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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터리언] Motorian &#187; 자동차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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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자동차의 모든것</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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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의 베스트셀러, 토요타 코롤라의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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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0 Feb 2014 13:01:39 +0000</pubDate>
		<dc:creator><![CDATA[김동균]]></dc:creator>
				<category><![CDATA[Theme]]></category>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category><![CDATA[코롤라]]></category>
		<category><![CDATA[토요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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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토요타 코롤라는 1966년 탄생 후, 지금까지 약 4천만대 이상 판매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로 등극한 모델이다. 산술적으로는 평균 40초에 1대 꼴로 판매된 셈이며, 토요타가 탄생한 이래 76년 동안 판매한 자동차 가운데 5대 중의 1대가 코롤라이다. 더불어, 세계 15곳의 거점에서 현지 생산되고 있으며, 150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에서의 판매를 통해 2002년부터 11년 연속으로 100만대 이상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참고이미지_세대별-코롤라.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9" alt="참고이미지_세대별 코롤라"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참고이미지_세대별-코롤라.jpg" width="626" height="412" /></a></p>
<p>토요타 코롤라는 1966년 탄생 후, 지금까지 약 4천만대 이상 판매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로 등극한 모델이다. 산술적으로는 평균 40초에 1대 꼴로 판매된 셈이며, 토요타가 탄생한 이래 76년 동안 판매한 자동차 가운데 5대 중의 1대가 코롤라이다. 더불어, 세계 15곳의 거점에서 현지 생산되고 있으며, 150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에서의 판매를 통해 2002년부터 11년 연속으로 100만대 이상 판매량을 달성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1st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68" alt="1st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1st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p>
<p><strong>1세대 E10 (1966년~1970년)</strong><br />
코롤라는 당시 자동차의 대중화 붐과 함께 자가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개발되었다. 당시의 개발 조사관 하세가와 다츠오 씨는 “지구인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코롤라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코롤라가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을 목표로 개발했다고 말했다.</p>
<p>1세대 코롤라는 당시 새롭게 개발한 직렬 4기통 1,1리터 K 엔진을 탑재, 최고출력 60마력, 최대토크 8.3kg.m의 성능을 발휘했다. 이후 K 시리즈 엔진은 트윈 카뷰레터를 장착한 K-B, 압축비를 높인 K-D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아울러 일본 승용차 최초로 플로어 시프트 방식의 4단 수동 변속기와 맥퍼슨 스트럿 전륜 서스펜션을 장착했다.</p>
<p>첫 출시 모델은 2도어 세단이었으며, 이후 1967년 4도어 세단 모델과 밴 모델이 추가되었고, 2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1968년에는 2도어 쿠페 모델 ‘코롤라 스프린터’가 라인업에 더해졌다. 1969년에는 1.2리터로 배기량을 늘린 3K 엔진이 탑재되며 최고출력 68마력, 최대토크 9.5kg.m로 업그레이드 되었다.</p>
<p>1965년 약 48만대였던 토요타의 전체 자동차 생산량은 코롤라의 성공에 힘입어 1968년에는 약 110만대로 증가했다. 즉, 코롤라는 토요타가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 중요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br />
<strong><br />
<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2nd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69" alt="2nd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2nd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strong></p>
<p><strong>2세대 E20 (1970년~1974년)</strong><br />
1970년 등장한 2세대는 보다 유선형의 외관 디자인을 지녔다. 첫 출시 당시에는 1세대로부터 이어진 1.2리터 3K 엔진이 탑재되었으며, 같은 해 최고출력 86마력, 최대토크 11.7kg.m의 1.4리터 T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p>
<p>1972년에는 1.6리터 DOHC 2T-G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출력 115마력, 최대토크 14.5kg.m의 성능을 지닌 고성능 모델 ‘코롤라 레빈’과 ‘스프린터 트레노’가 출시되었다. 또한, 당시 동급 모델들에 4단 수동변속기가 보편적이었던 것에 반해, 코롤라에는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되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3rd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0" alt="3rd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3rd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p>
<p><strong>3세대 E30~E60 (1974년~1979년)<br />
</strong>3세대 코롤라는 2세대에 비해 더욱 유선형의 외관을 지녔으며, 몸집을 키웠다. 보디 설계에 윈드 터널을 활용한 첫 번째 코롤라이기도 하다. 또한, 기존의 2/4도어 세단 및 왜건, 2/4도어 밴과 더불어 센터 필러가 없는 2도어 하드톱 보디를 처음 선보였다. 1977년부터는 쿠페와 리프트백 모델도 추가되었다.</p>
<p>엔진은 1.2리터 3K-H, 1.4리터 T, 1.6리터 2T 엔진이, 레빈 모델에는 2T-G 엔진이 탑재되었다. 코롤라 라인업은 E30, 스프린터는 E40으로 코드 네님이 분류되었으며, 1976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E30은 E50으로, E40은 E60으로 이어졌다.<br />
<strong><br />
<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4th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1" alt="4th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4th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strong></p>
<p><strong>4세대 E70 (1979년~1983년)</strong><br />
4세대 코롤라가 출시된 1979년은 일본이 오일쇼크에서 서서히 회복하고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더욱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차를 원했고, 이는 4세대 코롤라가 공기역학적 디자인에 집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p>
<p>처음 출시 당시엔 2/4도어 세단, 하드톱, 쿠페, 리프트백, 밴 모델을 선보였고, 1982년 왜건 모델이 추가되었다. 4세대는 마지막 후륜구동 코롤라이며, 모든 모델에 전륜 디스크 브레이크가 기본 장비가 되었다.</p>
