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Home / Theme / 카 히스토리 : 람보르기니의 탄생과 숨겨진 모델들

카 히스토리 : 람보르기니의 탄생과 숨겨진 모델들

lambo1 copy

오늘날 수많은 슈퍼카 브랜드들이 새로이 탄생하고 있지만, 많은 이익을 남기기 힘든 슈퍼카의 특성 상 오랫동안 역사와 헤리티지를 쌓아온 슈퍼카 브랜드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슈퍼카 메이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와 함께 슈퍼카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들을 자랑한다.

최근의 람보르기니는 베일 듯한 날카로운 쐐기형 디자인과 전투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많은 팬들 역시 지금 봐도 세련된 디자인의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등의 히스토릭 모델들과 21세기에 탄생한 무르시엘라고, 가야르도, 아벤타도르, 우라칸 등의 신차들이 람보르기니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Lamborghini Logo Hd Images 3 HD Wallpapers

하지만 사실 람보르기니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로드카를 선보여 왔다. 특히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쿤타치와 디아블로 이전에도 다양한 고성능 모델들이 이탈리안 황소의 아이덴티티를 다듬어왔다.

람보르기니를 다룬 글은 많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시선에서 접근해보자. 반세기가 넘는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잘 알려지지 않은 전설적인 모델들과 함께 훑어본다.

 

트랙터 공장 사장이 만든 스포츠카: 350GT

람보르기니의 역사 첫 줄에는 페라리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북부 이탈리아의 포도농장 아들이었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2차대전 중 공군 정비사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전후 군용차 설계를 바탕으로 한 트랙터를 생산하여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농기계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되었다.

Lamborghini_22PS_1951

최고급 자동차 매니아였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1958년 자신의 첫 페라리였던 250GT를 구입하였다. 이 선택이 이후 반세기의 슈퍼카 역사를 바꾸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일반도로에서 타기에 너무 시끄럽고 불편한 250GT는 페라리의 팬이었던 람보르기니에게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심지어 주행 중 클러치가 고장나기에 이른다.

ferruccio_20

정비지식을 갖고 있었던 람보르기니는 직접 250GT의 클러치를 분해해봤는데, 자신이 만드는 트랙터와 같은 클러치 부속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람보르기니는 모데나의 페라리 본사로 직접 찾아가 더 좋은 클러치를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는 트랙터나 만드는 람보르기니가 스포츠카에 대해 뭘 알겠느냐며 문전박대해버렸다. 이에 격노한 람보르기니는 페라리를 뛰어넘을 완벽한 그랜드 투어러를 만들겠다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다.

tra1

람보르기니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설도 존재하지만, 이 자동차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라이벌의 탄생비화는 오늘날까지도 통설로 여겨지며 구전되고 있다. 덧붙여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는 황소 엠블렘은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별자리가 황소자리였던 것에서 유래했다. 자동차 역사와 함께 영원히 계속될 말과 황소의 대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63_Lamborghini_350_GTV_prototype_002_2958

그렇게 해서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에 대항할 첫 번째 스포츠카의 개발에 착수한다. 야심찬 람보르기니의 캐스팅 역시 화려했다. 이 신생 브랜드는 페라리 250GTO의 개발에 참여했던 정상급 엔지니어 죠토 비짜리니에게 V12 엔진 설계를 맡기고, 페라리와 마세라티의 섀시를 설계한 쟝 파올로 달라라의 팀에게 섀시 설계를 맡겼다. 여기에 프랑코 스칼리오네의 디자인이 얹혀져 람보르기니의 첫 프로토타입, 350GTV가 탄생했다.

lamborghini-350-gt-1964-67-dizayn-touring

1963년 투린 모터쇼에서 데뷔한 350GTV는 설계대금 문제로 엔진룸이 비어있었지만, 유려한 디자인과 페라리를 위협할 만한 성능으로 언론과 관람객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의 공장에서 멀지 않은 볼로냐의 산타가타에 46,000평방미터의 공장을 짓고 1964년 마침내 첫 양산차, 350GT를 생산했다.

