 공간확보능력은 알아줘야 한다. 앞좌석과 뒷좌석에서 동시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을 수 있는 차는 이 차급에서도 흔치 않다. 시트 역시 2열 가운데 자리도 큰 불편함 없이 앉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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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편의사양은 그랜저 치고는 빈약하다. 쏘나타에도 탑재되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나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AVM), 자동주차 시스템(ASPAS) 등은 아예 선택조차 할 수 없다. 아슬란 출시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볼륨이 큰 트림의 편의사양을 하향조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왕년에는 성공의 대명사였던 그랜저가 이제는 편의사양에서도 쏘나타와 큰 차이를 두지 못하고 있으니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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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적으로 큰 변화가 없는 이상 진면목을 확인하는 것은 파워트레인 쪽이 되겠다. 운전석에 앉고 문을 닫으면 시트가 당겨지고, 시동 버튼을 누르면 웰컴 사운드와 함께 불이 들어온다. 여기까지는 여느 그랜저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시동이 걸리면 디젤 특유의 칼칼한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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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디젤에 탑재된 2.2L R엔진은 쏘렌토, 싼타페, 카니발 등에 탑재되고 있는 현대기아의 중형급 디젤엔진이다. 아이들링 상태에서의 소음, 진동은 BMW 520d 와 비슷한 수준인데, BMW가 동급에 비해 디젤엔진의 소음, 진동이 큰 편인 것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지만 심하게 불쾌하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소음, 진동이 큰 엔진임에도 같은 엔진이 탑재된 여타 모델과 비교하면 그랜저에서는 상당 수준 억제되었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그러나 가솔린 엔진 그랜저를 타본 사람이라면 큰 소음, 진동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가속 페달을 밟아 속도를 올릴 수록 소음, 진동은 사그라든다. 60km/h 이상의 속도영역에서는 가솔린 모델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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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디젤의 제원은 최고출력 202마력, 최대토크 45.0kg.m으로 풍부한 토크가 강점이다. 토크가 넉넉한 것은 시내주행에서 큰 메리트가 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거나 추월가속이 필요할 때 터져나오는 가속력이 매우 훌륭하다. 디젤엔진의 특성상 고회전 영역에서는 출력이 떨어지지만, 소위 말하는 실용영역대에서는 1,700kg에 육박하는 차체를 움직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초반 가속력은 동 모델의 3.0L 가솔린 엔진보다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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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모드는 노멀, 에코, 스포츠 등 3가지를 지원한다. 에코모드는 스로틀 반응이 확연히 느려지고 항상 변속기가 높은 단수를 유지해 rpm을 낮게 사용하도록 한다. 약간의 연비상승이 있긴 했는데, 조금만 가속해도 강제로 업시프팅을 해버리니 디젤엔진의 토크를 활용하기가 힘들어진다. 또 에코모드에서 유독 3단 변속 시 불쾌한 충격이 발생했다. 어짜피 주행모드로 인한 연비 차이가 크지 않아 나중에는 거의 항상 노멀이나 스포츠 모드에 두고 주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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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이 정도 체급에 스포츠 모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스티어링이 무거워지고 중속회전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주니 운전이 더 수월하다. 미션의 반응속도는 여전히 한 템포 늦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멀이나 에코보다는 한결 빠른 변속이 이뤄진다.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VDC가 켜진 상태에서도 약간의 휠스핀을 내면서 달려나가는데, 수동모드에 놓지 않더라도 rpm을 높게 사용하며 꾸준히 가속한다. 지적받아온 스티어링 이질감도 많이 해소되어 전기형 그랜저보다 고속안정성도 좋아졌다.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보다는 내실을 닦겠다는 현대차의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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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션은 그랜저답게 무른 편이다. 예전 현대차처럼 어이없이 자세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댐핑 스트로크가 긴 편이라서 코너를 돌 때마다 휘청이는 느낌이 든다. 형제차인 기아 K7에 비해서도 훨씬 부드러워 스포티한 드라이빙에 적합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차가 준대형 패밀리 세단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일상주행에서는 울렁이는 느낌 없이 편안한 주행이 가능했다. 노면이 안 좋은 한국의 도로여건에서는 사실 그랜저만큼 편안한 서스펜션 세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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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 디젤의 최대 메리트는 디젤엔진의 효율을 승용세단의 안락함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이고, 효율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연비이다. 70L의 연료탱크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주행가능거리는 거의 900km에 가까운데, 이 만한 차가 진짜로 이 정도를 주행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의문을 불식시키듯 4박 5일간 매일 200km 가량 연비를 고려하지 않고 주행을 했음에도 재급유가 필요하지 않았고, 반납 시 주행가능거리가 100km정도 였으니 실주행거리와 큰 오차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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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는 주행환경에 따라 차이가 컸다. 고속화도로에서 막힘없이 크루징을 할 때는 16~17km/L 정도를 오갔고, 연비에 집중하여 운행할 때는 20km/L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정체가 있는 시내구간에서는 10km/L 내외였으며 연비와 거리가 있는 스포츠 주행에서도 8km/L 밑으로는 잘 내려가지 않았다. 시내주행에서는 ISG가 없어서 낭비되는 연료가 아까웠다. ISG를 탑재하면 아이들링 시의 진동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연비 향상을 위해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연비주행의 팁을 주자면 기본적으로 토크가 풍부해 가속력이 뛰어나고, 중량이 무거워 탄력주행이 잘 되다보니 꾸준히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보다는 지그시 페달을 밟아 속도를 조금 올린 뒤 탄력주행하는 것을 반복하는 쪽이 더 연비가 좋았다. 이런 주행방법을 잘 활용하면 1회 주유로 1,000km 이상 주행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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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메리트 덕분에 그랜저 디젤은 기존 시장을 나눠갖기보다는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데에 성공했다. 40대 이상이 주류였던 그랜저 수요층에 30대 소비자도 늘어나게 된 것. 시장을 확대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쏠쏠한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야할 길은 멀다. 현재 시장 주류를 이끌고 있는 독일제 승용 디젤이 대부분 후륜구동 프리미엄 모델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5시리즈나 E클래스 디젤을 구입하려는 고객이 과연 그랜저를 같은 후보군에 두고 고민할 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그랜저 디젤의 늘어난 판매는 어쩌면 수입 디젤차가 아니라 고전하고 있는 쏘나타의 고객을 빼앗아 온 결과일 수도 있다. 수입 승용 디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좀 더 컴팩트한 중형세단이나 제네시스같은 후륜구동 모델에의 디젤 파워트레인 적용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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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디젤에는 현대차의 고민이 담겨있다. 수입차에 비해 늦게 뛰어든 승용 디젤 시장에서 어떤 점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지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다행히도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NVH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과 수입 디젤에 못 미치는 연비에 대한 불만은 남아있지만, 가격대비 합리적인 품질과 괜찮은 주행성능을 갖춰 같은 동 가격대에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이다. 그랜저 디젤 자체보다도 현대가 후발주자의 위치에서 이 정도까지 수입 승용 디젤을 따라왔다는 것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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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없는 완성도를 보면서 앞으로 출시될 현대기아의 디젤 세단들이 더 기대된다. 이미 내년 중 쏘나타와 제네시스에 디젤엔진이 추가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으며, 기아차 역시 내년에 K5와 K7 후속모델을 통해 디젤 라인업을 선보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향후 출시될 디젤 세단들은 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혈전이 벌어지는 승용 디젤의 전장에서 과연 현대차가 반격에 성공할 수 있을 지 감히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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