<p>엔진 라인업은 처음 1.5리터 OHC, 1.3리터 OHV, 1.6리터 DOHC 2T-GEU 등 세 가지로 구성되었고, 1979년 1.8리터 OHV 13T-U 엔진이 더해졌다. 또한, 1982년에는 고연비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 소형차 중 최초로 1.8리터 OHC 1C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또한, 이 때 처음으로 4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br />
<strong><br />
<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5th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2" alt="5th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5th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strong></p>
<p><strong>5세대 E80 (1979년~1987년)</strong><br />
5세대는 코롤라가 총 생산량 1천만대를 돌파한 두 달 뒤인 1983년 5월 등장했다. 코롤라 역사상 첫 전륜 구동 모델이며, 사륜 독립 서스펜션이 적용되었다. 다만 쿠페 모델인 코롤라 레빈은 후륜 구동을 유지하며, 최후의 후륜구동 코롤라가 되었다. 4/5도어 세단, 2/3도어 쿠페 및 왜건 모델이 출시되었으며 1984년 10월 3/5도어 해치백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p>
<p>엔진 라인업은 새롭게 적용된 1.3리터 OHC 2A-LU, 1.5리터 OHC 3A-LU, 그리고 EFI(전자식 연료분사) 시스템이 적용된 1.6리터 OHC 4A-ELU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1.8리터 디젤 엔진도 계속 사용되었으며, 쿠페 모델에는 1.6리터 DOHC 엔진이 탑재되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6th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3" alt="6th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6th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p>
<p><strong>6세대 E90 (1987년~1991년)<br />
</strong>토요타는 6세대 코롤라의 개발 과정에서 전반적인 품질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다. 프로젝트 팀은 소비자가 보지 못하는 구석구석까지 점검하며 2천건 이상의 의견을 제안했고, 100여 곳의 부품업체와 협력해 품질을 향상시켰다. 엔진은 1.3리터~1.6리터까지 다양한 라인업으로 구성되었는데, 1.5리터 이상의 가솔린 엔진의 경우, ‘High-Mecha Twin Cam’이라 불린 새롭게 개발된 더블-오버헤드 캠 4-밸브 메카니즘이 적용되었다. 더불어 1.8리터 및 2.0리터 디젤 엔진도 사용되었으며, 세단에는 AWD 모델이 추가되었다.</p>
<p>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6세대 코롤라는 당시 세그먼트를 뛰어 넘는 품질과 사양을 갖춘 차로 탄생했다. 이는 당시 경제 호황기와 맞물려 호응을 이끌어냈고, 6세대 코롤라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처음 출시 때는 4도어 세단, 2도어 쿠페, 3/5도어 해치백 모델이 등장했고 얼마 후 밴과 왜건 모델이 추가되었다.<br />
<strong><br />
<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7th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4" alt="7th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7th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strong></p>
<p><strong>7세대 E100 (1991년~1995년)</strong><br />
7세대 코롤라의 외관은 풍부한 곡선의 사용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 되었고, 보디의 80% 이상을 아연 합금 강판으로 만들었다. 인테리어 역시 유선형을 테마로, 전반적인 소재의 품질을 향상시켰다. 또한, ABS, SRS 에어백 등이 적용되며 안전성이 향상되었다. 상위 모델인 SE 리미티드는 처음 SE-L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으나, 비슷한 이름을 먼저 사용하던 벤츠(560 SEL 등)의 클레임으로 인해 명칭을 변경했다.</p>
<p>가솔린 엔진은 모두 EFI 시스템과 DOHC가 적용되었다. 1.5리터 5A-FE 엔진은 최고출력 105마력, 최대토크 13.8kg.m, 1.6리터 4A-FE 엔진은 최고출력 115마력, 최대토크 15.0kg.m를 냈다. 스포츠 모델에 탑재된 1.6리터 4A-GE 엔진은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 성능을 끌어올리며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1.0kg.m의 파워를 발휘했다. 더불어 73마력, 13.5kg.m의 2.0 디젤 엔진도 탑재되었다.<br />
<strong><br />
<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8th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5" alt="8th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8th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strong></p>
<p><strong>8세대 E110 (1995년~2000년)</strong><br />
8세대 코롤라 개발 당시는 고도성장이 끝난 일본 경제가 불황을 맞이했고, 국제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8세대는 효율성 증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원가 절감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세단의 경우 50kg, 쿠페 모델은 70kg의 경량화를 이뤄냈고, 경제적 내장재의 사용, 부분 무도장 범퍼 장착 등으로 비용 절감을 도모했다.</p>
<p>또한, 플랫폼은 같았지만 일본 내수용과 해외 수출용이 구분되어 서로 다른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처음에는 4도어 세단, 2도어 쿠페, 밴 모델과 왜건, 하드톱 모델 등 다섯 가지 보디 타입으로 출시되었으며, 1997년 1월 새롭게 MPV 모델이 추가되었다. 엔진은 이전의 1.3리터 4E-FE, 1.6리터 4A-FE, 4A-GE 엔진이 이어졌고, 2.0리터 디젤은 2.2리터 디젤 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일본을 제외한 해외 시장에서는 1999년 마이너 체인지를 통해 알루미늄 블록과 실린더 헤드를 적용한 새로운 ZZ 엔진(1.4, 1.6, 1.8리터)이 탑재되었다.<br />
<strong><br />
<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9th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6" alt="9th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9th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strong></p>
<p><strong>9세대 E120, E130 (2000년~2006년)</strong><br />
2000년대에 들어서도 일본의 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이는 자동차 판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9세대 코롤라를 개발하던 당시 내수 판매 부진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토요타 내부에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새로운 소형차에 코롤라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돌출되었다. 하지만 당시 개발총괄이었던 다케시 요시다는 이에 반대했고, 코롤라는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p>
<p>이름은 그대로 남았지만 그 역시 코롤라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따라서 9세대 코롤라는 ‘새로운 세기의 가치’라는 캐치프라이즈 아래, 플랫폼부터 시작해 모든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했다. 외관은 유러피안 스타일을 따랐고, 앞뒤 오버행을 줄이고 휠베이스를 늘렸다. 보디 타입은 세단과 왜건, 두 가지로 처음 출시되었고 쿠페는 제작되지 않았다. 이후, 시장에 따라 3도어 및 5도어 해치백, MPV 모델이 추가되고 일본과 미국에서는 크로스컨트리 모델도 등장해 다양한 이름으로 판매되었다.</p>