lamborghini_350_gt_32

350GT는 카로체리아 투링에서 디자인을 다시 다듬은 뒤 3.5L V12 엔진을 얹고 280마력의 최대출력을 냈다. 당초 비짜리니가 개발한 엔진은 9,800rpm에서 360마력을 내는 고회전형 엔진이었는데,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레이스카같은 고회전형 엔진을 싫어하여 보다 안락하고 공도주행에 적합하도록 성능을 낮췄다. 초창기 람보르기니 자동차가 하드코어한 스포츠카보다는 GT카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적인 첫 차, 350GT는 120여 대가 판매되었다.

 

더 강하게, 더 편하게: 400GT 2+2

첫 차, 350GT의 성공적인 데뷔에 이어 람보르기니는 보다 안락하고 빠른 GT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1966년부터 생산된 400GT는 350GT의 개선형이라 할 수 있다. 쟝 파올로 달라라가 350GT의 엔진을 다시 튠업하여 3,929cc로 배기량을 늘리고 출력도 320마력으로 높였다.

400gt

흔히 400GT 2+2라고 불리는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루프라인을 높이고 2개의 2열 좌석이 추가하여 4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400GT 2+2 역시 언론과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총 247대가 생산되었는데, 덕분에 람보르기니는 직원을 늘리고 서비스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LAMBORGHINI-400-GT-11

한편, 400GT와 함께 람보르기니가 순항하면서 달라라는 독자적으로 미드십 레이아웃의 레이스카 ‘P400′의 개발을 추진했는데, 이는 후일 ‘미우라’라는 이름으로 람보르기니 역사에 큰 획을 긋는다. 미우라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은 만큼 나중에 다시 다루도록 한다.

 

포악한 황소의 이름을 딴 슈퍼 GT: 이슬레로

스페인의 투우소 목장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미우라 이래로, 람보르기니는 자사의 모델에 전설적인 투우소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350GT의 최종진화형이라 할 수 있는 이슬레로 역시 유명한 투우사 ‘마놀레떼’를 죽인 포악한 투우소 ‘이즐레로’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lamborghini-islero-13

마리오 마라찌에 의해 400GT를 바탕으로 재디자인된 이슬레로는 헤드램프를 팝업형으로 변경하여 공기저항을 줄이고 세련된 쐐기형 디자인을 채택했다. 출력은 330마력으로 향상되었으며, 이어서 출시된 이슬레로 S는 출력이 350마력까지 향상되었다. 이슬레로 S의 최고속도는 무려 259km/h에 달해 1969년 당시로썬 세계적인 고성능 GT카였다.

autowp.ru_lamborghini_islero_400_gts_5

이슬레로를 끝으로 350GT 기반의 GT카 라인업은 종결을 고하게 되었고, 이들의 성공적인 데뷔에 힘입어 람보르기니는 점차 세계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중적 인기를 끈 2도어 쿠페: 에스파다

오늘날의 람보르기니가 있게 해준 차를 물으면 많은 이들이 쿤타치나 미우라를 꼽지만, 처음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람보르기니의 개발자금을 벌어준 차는 1969년 출시된 2도어 쿠페, 에스파다였다. 무려 1,217대의 에스파다가 생산되며 람보르기니를 세상에 알렸다. 에스파다라는 이름은 투우사들이 사용하는 검을 일컫는 스페인어이다.

Lamborghini-Espada-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의 마르첼로 간디니에 의해 디자인된 에스파다는 2+2 레이아웃의 쿠페이다. 당시 유행했던 각진 디자인과 더불어 독특한 팔각형의 인테리어 레이아웃은 여러 게이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당초 베르토네는 혁신적인 걸윙도어를 제안했으나, 람보르기니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L0127_1920x1080

이슬레로와 같은 3.9L V12 엔진이 탑재되어 325마력을 냈으며, 이후 시리즈 II, 시리즈 III 등으로 진화하면서 350마력까지 향상되었다. 에스파다는 고급 GT를 지향했던 만큼 성능의 개선보다는 파워스티어링, 디스크 브레이크, 고급 내장재 등 편의사양의 업그레이드에 집중했다.

