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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카마로 SS 시승기, 아메리칸 V8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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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8! 이 짧은 단어는 탄생 이래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어 왔다. 고급차와 성숙한 기술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V8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하얀 타이어 연기를 내뿜으며 대지를 박차고 나가는 스포츠카의 모습이다.

특히 미국인들에게 V8 엔진은 하나의 아이콘이다. 풍요의 상징이자, 드넓은 국토를 가로지르는 여정에도 지치지 않고 넉넉한 힘을 발휘하는 여행의 동반자다. 최근에는 환경 이슈에 밀려 위상이 예전같지 않지만, 여전히 “V8″을 외치는 영화 속 광신도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마음 속 깊은 곳에 품은 로망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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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국산 V8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 때는 심지어 V8이 “사치스럽고 기름만 많이 먹는 구식”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날카롭게 다듬어진 미국산 V8은 이제 내로라 하는 유럽 스포츠카들과도 대등한 경쟁이 가능해졌다. 쉐보레 카마로 SS가 그것을 몸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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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카마로가 수입됐을 때 원성을 쏟아낸 아메리칸 머슬 매니아들을 기억하는가? 멋진 레트로 스포츠카에 얌전한 V6 엔진이라니, 구색갖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기대 이하의 주행 감각과 비싼 가격까지 더해져 빈 말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판이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고성능에 대한 수요가 날로 늘어 독일 3사 고성능 브랜드의 실적이 치솟고, 지난 해부터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대배기량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들었다. 작년 포드가 머스탱 GT를 들여와 순식간에 완판하면서, 이제는 아메리칸 V8이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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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한국GM은 과감히 신형 카마로의 V8 버전을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물론 북미에서 카마로의 주력은 2.0 터보와 3.6 LT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어짜피 수익성을 기대하지 않고 들여오는 것이라면 차라리 “강력한 한 방”이 낫다는 셈법이다. 그래서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카마로의 사전계약 물량은 스포츠카로서는 이례적인 700여 대에 달한다.

카마로가 미국 스포츠카 시장에서 지닌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1966년, 포드 머스탱의 신화적인 성공에 자극받아 탄생한 카마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머스탱의 최대 라이벌이다. 한 번도 단종되지 않았던 머스탱과 달리 2000년대 카마로가 잠시나마 단종된 적이 있었지만, 영화 “트랜스포머”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해 이제는 세계적인 인지도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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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로(Camaro)”는 출시 당시 쉐보레의 스포츠카 라인업들이 콜벳(Corvette), 쉐벨(Chevelle), 콜베어(Corvair) 등 알파벳 “C”를 돌려 쓴 데에 맞추기 위한 네이밍이다. 야사에 따르면 담당자들이 C로 시작하는 2,000개의 단어를 모아놓고, 가장 멋진 발음이 나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어원은 프랑스 고어인데, 동지(comrade)에 해당하는 의미라 의외로 온순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이제 카마로는 머스탱과 함께 아메리칸 스포츠카의 양대산맥으로 자리잡았다. 이번에 한국 땅을 밟은 것은 머스탱과 마찬가지로 6세대. 파격적이었던 5세대의 레트로 디자인을 보다 날카롭게 다듬었다는 점에서는 머스탱과 일맥상통하지만, 최신 쉐보레 디자인 언어에 따라 날을 세운 직선이 강조된 것은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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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에 풍성한 근육을 덧대 볼륨을 한껏 부풀린 반면 유리 면적은 극단적으로 줄여 컨셉트카같은 비례를 완성했다. 모두가 꿈꾸는 멋진 모습이지만 좁은 실내와 다소 갑갑한 시야는 감수해야 한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뒷범퍼에 당돌하게 붙어있는 “SS” 엠블렘은 고성능의 상징이다. 쉐보레의 SS는 “슈퍼 스포츠(Super Sport)”를 의미하며, 머슬카 성능 경쟁이 시작되던 1964년 쉐벨 SS에 처음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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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20인치 타이어며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며, 모든 요소가 강렬하다. 흔히 카마로 SS가 BMW M4나 메르세데스-AMG C63 등 독일제 D-세그먼트 고성능 모델과 그 성능 면에서 비교되곤 하지만, 도로 위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감 만큼은 그들보다도 더 강하다고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잘 생겼을 뿐 아니라 퍼포먼스 역시 놀라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부터 V8 엔진이 탑재된 SS는 성능 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국내에 수입됐던 V6 버전은 “범블비” 디자인 외에 성능은 매력적인 요소가 없었다. 6세대 이르러서는 디자인에 걸맞는 심장까지 얻었으니 금상첨화요, 화룡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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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이 되는 LT1 6.2L V8 엔진의 최고출력은 453마력, 최대토크는 자그마치 62.9kg.m에 이른다. 이는 국내에서 시판 중인 V8 엔진 중 벤틀리 뮬산 다음으로 큰 배기량이며, 자연흡기 엔진으로는 가장 큰 배기량이다. 엔진은 전통적인 스몰블록에 OHV 방식을 사용한다. 0-100km/h 가속은 4.0초로 BMW M4보다 0.1초 빠르다.

자, 이 숫자들만으로도 벌써 심장이 뛰지 않는가? 아무리 다운사이징 터보가 득세한 시대라고 하지만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울림은 분명 터보 엔진과는 차이가 있다. 시동거는 순간의 고동부터 다르다. 크랭크샤프트가 거친 소리와 함께 회전을 시작하면, 대기의 떨림과 함께 사자후가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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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시장의 소음 규제로 인해 퍼포먼스 배기는 적용되지 않고 일반 배기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사운드는 단연 탁월하다. 같은 V8 엔진이라도 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4L대 엔진과, 요즘은 찾기 어려운 6L급 엔진은 무게감이 다르다.