<p>엔진은 모든 가솔린 엔진에는 VVT-i(가변 밸브 타이밍 인텔리전트) 시스템이 적용되어 효율성이 더욱 증가했다. 라인업은 1.3리터 2NZ-FE, 1.5리터 1NZ-FE, 1.8리터 1ZZ-FE와 새로운 스포트 2ZZ-GE 엔진 등 가솔린 네 가지와 흡배기 레이아웃을 변경하고 전자제어 연료분사펌프가 적용된 2.2리터 3C-E 디젤 엔진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5단 수동변속기 및 새롭게 개발된 전자제어식 4당 자동변속기가 조합되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10th_title_0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5977" alt="10th_title_0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4/02/10th_title_01.jpg" width="626" height="412" /></a></p>
<p><strong>10세대 E140, E150 (2006년~2013년)<br />
</strong>10세대 코롤라는 1세대 탄생 후 40년 만에 등장했으며, 일본 내수용과 해외 시장 모델이 서로 다른 플랫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1년 4월, 국내 시장에도 처음 소개되어 공식 판매가 시작되었다.</p>
<p>차체 주요부위에 고장력 강판을 적용하여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차체구조를 실현하였고, 특히 충격흡수 효율이 높은 크럼플 존(Crumple zone) 배치했다. 승차 공간에는 쉽게 변형되지 않는 고강성구조 적용하여 전체적인 차체 변형을 최소화하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실내는 넓고 안락한 승차 공간을 제공하고 골프백 4개를 여유롭게 적재할 수 있는 470리터의 넓은 트렁크 공간을 제공하다. 또한, 스키와 같이 길이가 긴 장비들도 트렁크쓰루 기능과 뒷좌석 등받이 폴딩 기능을 이용하면 쉽게 적재가 가능하다.</p>
<p>국내 출시된 코롤라는 2010년 LA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마이너체인지 모델(E150)로 최고출력 132마력, 최대토크 17.7kg.m의 성능을 발휘하는 4기통 1.8리터 DOHC 엔진이 탑재되었다. 더불어 듀얼 VVT-i 시스템이 적용되어 중저속 구간에서의 풍부한 토크를 발휘하고, 효율성을 증가시켰다. 서스펜션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토션빔 방식이며 차체자세 제어장치, 트랙션 컨트롤, 전자식 제동력 분배장치, ABS 등을 적용해 안전성을 높였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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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 역사 &#8211; 1980년대 한국의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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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4 Aug 2013 03:04:05 +0000</pubDate>
		<dc:creator><![CDATA[박기돈]]></dc:creator>
				<category><![CDATA[Theme]]></category>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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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970년대 중반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자동차 산업이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 1980년대는 신군부 국보위가 주관한 중화학분야 투자조정조치에 이은 81년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 소위 자동차공업 통, 폐합 조치로 인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이 오히려 후퇴한 시기였다. 하지만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이 이 땅에서 치러지고, 87년과 88년에 단계적으로 수입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국산 및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1970년대 중반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자동차 산업이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 1980년대는 신군부 국보위가 주관한 중화학분야 투자조정조치에 이은 81년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 소위 자동차공업 통, 폐합 조치로 인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이 오히려 후퇴한 시기였다. 하지만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이 이 땅에서 치러지고, 87년과 88년에 단계적으로 수입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국산 및 외산 자동차의 보급이 크게 확대되었고, 국산 자동차의 경쟁력 강화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p>
<p>1980년대 자동차 산업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80년에 발표된 투자조정조치의 개정판으로 1981년 2월 발표된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를 들 수 있다. 승용차와 픽업은 현대와 세한이, 1~5톤 트럭 및 미니버스는 기아가, 소방차, 탱크로리 등 특장차는 동아, 방위용(군수)차는 아시아가 생산을 맡는 다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현대와 세한은 트럭과 버스를 만들 수 없고, 기아는 승용차를 포기해야 했다. 기아의 2륜차 부문은 대림이 인수했다. 자유 경쟁 대신 과다 경쟁 방지를 위한 계획 경제인 셈이다. 아울러 기아와 동아를 통합한다는 방침이었으나 결국 82년에 통합이 무산되면서 특장차 부문 일부는 자유 경쟁으로 돌리게 됐다.</p>
<p>이 조치는 외국 제품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높으면 발전시키고, 불리하면 없앤다는 경제 이론상의 비교 우위론에 근거한 조치였지만 종합적인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시행되다 보니 선행된 막대한 투자를 포기해야 했고, 경쟁으로 인한 발전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p>
<p>한편, 70년대 후반 불어 닥친 석유파동의 여파와 신군부 출현 등 대내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80년대 초반 급감했던 내수는 82년 이후 되살아나 자동차 판매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p>
<div id="attachment_6591" style="width: 117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1-bongo.jpg"><img class="size-full wp-image-6591" alt="1981년 등장한 기아 봉고 코치 신문광고"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1-bongo.jpg" width="1168" height="716" /></a><p class="wp-caption-text">1981년 등장한 기아 봉고 코치 신문광고</p></div>
<p>1981년 신진이 (주)거화로 이름을 바꾸었고, 기아는 누적된 적자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김상문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고 김선홍 사장이 기아를 맡게 되었다. 승용차 생산이 중단 된 기아는 80년에 선보인 봉고 트럭에 이어, 승합차 봉고 코치와 봉고 3밴을 내놓으며 봉고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이 해에는 부산과 마산을 잇는 부마고속도로가 개통됐다.</p>
<p>1982년에 현대는 포니2 1.2, 1.4와 뉴 그라나다를 내 놓았고, 새한은 제미니를 개선한 맵시 1.5를 선보였다. 거화는 9인승 지프를 내놓았다. 대우에 흡수되었던 새한은 1983년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자동차 생산 및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해 판매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p>
<div id="attachment_6592" style="width: 6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2-mapsy.jpg"><img class="size-full wp-image-6592" alt="새한 맵시"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2-mapsy.jpg" width="600" height="400" /></a><p class="wp-caption-text">새한 맵시</p></div>