Lamborghini-Espada_1968_1024x768_wallpaper_05

에스파다의 순항과 대조적으로 당시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금속노조의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창립 초기부터 강력한 노조가 있었던 람보르기니 역시 전면파업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 때 사장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노동자들과 함께 생산라인에 참가했고, 이 같은 그의 열정적인 태도는 직원들의 파업을 막고 위기를 넘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시장을 노린 고성능 스포츠카: 하라마

1970년이 되면서 람보르기니의 큰 시장이기도 했던 미국의 자동차 안전법규가 대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오래된 차체를 써온 이슬레로는 새로운 법규에 맞춰 개조되기 힘들었고, 람보르기니는 아예 새로 출시된 에스파다의 길이를 줄여 민첩한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하라마(Jarama)이다. 하라마는 마드리드 인근의 서킷 이름이며, 스페인의 투우로 유명한 지방 이름이기도 하다.

di-lamborghini_jarama-5ad097332ea205c3973abd40157c6c82

하라마는 3.9L V12 엔진을 탑재하고 350마력을 냈다. 에스파다에 비해 전장이 약 10.7인치(약 27.2cm) 정도 짧아져 한결 민첩해졌다. 고성능 버전인 GTS는 출력을 365마력으로 향상시켰다. 그럼에도 편의사양 역시 놓치지 않아 파워 스티어링과 자동변속기 등이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lamborghini-jarama

재미있는 것은 하라마의 친척같은 자동차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이소 리볼타’는 BMW 이세타의 원형을 만든 회사로도 유명하다. 이소 리볼타가 1969년 선보인 쿠페, ‘레레(Lele)’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하라마와 유사한데, 두 차 모두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오일쇼크로 탄생한 독특한 4인승 미드십: 우라코

70년대 초 자동차 업계에 불어닥친 오일쇼크라는 재앙은 대배기량, 다기통 엔진을 만들어온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보다 경제적인 차를 만들도록 강요했다. 그런 시대배경에서 탄생한 우라코(Urraco)는 페라리 디노, 포르쉐 911 등에 대항하기 위한 ‘베이비 람보르기니’였다.

L0061

처음으로 오직 람보르기니만을 위한 전용 디자인이 적용된 우라코에게는 또다른 특징이 있는데, 바로 보기 드문 4인승 미드십이라는 점. V8 엔진은 2열 시트 뒤에 가로배치되어 4,250mm에 불과한 전장에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물론, 2열 시트의 실용성에 대해서는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엔진은 각각 182마력, 220마력, 250마력을 내는 2.0L, 2.5L, 3.0L 등 세 종류가 제공되었으며, 북미형에 한해 법규를 준수하는 긴 범퍼와 배기가스 규정을 충족시키는 저출력 엔진이 탑재되었다. 우라코는 800대 가까이 판매되면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lamborghini_urraco_p300_us-spec_5

한편 오일쇼크와 함께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찾아오자 람보르기니 역시 휘청이게 되었다. 특히 모회사인 람보르기니 트랙터가 여러 내외부적인 악재로 인해 1972년 다른 트랙터 회사에 매각되고, 자동차 부문도 신차개발이 더뎌지자 1973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자신의 친한 동료였던 스위스 사업가 조르쥬-앙리 로세티에게 람보르기니를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오직 54대 뿐! 희귀한 비운의 실패작: 실루엣

람보르기니는 새 주인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날 람보르기니의 아이덴티티를 만든 ‘쿤타치’를 공개했다. 그러나 쿤타치에 밀려 별 조명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한 비운의 모델도 있는데, 바로 우라코를 바탕으로 개발된 실루엣이다.

lamborghini-silhouette-wallpaperlamborghini-silhouette-technical-details-history-photos-on-iqu5wmeu

197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 실루엣은 우라코를 기반으로 제작된 2인승 미드십 쿠페이다. 개방감을 높이면서 강성을 확보해주는 타르가 루프를 적용하였으며, 완전히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3.0L V8 엔진을 탑재했다. 우라코보다 각진 휀더 형상이나 리볼버 형태의 휠, 공격적인 에어로파츠 등이 당대의 모델인 쿤타치와 흡사하다.