OHV 엔진은 한 때 퇴물처럼 여겨졌지만 GM은 자사 최강의 엔진에서 OHV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최신 OHC 엔진만큼의 성능과 효율을 갖췄다. 직분사는 물론이고 가변 밸브 타이밍(VVT)도 적용돼 있다. 항속 중에는 4개의 실린더를 멈춰 연비를 향상시키는 컷 오프 기능도 탑재된다. 물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수 있을 때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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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차를 움직여 본다. 투어 모드에서는 비교적 얌전하다. 좁은 시야는 불편하지만, “지금 스포츠카를 운전 중이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장점이랄까? 전방 시야가 특히 제한적인 반면 거대한 사이드미러 덕에 후방시야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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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시작하고 나서야 실내를 둘러본다. 좁은 실내에 미래적인 이미지를 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이전보다 재질감이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미국차 특유의 투박한 마무리가 느껴진다. 가령 스티어링 휠은 그립감도 좋고 조작성도 나쁘지 않지만 넓적한 형상이 썩 세련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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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제외하면 조금 불편한 부분들도 눈에 들어온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각도로 기울어진 디스플레이는 도무지 적응이 불가능하고, 그 아래 생뚱맞은 위치에 자리잡은 송풍구도 시프트 노브와의 간섭으로 조작이 영 불편하다. 송풍구 테두리를 돌려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은 그나마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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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를 비롯한 수납공간도 부족해 이 차를 타려면 적잖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뒷좌석은 그냥 잊자. 백팩 정도를 놓기 딱 좋고, 피난길이 아니라면 사람을 태우는 일은 없는 편이 좋다.

그렇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 차는 V8 스포츠카다. 잘 달린다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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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나 트랙으로 바꾸면 차의 거동이 점점 타이트하게 조여진다. 스티어링은 더 무겁고 날카롭게 반응하고,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 서스펜션은 조금씩 감쇠력을 높인다. 변속 타이밍도 늦춰지고 가속 페달 반응도 예민해져 숨겨진 본성을 오롯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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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은 거칠고 야성적이다. 덤불 속 맹수가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듯 순식간에 속도계는 100km/h를 넘어선다. 폭발적인 6.2L 엔진의 배기음은 덤이다. OHV 엔진 특유의 넉넉한 토크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시트에 파묻히는 듯한 가속감을 느껴본 것이 실로 얼마 만인지!

450마력 안팎의 성능을 내는 스포츠카는 결코 적지 않지만, 카마로처럼 과격하게 가속하는 차는 드물다. 대부분의 라이벌들은 이보다 훨씬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속도를 낸다. 반면 카마로는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듯 순식간에 대지를 박차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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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모드에만 놔둬도 자세제어장치는 운전자에게 꽤 많은 자유를 허용해 휠스핀이 일어나기 일쑤다. 때문에 코너에 들어설 때는 침착한 조향이 필요하다. 혹시나 엔진이 무거워 쩔쩔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이 가벼운 스몰블록 엔진이 얹힌 노즈는 허둥대지 않고 방향을 잡는다.

아메리칸 머슬이니 코너에서는 젬병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다. 약간의 롤링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고, MRC 서스펜션은 매 순간에 맞게 감쇠력을 조절하며 시종일관 안정감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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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모드에서는 그 야성미가 극에 달한다. 서스펜션의 변화는 그다지 극적이지 않지만, 파워트레인의 응답성과 스티어링의 예리함은 유럽 경쟁자들에게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8단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는 토크컨버터 방식이 무색하게 번개같은 변속을 해낸다. 다운시프트는 조금 느리지만 흠잡을 정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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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드리프트도 시도해 봤다. 지난 번 머스탱으로 같은 장소에서 시도했을 때는 좀처럼 그럴싸한 드리프트가 구현되지 않았지만, 카마로는 이조차도 가뿐히 해낸다.

강력한 파워로 차를 날린 뒤에도 불안감 없이 방향을 유지하며 운전자의 명령에 충실하다. 사자나 호랑이를 사육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 사나운 성질머리에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지만 영리하게 어려운 과제들을 완벽하게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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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카마로 SS를 칭송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파격적인 가격이다. 카마로 SS의 국내 출시가는 5,098만 원에 불과하다. 비슷한 성능의 스포츠카들이 대부분 1억 원대를 호가하는 것에 비하자면 절반에 불과하다. 폭발적인 반응 역시 그런 공격적인 가격정책에 기인한다.

더군다나 카마로는 환경보호와 자원절약이라는 거대한 시대정신 앞에 수많은 브랜드들이 터보와 다운사이징이라는 타협안을 내놓을 때,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뻔뻔스럽게 등장한 자연흡기 V8 심장의 소유자다. 풍부한 대중차 라인업으로 평균 배출가스량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쉐보레이기에 가능한 사치다. 어쨌거나 소비자 입장에선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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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록 낭만을 잃어가는 자동차 업계에서 카마로 SS는 오래된 아메리칸 V8의 로망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가슴뛰는 자동차다. 6.2L 자연흡기 V8, 멋을 아는 레트로 디자인, 숫자 이상의 성능까지 갖춘 아메리칸 V8은 언제나 옳다.

오랜 라이벌 머스탱은 물론 고매한 유럽 스포츠카들도 이 마초 냄새 풍기는 카우보이의 등장에 긴장할 때가 됐다. 열성적인 스포츠카 매니아들 너도 나도 “V8! V8!”을 외치며 카마로 SS를 예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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