<p>북미 시장으로의 한국 자동차 수출은 1984년 현대가 캐나다에 진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포니와 그 후속 모델 엑셀에 이어 스텔라가 차례로 캐나다로 수출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6년 1월 엑셀 1,050대가 울산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고, 2월 중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에 상륙하게 되었다. 엑셀은 그 해 말까지 16만 8천대가 판매 돼, 포춘지가 선정한 미국 10대 상품에 오르는 등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p>
<div id="attachment_6594" style="width: 635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3-포니엑셀.jpg"><img class="size-full wp-image-6594" alt="현대 엑셀"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3-포니엑셀.jpg" width="625" height="359" /></a><p class="wp-caption-text">현대 엑셀</p></div>
<p>미국에서 성공 신화를 쓴 현대 엑셀은 1995년 포니2의 후속으로 등장했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앞바퀴굴림 방식이 적용된 모델이다. 5도어 모델은 엑셀, 4도어 세단은 프레스토로 이름이 붙여졌다. 95년에는 스텔라에 2천cc 엔진을 얹은 1세대 소나타도 등장했다. 그리고 그 해 5월 7일 국내 자동차 보유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p>
<div id="attachment_6595" style="width: 646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4-SONATA_Y1.jpg"><img class="size-full wp-image-6595" alt="현대 1세대 소나타"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4-SONATA_Y1.jpg" width="636" height="301" /></a><p class="wp-caption-text">현대 1세대 소나타</p></div>
<p>1986년 1월 20일 현대자동차는 생산누계 100만대를 돌파하였고, &#8217;86아시안 게임&#8217;과 &#8217;88 서울 올림픽&#8217; 공식 자동차 공급업체로 선정되었다. 7월 24일에는 미쓰비시 데보네어를 들여와 생산한 그랜저가 출시되었다. 처음에는 2천cc 시리우스 MPI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되었고, 후에 2,400cc 시리우스 MPI 엔진과 4단 자동변속기 등도 추가되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V6 3.0 모델은 1989년 9월에 추가되었다.</p>
<div id="attachment_6603" style="width: 1034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5-그랜저.jpg"><img class="size-full wp-image-6603" alt="현대 그랜저"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5-그랜저.jpg" width="1024" height="475" /></a><p class="wp-caption-text">현대 그랜저</p></div>
<p>1986년에는 그 외에도 현대가 승합차 그레이스를 선보이면서 봉고의 뒤를 이어 같은 해 등장한 기아 베스타와 경쟁 구도를 이루었고, 대우는 GM과의 월드카 프로젝트로 탄생한 르망과 3도어 모델 르망 레이서를 선보였고, 로얄 프린스 1.5와 로얄살롱 수퍼를 라인업에 더했다.</p>
<div id="attachment_6597" style="width: 5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6-르망.jpg"><img class="size-full wp-image-6597" alt="대우 르망"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6-르망.jpg" width="500" height="320" /></a><p class="wp-caption-text">대우 르망</p></div>
<p>쌍용은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하고, 1988년에 쌍용자동차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신진자동차 공업이 1974년 미국 AMC와 합작으로 신진지프를 설립하였다가 사명을 신진자동차로 변경하였고, 78년에는 AMC가 지분을 철수하고, 81년 사명을 거화자동차로 변경한다. 86년 동아자동차가 거화자동차를 흡수하였고, 다시 쌍용자동차가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것이다.</p>
<p>쌍용 자동차의 주력 모델인 코란도는 1969년 미국 Kaiser사의 지프 CJ-5를 라이센스 생산한 신진지프가 그 효시이며, 이후 계속 계량을 거쳐 CJ-7 지프에 이르렀다가 거화자동차 시절 지프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되면서 1983년 3월부터 코란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96년 뉴 코란도가 등장하면서 단종되었다.</p>
<div id="attachment_6598" style="width: 813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7-거화-코란도.jpg"><img class="size-full wp-image-6598" alt="거화 코란도"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7-거화-코란도.jpg" width="803" height="350" /></a><p class="wp-caption-text">거화 코란도</p></div>
<p>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가 해제되면서 다시 승용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기아자동차는 1987년 3월 포드와 월드카 프로젝트로 개발한 프라이드를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중형차 시장에서는 마쓰다 카펠라를 베이스로 개발한 콩코드를 10월에 선보여, 현대 쏘나타와 대우 로얄 프린스에 대항했다. 콩코드는 출시 당시 2.0 SOHC 엔진으로 최고출력 99마력, 최대토크 17.0kg/m를 발휘했으며, 수동 5단과 자동 4단 변속기를 장착했다.</p>
<div id="attachment_6599" style="width: 742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8-CONCORD.jpg"><img class="size-full wp-image-6599" alt="기아 콩코드"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8-CONCORD.jpg" width="732" height="338" /></a><p class="wp-caption-text">기아 콩코드</p></div>
<p>1987년에 2천cc 이상의 외제차 수입이 허용된 데 이어 1988년 2천cc 이하 외제차까지 수입이 완전 허용되면서 외제차 수입 자유화 시대가 열렸다.</p>
<p>1988년 6월 현대는 2세대 쏘나타(Y2)를 선보였고, 대우는 르망 펜타 5(5도어)를, 쌍용은 코란도 패밀리를 선보였다. 12월에는 국내 자동차 연간생산량이 100만대를 돌파하면서 전국 자동차 보유대수도 200만대를 넘어섰다.</p>
<div id="attachment_6604" style="width: 1034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9-Sonata-Y2-1.jpg"><img class="size-full wp-image-6604" alt="현대 쏘나타 (Y2)"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9-Sonata-Y2-1.jpg" width="1024" height="598" /></a><p class="wp-caption-text">현대 쏘나타 (Y2)</p></div>
<p>1989년에는 엑셀 수출누계 100만 대를 돌파한 현대가 캐나다 브로몽에 국내 자동차 메이커로는 처음으로 해외생산공장을 설립했다. 현대는 1세대 엑셀과 달리 곡선을 강조한 뉴 엑셀과 그랜저 3.0 V6 모델을 내놓았고, 기아는 캐피탈을 선보였으며, 수입자유화에 발맞춰 포드의 세이블을 들여와 기아 세이블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우는 수입차 개방에 대비해 임페리얼 3.0을 선보였다.</p>
<div id="attachment_6601" style="width: 779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10-스쿠프.jpg"><img class="size-full wp-image-6601" alt="현대 스쿠프"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10-스쿠프.jpg" width="769" height="628" /></a><p class="wp-caption-text">현대 스쿠프</p></div>