6.5초 만에 0-100km/h 가속을 마치고 최고속도가 260km/h에 달했던 실루엣은 좀처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불과 54대만 생산되며 1979년 소리소문 없이 단종되었다. 오늘날에는 31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kb6zneasrgyjpg

실루엣의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람보르기니의 상황이 나빴던 까닭이 크다. 로세티가 이끈 람보르기니의 재정은 더욱 악화되었고, 1978년 파산하면서 이탈리아 법원의 법정관리가 시작되었다. 1984년 스위스 출신의 밈란 형제에게 매각되기 전까지 람보르기니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라코의 최종진화형, 우라칸의 할아버지뻘: 할파

그러한 고난의 시기 도중인 1981년, 람보르기니는 우라코를 바탕으로 하며 실루엣의 후속격인 V8 엔트리 스포츠카 ‘할파(Jalpa)’를 선보였다. 3.5L V8 엔진을 얹은 할파는 259마력을 발휘하며 0-100km/h 가속을 6.0초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참고로 기존의 많은 문헌들이 Jarama와 Jalpa를 ‘자라마’와 ‘잘파’로 표기했지만, 모델명들이 유래한 스페인어에서 J는 우리말의 ‘ㅎ’으로 발음되므로 하라마와 할파로 읽는 것이 맞다.

4720557760_52d96ae030_o

기함인 쿤타치에 비해 시트 포지션이 높고 출력이 덜 부담스러운 할파는 보다 운전하기 편하고 막히는 길에서도 덜 고통스러운, 일상용으로 쓸 수 있는 람보르기니를 지향했다. 이를테면 오늘날 가야르도-우라칸으로 이어지는 아랫급 미드십 슈퍼카의 할아버지 뻘이라 할 수 있겠다.

jalpa_77

할파는 1988년까지 총 410대가 판매되며 나쁘지 않은 실적을 냈다. 그러나 1987년 람보르기니의 새 주인이 된 크라이슬러는 V12 슈퍼카에 더 집중하기 위해 할파를 단종시키기로 결정해버렸다.

 

람보르기니가 SUV를 만들었다?: LM002

멀지않은 미래에 람보르기니는’우루스’라는 이름의 SUV를 선보일 예정이지만, 람보르기니는 이미 80년대에 양산형 SUV를 출시한 바 있다. LM002는 당대 세계에서 가장 빠른 SUV 중 하나였다.

Auto_Lamborghini_Lamborghini_lm002__off-road_car_028449_

람보르기니는 1977년, 미군의 전투용 차량 채택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리어 엔진 형태의 ‘치타’라는 프로토타입 SUV를 선보였다. 그러나 치타는 이질적인 핸들링 감각과 기대 이하의 성능으로 인해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치타의 실패를 바탕으로 람보르기니는 프런트 엔진 4륜구동 SUV인 LM002를 개발하였다. LM002는 람보르기니 최초의 4륜구동 모델이었다.

lamborghini-lm002-rear-view

각지고 투박하게 생겼다고 LM002를 얕보진 말자. 기본적으로 람보르기니의 당대 최강 슈퍼카, 쿤타치의 5.2L V12 엔진이 탑재되어 450마력의 출력을 발휘했으며, 이걸로도 부족한 속도광들을 위해 모터보트용 7.2L V12 엔진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 포르쉐 카이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트 등이 고성능 SUV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LM002야말로 고성능 SUV의 시초라 할 수 있다.

page

거친 디자인으로 ‘람보-람보(Rambo-Lambo)’라는 애칭까지 얻은 LM002는 불과 328대만 생산되었다. 이라크전이 한창이던 지난 2004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아들이 보유하고 있던 LM002를 미군이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폭파시켜 자동차 매니아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었다.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