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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히스토리 : 전설의 시작, 람보르기니 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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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분야에서 전설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자동차 업계에서는 단순히 많이 팔리거나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전설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없다. 자동차 역사 전체를 뒤흔들 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않으면 그저 대중에게는 ‘잘 팔린 차’ 정도로만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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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전설이라 불릴만 한 가치가 있는 모델이라 하겠다. 미우라는 ‘람보르기니’라는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이후 람보르기니의 성장동력이 되어줬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슈퍼카의 디자인적·기술적 표준을 제시한 모델이기도 하다. 또한 페라리를 뛰어넘겠다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염원을 이뤄준 것도 미우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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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람보르기니의 탄생과 역사,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모델들을 이야기하면서 미우라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던 적이 있다. 미우라 하나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넘치는 까닭이다. 현대적인 슈퍼카의 표상이 된 람보르기니의 첫 번째 전설, 미우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슈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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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괴물같은 성능의 미드십 슈퍼카만을 생산하지만, 사실 초창기 람보르기니는 스포츠카보다 그랜드 투어러에 더 집중하는 회사였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경쟁사인 페라리의 로드카들이 레이스카처럼 불편한 것을 싫어했으며, 첫 양산차인 350GT를 만들 때도 레이스카처럼 고회전형인 엔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엔진 설계자인 죠토 비짜리니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애당초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하드코어한 스포츠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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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람보르기니에서 일하던 젊은 엔지니어들의 생각은 달랐다. 쟝 파올로 달라라, 파올로 스탄짜니, 밥 월레스 등 3명의 엔지니어들은 업무 후 남은 시간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미드십 스포츠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스포츠카는 레이싱 DNA를 잔뜩 가미하여 도로 위에서도, 트랙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당초 이런 하드코어 모델에 관심이 없었지만, 엔지니어들이 구상한 이 새로운 모델이 회사의 이미지 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보고 프로젝트 진행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미우라의 프로젝트명은 P400으로 정해졌는데, 400은 배기량을 의미했으며 P는 이탈리아어로 ‘뒷쪽’을 의미하는 ‘Posteriore’의 이니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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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0의 혁신은 기본 설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공도용 스포츠카는 엔진을 앞쪽에 둔 FR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미드십 엔진 방식은 레이스카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P400은 기존에 400GT에 탑재되던 3.9L V12 엔진을 미드십에 가로배치하여 양산 미드십 스포츠카의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작은 쿠페형 바디에 V12 엔진을 가로배치로 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때문에 람보르기니는 기어박스와 엔진을 일체형으로 제작하여 윤활계통을 공유하도록 설계했으며 이러한 설계는 초기형부터 약 5년 간 유지되었다. 그 밖에도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차체 앞쪽에는 스페어 타이어를 적재하고 엔진 뒷쪽에 트렁크 공간을 확보하는 등, 처음으로 미드십 로드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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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난관을 헤쳐나가며 만들어진 P400의 섀시는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관객들과 관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작은 스포츠카 브랜드였던 람보르기니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순식간에 P400의 예약자가 100명이 넘었고, 탄력을 받은 람보르기니는 베르토네의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유려한 바디를 얹어 이듬해 제네바 모터쇼에서 마침내 양산형 모델이 공개되었다.

당시 20대의 나이였던 마르첼로 간디니는 경험이 부족하여 보편적인 자동차의 레이아웃이나 탑승자의 편의 등을 고려하는 능력이 부족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디자인이 가능했다. 마르첼로 간디니 역시 P400의 공개와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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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간디니가 디자인한 바디는 모터쇼 직전에서야 완성되었고, 유감스럽게도 너무 설계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나머지 바디 카울에 엔진조차 들어가지 않았던 것. 때문에 모터쇼 때 전시된 양산형 P400의 엔진은 제거되어야 했고, 람보르기니는 엔진룸을 열어보려는 기자들을 쫓아내느라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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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제네바 모터쇼의 스타로 등극한 P400의 모델명은 ‘미우라’로 결정되었다. 람보르기니 모델에 황소 엠블렘이 부착된 것도 이 때부터 였는데, 자신의 별자리를 따 황소 엠블렘을 붙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후일 전설이 된 이 모델에 스페인에서 가장 흉폭하기로 소문난 투우소를 키우는 사육사 가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후 출시된 람보르기니의 모델들-이슬레로, 무르시엘라고, 레벤톤 등의 이름도 모두 미우라가 키워낸 황소들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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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P400으로 불리는 초기형 미우라의 엔진은 3.9L V12 엔진. 최고출력은 350마력에 달했고 0-60mph(약 96km/h) 가속은 7초면 충분했다. 최고속도는 275km/h에 이르렀는데,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당시만 해도 미우라는 출시와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로 등극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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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미우라는 사실 성급한 고객들의 재촉때문에 엔지니어들이 기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 급하게 설계가 수정되면서 섀시의 강성이 부족하고 코너링이 지나치게 예민하여 조작이 까다롭다는 문제가 존재했다. 