<p>1990년 현대는 뉴 엑셀 3도어와 5도어, 스쿠프, 엘란트라를 선보였고, 기아산업(주)은 기아자동차(주)로 이름을 바꾸고 프라이드의 세단형 모델인 프라이드 베타를 출시했다. 대우는 첫 고유모델인 에스페로를, 아시아는 군용 지프를 민수용으로 개조한 록스타를 선보였다. 그 해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300만대를 돌파했다.</p>
<div id="attachment_6602" style="width: 56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11-espero.jpg"><img class="size-full wp-image-6602" alt="대우 에스페로"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11-espero.jpg" width="550" height="276" /></a><p class="wp-caption-text">대우 에스페로</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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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의 역사 &#8211; 1970년대 한국의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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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5 Aug 2013 12:34:52 +0000</pubDate>
		<dc:creator><![CDATA[박기돈]]></dc:creator>
				<category><![CDATA[Theme]]></category>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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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970년대는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은 자동차 대국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초석이 다져진 기간이었다.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국가 경제의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삼은 정책을 발표했고,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었던 무리한 정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현시킨 중요한 결정들이 자동차 회사들에서 이뤄졌다. 이로써 한국 최초의 순수 국산모델 포니가 등장할 수 있었고, 기아가 승용차 생산에 가세하게 되었다. 1973년 1월 12일 연두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1970년대는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은 자동차 대국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초석이 다져진 기간이었다.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국가 경제의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삼은 정책을 발표했고,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었던 무리한 정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현시킨 중요한 결정들이 자동차 회사들에서 이뤄졌다. 이로써 한국 최초의 순수 국산모델 포니가 등장할 수 있었고, 기아가 승용차 생산에 가세하게 되었다.</p>
<div id="attachment_5991" style="width: 8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1-hyundai_pony.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1" alt="현대 포니"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1-hyundai_pony.jpg" width="800" height="364" /></a><p class="wp-caption-text">현대 포니</p></div>
<p>1973년 1월 12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정책을 선언했다.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중공업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기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뒤이어 1월 18일에는 자동차 공업 육성계획이 발표됐다. 이는 69년 12월 수립된 국산화 3개년 계획에 이어, 부품 국산화율을 73년 말까지 72%, 75년까지 완전 국산화하고, 80년대 초까지 완성차 생산 50만대와 1억 5천만 달러 수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내용이 공문으로 각 자동차 회사에 전달되었을 때 당시 GM코리아 김창원 사장을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은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반발했지만 현대자동차 정주영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정부 계획을 듣고 난 후 &#8216;포니&#8217; 생산 계획을 제출했다고 한다.</p>
<p>이 계획은 이듬해인 74년 5월 확정 발표되었는데, 75년에 국산화율 95%이상, 생산가격 2천 달러 내외의 국산 신차 생산, 81년에 자동차 50만대 생산, 7만 5천대 수출 등이 그 내용이었다. 75년에 등장한 포니 뒤에는 당시 정부 주도형 산업 계획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p>
<p>1968년 경인, 70년 경부 고속도로에 이어 71년 12월 영동 고속도로가 신갈 ~ 새말 구간에서 개통됐다. 68년부터 포드의 기술로 코티나를 생산하던 현대자동차는 71년 뉴 코티나 생산을 시작했다.</p>
<div id="attachment_5992" style="width: 757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2-NewCotina.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2" alt="현대 뉴 코티나 광고"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2-NewCotina.jpg" width="747" height="316" /></a><p class="wp-caption-text">현대 뉴 코티나 광고</p></div>
<p>1972년에는 전국적으로 난립하던 크고 작은 자동차 조립공장에 대해 폐쇄조치가 내려지면서 대기업 중심의 자동차산업이 자리잡게 되었다. 신진 자동차는 일본 토요타와 손잡고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 등을 생산했지만, 70년 중국의 주은래 수상이 선포한 소위 &#8216;주4원칙&#8217;에 따라 토요타가 72년에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면서 새로운 제휴 업체로 GM을 선택하고, 6월 신진과 GM이 50:50으로 합작해 GMK(GM Korea)를 설립하였다. GMK는 GM의 유럽 자회사인 오펠과 제휴하여 1,900cc급 레코드와, 나중에 시보레 1700으로 불리게 되는 호주 홀덴의 토라나를 들여와 생산을 시작했다. 이처럼 현대는 포드, 신진은 GM과 제휴하게 되면서 당시에는 미국 자동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p>
<div id="attachment_5993" style="width: 291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3-시보레-1700.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3" alt="시보레 1700"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3-시보레-1700.jpg" width="281" height="180" /></a><p class="wp-caption-text">시보레 1700</p></div>
<p>1973년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정책과 자동차공업 육성계획이 발표된 해다. 기아는 10년간 3륜 트럭을 생산한 후 71년에 4륜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승용차 생산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73년에는 승용차에 가까운 소형 트럭 브리사 픽업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기아는 승용차 생산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73년부터 소하리에 20만평 규모의 대규모 자동차 생산 공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74년 식목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예고 없이 소하리 공장을 방문, 시찰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다음날 승용차 브라사에 대한 제작 승인이 나오게 되면서 승용차 제조사로서의 기아가 시작되었다.</p>
<div id="attachment_5994" style="width: 56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4-brisa.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4" alt="기아 브리사"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4-brisa.jpg" width="550" height="363" /></a><p class="wp-caption-text">기아 브리사</p></div>
<p>1974년 10월 기아는 최초의 승용차 브리사 S-1000을 출시했다. 브리사는 일본 동양공업(현재의 마쯔다)의 파밀리아를 기본으로 초기 985cc 62마력 엔진을 얹은 소형차다. 74년에는 신진과 AMC가 50:50으로 출자한 신진지프자동차공업(주)이 출범했고, 현대는 AS부문을 분리해 현대자동차써비스(주)를 설립했다. 현대는 10월 토리노 모터쇼에 대한민국 첫 고유모델인 포니와 포니 쿠페 컨셉트카를 출품했다.</p>
<div id="attachment_5995" style="width: 752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5-pony-coupe.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5" alt="현대 포니 쿠페 컨셉트"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5-pony-coupe.jpg" width="742" height="416" /></a><p class="wp-caption-text">현대 포니 쿠페 컨셉트</p></div>
<p>1975년 현대가 12월부터 국내 첫 고유모델인 포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로 독자모델을 생산한 국가가 되었다. 포니는 이탈리아 쥬지아로가 디자인을 맡았으며, 후륜구동 4도어 패스트백 소형차로 4기통 1,238cc 새턴 엔진을 얹었다. 첫해 1만 726대를 판매했고, 이후 약 29만 4천대를 생산, 판매했다. 같은 해 GMK는 레코드 로얄을 선보였다</p>
<p>1976년 1월 26일부터 현대 포니 판매가 시작되었고, 그 해 에콰도르에 처음으로 수출됐다. 더불어 현대는 뉴 코티나 왜건과 포니 픽업을 내놓았고 기아는 군수용차를 제조하던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고, 4기통 1.3리터 87마력 엔진을 얹은 브리사 K-303을 내놓았다. GMK는 판매실적이 떨어지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 산업은행의 관리하에 들어가면서 새한자동차로 이름을 바꾸었다.</p>
<div id="attachment_5996" style="width: 5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6-brisa-k-303.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6" alt="기아 브리사 K-303"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6-brisa-k-303.jpg" width="500" height="258" /></a><p class="wp-caption-text">기아 브리사 K-303</p></div>
<p>1977년에는 현대가 코니나 마크4, 포니 왜건, 1톤 트럭 포터, HD-1000 미니버스를 내놓았고, 기아는 브리사 II와 1.4톤 타이탄을 선보였다. 새한은 독일 오펠의 3세대 카데트를 들여와 소형차 제미니로 내놓았다.</p>
<div id="attachment_5997" style="width: 6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7-제미니.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7" alt="새한 제미니"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7-제미니.jpg" width="600" height="429" /></a><p class="wp-caption-text">새한 제미니</p></div>
<p>1978년 대우가 산업은행이 보유한 새한자동차 지분을 인수하면서 자동차 제조업에 진입하게 되는데, 이후 1983년에 GM의 지분까지 인수하면서 새한 브랜드를 버리고 대우자동차로 새 출발하게 된다. 새한은 레코드 1900을 기반으로 한 뉴 레코드를 선보이는데, 뉴 레코드는 이후 대우자동차의 핵심 모델인 로얄 시리즈로 진화한다. 현대는 유럽 포드의 6기통 최고급차 그라나다를 도입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1,993cc로 수냉식 V6 OHC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102마력, 최대토크 16.9kgm, 최고속도 165km/h를 발휘했다. 그라나다는 1985년 12월에 단종할 때까지 4,743대가 생산되었다.</p>
<div id="attachment_5998" style="width: 593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8-grnada-V6.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8" alt="현대 그라나다 V6"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8-grnada-V6.jpg" width="583" height="437" /></a><p class="wp-caption-text">현대 그라나다 V6</p></div>
<p>동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꾸었던 허동환 자동차는 1979년 일본 닛산디젤과 기술제휴를 맺고 평택공장을 준공했다. 오늘날 쌍용자동차의 평택 공장이 어때 들어선 것이다. 1979년에는 기아가 푸조의 최고급차 604와 피아트 132를 선보였고, 현대는 포니 1400과 포니의 1.4리터 엔진을 얹은 마크4 이코노미를 선보였다.</p>
<div id="attachment_5999" style="width: 7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9-피아트-132-1.jpg"><img class="size-full wp-image-5999" alt="피아트 132"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09-피아트-132-1.jpg" width="700" height="384" /></a><p class="wp-caption-text">피아트 132</p></div>
<p>1980년에는 국보위가 자동차 분야의 통합을 위한 투자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현대와 새한을 그룹으로 묶어 승용차 생산을 전담하고, 기아는 승용차 생산을 폐지하고 5톤 미만의 소형상용차만 생산하며, 대우는 발전설비를 전담한다는 것이다. 현대는 포니 3도어, 코티나 마크5, 그라나다 4기통 모델을 내놓았고, 기아는 봉고 1톤 트럭을, 새한은 로얄시리즈를 선보였다.</p>
<div id="attachment_6000" style="width: 56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10-포니-3도어.jpg"><img class="size-full wp-image-6000" alt="현대 포니 3도어"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10-포니-3도어.jpg" width="550" height="384" /></a><p class="wp-caption-text">현대 포니 3도어</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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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의 역사 &#8211; 1940년대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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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5 Aug 2013 10:30:06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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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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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940년대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발발했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을 침공하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종료됐다. 세계의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1차 대전 이후 불붙어 오르던 자동차 산업이 경제 대공황을 거치며 한번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가 2차 세계대전에는 완전히 정지된다. 대신 군수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특수 목적 차들이 생산되고 전장의 거친 길에서도 달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1940년대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발발했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을 침공하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종료됐다. 세계의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1차 대전 이후 불붙어 오르던 자동차 산업이 경제 대공황을 거치며 한번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가 2차 세계대전에는 완전히 정지된다. 대신 군수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특수 목적 차들이 생산되고 전장의 거친 길에서도 달릴 수 있는 오프로드 차량이 등장한다.</p>