때문에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를 생산하면서 조금씩 설계를 개선해나갔고, 뒤로 갈수록 차량의 품질과 조종성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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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는 성능과 인테리어를 개선한 P400S 모델이 출시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엔진. 배기량은 그대로였지만 흡기 인테이크 직경을 넓히고 압축비와 밸브 타이밍을 조정하여 최고출력은 370마력, 최대토크는 39.6kg.m으로 높아졌다. 또 초기 미우라 고객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인테리어 품질도 대폭 손을 봤다. 파워 윈도우와 에어컨 옵션이 추가되었으며, 불편했던 각종 버튼류의 위치가 재배치되었다. P400S는 미우라 전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려 상업적으로 성공한 모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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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는 미우라의 최종 진화형인 P400SV가 등장했다. SV는 이탈리아어 ‘수페르 벨로체(Super Veloce)’의 약자로, 영어로 하자면 ‘Super Fast’에 해당한다. P400SV 버전에서는 미우라의 리어 서스펜션 구조가 개선되어 주행성능과 강성이 대폭 향상되었으며, 엔진 출력도 소폭 상향되어 최고출력이 385마력에 이르렀다. 또 엔진 과열을 일으키던 일체형 기어박스를 분리하여 윤활계통을 개선하고 기계식 LSD를 기본장착하는 등 그간 미우라가 가지고 있던 결점들을 해소하는 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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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의 탄생은 페라리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던 모양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페라리의 양산 스포츠카는 FR 레이아웃을 고집해왔는데, 미우라 탄생 이후 70년대에 들어서는 페라리도 미드십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했다. 람보르기니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던 페라리 역시 대세의 흐름에는 거역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렇게 전설이 된 자동차

미우라는 공도용 스포츠카로써는 거의 처음으로 본격적인 미드십 레이아웃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자동차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한 획을 그은 모델이다. 당시 람보르기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된 미우라는 다양한 파생형 모델들도 개발되었는데, 미우라가 걸어온 궤적을 훑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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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는 미우라 초기 개발에 참가했던 엔지니어이자 테스트 드라이버인 밥 월레스에 의해 FIA 레이스카를 테스트하기 위한 연구용 차량이 개발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미우라 이오타(Miura Jot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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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시번호 #5084인 미우라 이오타는 단 한 대만이 만들어졌는데, 양산형 미우라의 기본 설계는 유지하되 철저히 레이스를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바디 패널의 많은 부분이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대체되고, 윈도우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으며, 경량 휠과 고정식 헤드라이트, 프런트 스포일러 등의 설계가 추가되었다. 엔진 역시 압축비를 높이고 캠샤프트를 개조하였으며 드라이섬프 윤활방식과 법규를 고려하지 않은 배기 시스템을 장착하였다. 그 결과 이오타는 양산형 미우라에 비해 무려 800파운드(약 360kg)나 가벼워지고 최고출력은 약 440마력까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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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km 가량의 테스트 주행을 마친 미우라 이오타는 어느 고객에게 판매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전소되고 말았다. 그렇게 미우라 이오타는 환상의 자동차가 되었지만 오늘날 많은 람보르기니 팬들은 미우라에 커스텀 바디킷을 장착하여 이오타를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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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타는 사라졌지만 당시 람보르기니의 고객들에게도 레이스 사양의 미우라는 퍽 매력적이었다. 끈질기게 이오타 판매를 요구해온 몇몇 고객들의 성화에 람보르기니는 P400SV에 이오타 사양을 적용하는 팩토리 튜닝을 실시했고, 그렇게 탄생한 공도 버전의 이오타가 바로 미우라 SV/J이다. 오직 5대만 만들어졌으며 고객의 요구에 따라 그 때 그 때 제작되면서 5대 각각 약간의 사양 차이가 있다고 알려진다. 이후 87년에 공장에 있던 미완성 차체를 사용해 6번째 SV/J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당시 람보르기니의 오너였던 쟝 클로드 밈란을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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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는 미우라를 디자인한 베르토네에 의해 로드스터 쇼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68년 브뤼셀 모터쇼에 출품된 미우라 로드스터는 여러 행사에 전시된 뒤에 ILZRO(국제 납·아연 연구 기구)에 매각되어 차량용 아연합금 홍보를 위한 쇼카로 사용되었다. 차주들이 미우라의 탑을 제거하는 개조를 실시한 경우는 많지만, 공장에서 처음부터 로드스터로 만들어진 미우라는 이 차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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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람보르기니를 있게 해준 이 전설적인 슈퍼카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팬들은 꾸준히 람보르기니가 미우라를 부활시켜주기를 요구해왔다. 애타는 그 마음을 알고 있었던 람보르기니는 2006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오리지널 미우라의 탄생 40주년을 기념하는 미우라 컨셉트카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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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현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총괄인 발터 드 실바가 처음 디자인한 람보르기니로써, 미우라 컨셉트카는 40년 전 탄생한 원조 미우라의 카리스마와 아름다운 디테일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많은 이들은 람보르기니가 완성도 높은 미우라 컨셉트카를 양산해주기를 원했지만, 람보르기니의 생각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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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의 최고경영자인 슈테판 빙켈만은 단 한 마디로 미우라의 양산 가능성을 일축했다. “미우라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지만, 람보르기니는 미래를 만드는 회사다. 레트로 디자인은 우리의 존재의의가 아니며, 따라서 미우라를 생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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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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