<p>전쟁으로 잠시 생산중단됐던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전쟁중에 자동차는 큰 역할을 해냈다. 영국은 험버의 ‘슈퍼 스나이프’처럼 지휘관을 위한 차를 새로 만들어냈고 독일은 히틀러가 국민을 위해 만든 차 ‘비틀’이 군용차 ‘퀴벨바겐’으로 변신해 만들어졌다. 이 같은 상황은 미국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유럽 국가에 비해 약 3년 정도 늦게 참전한 미국은 그간 승용차 개발을 이어갔고 좀 더 자동차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또, 전쟁에 나가기 위한 다목적 차를 개발하려는 프로젝트에서 윌리스의 ‘지프’가 선정되며 미군의 상징적인 자동차로 자리 잡게 된다.</p>
<p>전쟁 이후의 자동차 업계는 새로운 유행을 맞이한다. 물자를 실어나르기 유용했던 지프와 트럭이 일반인에게도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특히,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장점에 힘입어 4륜 구동 자동차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는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는 픽업트럭이 인기를 끈다. 1920년대부터 픽업 트럭을 생산해오던 포드가 전쟁 이후 ‘F시리즈’ 픽업 트럭을 만들어낸다. 이후 지프와 함께 픽업 트럭은 미국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자리 잡게 된다.</p>
<p>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자동차의 편리함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먼 거리를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던 자동차를 고국에 돌아가서도 사용하고 싶었고 이는 소형차가 큰 인기를 끄는데 주목할 만한 역할을 했다. 이 차들은 각각의 나라에서 ‘국민차’ 반열에 오르며 인기를 끈다. 독일에서는 전쟁 전에 만들었던 ‘비틀’이 인제 서야 제대로 된 양산에 돌입했고 영국에서는 모리스 마이너와 같은 소형차가 인기를 끌었다. 전쟁 직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토요타자동차도 일본에서 폭스바겐 비틀과 유사한 작은 차를 만들었고 프랑스의 시트로엥도 유명한 소형차 ‘2CV’를 생산한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1_800px-Humber_Military_reg_1939_4000_cc_allegedly.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5" alt="사진1_800px-Humber_Military_reg_1939_4000_cc_allegedly"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1_800px-Humber_Military_reg_1939_4000_cc_allegedly.jpg" width="800" height="534" /></a><br />
▲ 험버 슈퍼 스나이프 지휘차, 1938년<br />
1938년 4086cc의 6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등장했다. 섀시와 바디는 험버 스나이프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 차는 군대의 중상급 장교를 위해 만들었으며 전쟁이 끝난 1945년 이후에도 승용차로 1967년까지 개선을 거듭하며 영국에서 생산된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2_VW_Kuebelwagen_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6" alt="사진2_VW_Kuebelwagen_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2_VW_Kuebelwagen_1.jpg" width="800" height="522" /></a><br />
▲ 폭스바겐 퀴벨바겐, 1940년<br />
페디난드 포르쉐 박사가 독일군을 위해 ‘비틀’을 개조해 만든 자동차. 2륜 구동 모델만 있었지만 독일군과 함께 전 유럽을 누볐다. 5년간 5만435대가 만들어졌으며 985cc,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이 장착됐다. 비틀과 같이 뒤에 엔진이 있고 뒷바퀴가 구르는 방식이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3_Willys-MA-3.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7" alt="사진3_Willys-MA-3"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3_Willys-MA-3.jpg" width="504" height="362" /></a><br />
▲ 윌리스 지프, 1941년<br />
2차 세계대전중에 경량 4륜 구동 다목적 차량이 필요했던 미군의 요청에 윌리스가 ‘MB’ 모델로 계약을 따냈다. ‘지프’라는 이름은 군인들이 만화 캐릭터의 이름을 별명으로 붙인 것이다. 전쟁 기간 약 5년간 64만대가 생산됐으며 전쟁 이후 지금까지도 지프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4_1948F-Series_timeline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8" alt="사진4_1948F-Series_timeline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4_1948F-Series_timeline1.jpg" width="850" height="666" /></a>▲ 포드 F1, 1948년<br />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차, 픽업트럭 포드 F 시리즈의 원조다. 포드의 디자이너 유진 ‘밥’ 그레고리가 디자인했고 3.7ℓ 8기통의 거대한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속도 112㎞/h의 성능을 냈다. 기존의 픽업트럭과 달리 섀시와 바디를 픽업트럭용으로 별도 제작했고 스쿨버스까지 총 8가지 버전으로 판매돼 인기를 끌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5_Morris.minor_.bristol.750pix.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9" alt="OLYMPUS DIGITAL CAMERA"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5_Morris.minor_.bristol.750pix.jpg" width="750" height="535" /></a><br />
▲ 모리스 마이너, 1948년<br />
영국의 국민차를 만들기 위해 알렉 이시고니스가 제작한 것으로 모노코크의 차체를 가졌고 4단 변속기를 탑재했다. 당시 런던에서 열린 모터쇼에 등장해 주목을 받았고 1972년까지 130만대가 생산된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6_Citroen_2CV_3.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80" alt="사진6_Citroen_2CV_3"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6_Citroen_2CV_3.jpg" width="800" height="600" /></a><br />
▲ 시트로엥 2CV, 1948년<br />
시트로엥이 경차로 제작한 이 차는 무려 1990년까지 생산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마니아들이 이 차를 탄다. 영국에 MINI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2CV가 있다. 프랑스 농촌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했지만 도시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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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의 역사 &#8211; 1930년대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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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5 Aug 2013 10:27:01 +0000</pubDate>
		<dc:creator><![CDATA[이다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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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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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0;위대한 개츠비&#62;의 1920년대가 끝날 즈음 세계는 충격적인 대공황에 빠지게 된다. 1929년 10월24일. 주식시장 개장과 함께 폭락하기 시작한 주가는 5일 뒤 또 한차례의 폭락으로 1930년대를 공황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후 4년간 실업률은 20%를 웃돌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을 이루던 경제는 급격히 추락했다. 자동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롤스로이스와 같은 고급차 시장은 꾸준히 유지됐지만 대중화가 시작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lt;위대한 개츠비&gt;의 1920년대가 끝날 즈음 세계는 충격적인 대공황에 빠지게 된다. 1929년 10월24일. 주식시장 개장과 함께 폭락하기 시작한 주가는 5일 뒤 또 한차례의 폭락으로 1930년대를 공황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후 4년간 실업률은 20%를 웃돌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을 이루던 경제는 급격히 추락했다. 자동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롤스로이스와 같은 고급차 시장은 꾸준히 유지됐지만 대중화가 시작된 자동차 시장에서는 새로운 방향이 필요했다. 차를 보는 소비자의 눈은 깐깐해졌고 성능 외에도 공간활용, 가격, 브랜드의 신뢰성까지 꼼꼼하게 따지게 됐다.</p>
<p>불황의 여파로 자동차 업계는 모터스포츠까지 영향을 받았다. 1920년대 생겨난 이탈리아의 밀레 밀리아, 프랑스의 르망 24시간 경주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독자적인 경주차를 만들고 이를 양산차에 적용하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에 양산차를 바탕으로 경주차를 만드는 방식도 이때 등장했다. 특히, 무솔리니 정권의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 스포츠카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경제 대공황의 시대 1930년에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이 탈 수 있는 스포츠카가 늘어났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0_아우디가-100주년을-기념해-발굴한-과거-사진_아우토-유니온의-브랜드가-한꺼번에-모여있다.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66" alt="Jubilaeumsmagazin Historie"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0_아우디가-100주년을-기념해-발굴한-과거-사진_아우토-유니온의-브랜드가-한꺼번에-모여있다.jpg" width="1280" height="905" /></a><br />
자동차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도 정부 차원의 투자를 시작했다. 모터스포츠에도 독일의 레이싱카가 맹위를 떨쳤으며 이따금 이탈리아의 알파 로메오를 비롯한 스포츠카가 등장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독일은 정부차원에서 국민차를 만들기도 했다. 1938년 히틀러의 주문을 받은 페디난드 포르쉐 박사는 ‘비틀’이라 불리는 ‘폭스바겐 타입 1’을 제작한다. 당시 인기를 끌던 유선형 차체를 도입했고 엔진은 마치 복싱 선수가 주먹을 주고받듯 피스톤이 좌우로 움직이는 수평 대향형 4기통 엔진을 장착했다. 1932년에는 지금의 아우디가 된 ‘아우토 유니온’이 설립된다. 경제불황으로 휘청거리던 독일 자동차 업계의 반더라, 호르히, 데카베, 아우디가 통합해 한 회사가 됐다. 지금은 벤츠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BMW가 이즈음 첫 차를 내놓는다.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시작한 BMW는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다 1929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다. 1932년 3/20 AM-1을 첫 차로 내놨고 1934년에는 지금과 비슷한 콩팥 모양의 일명 ‘키드니 그릴’을 선보였다. 이어 1936년에는 BMW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스포츠카 328을 내놓는다. 덕분에 유럽 스포츠카 경주는 BMW의 독무대가 된다.</p>
<p>1930년대 후반기에는 경기 회복과 함께 자동차 산업이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다름슈타트를 잇는 아우토반 착공에 들어갔고, 이미 많은 도시에는 포장된 도로가 깔렸다. 자동차들은 도로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모터스포츠의 기술이 적용된 소위 ‘스포츠카’가 도로에 등장하면서 고속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차가 늘어난다. 유럽에서는 일반인들도 파리에서 몬테카를로나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 달리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즐기게 됐다. 더불어 장거리 투어를 위한 이른바 GT카도 등장하게 된다.</p>
<p>1930년대는 불황이었지만 세계 각국의 자동차 산업은 발전하게 된다. 미국은 1931년에 자동차 생산 5000만대를 돌파했고 1935년에는 오클라마시에 주차요금 미터기도 등장한다. 1937년 일본에서는 도요타 자동차가 설립된다. 원래 직물 공장이던 도요타는 이때 ‘자동차 부’를 만들며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1_아들러트라이엄프-주니어-1939.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67" alt="사진1_아들러트라이엄프 주니어 1939"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1_아들러트라이엄프-주니어-1939.jpg" width="600" height="450" /></a><br />
▲ 아들러 트럼프 쥬니어, 1932년<br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두고 있던 아들러가 제작한 소형차다. 995cc의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속도 92㎞/h를 냈다. 폭스바겐 ‘타입 1’ 이전의 원조 ‘국민차’인 셈. 2차 세계대전 때 까지 무려 10만대 이상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5ℓ와 1.7ℓ 급 엔진을 탑재했던 ‘아들러 트럼프’의 소형차급이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2_알파로메오티포_타입b_1932.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68" alt="사진2_알파로메오티포_타입b_1932"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2_알파로메오티포_타입b_1932.jpg" width="750" height="570" /></a><br />
▲ 알파 로메오 티포 타입B, 1932년<br />
이탈리아 정권의 도움을 받으며 급성장한 브랜드 알파 로메오의 역장이다. 비토리오 야노를 디자이너로하고 엔초 페라리를 팀 책임자로 앉히며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알파 로메오가 이 차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독일차를 제쳤다. 2650cc 직렬 8기통 엔진에 최고속력은 225㎞/h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3_폭스바겐비틀.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69" alt="사진3_폭스바겐비틀"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3_폭스바겐비틀.jpg" width="800" height="600" /></a><br />
▲폭스바겐 타입 1(비틀), 1938년<br />
아돌프 히틀러의 주문을 받은 페디난드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국민차’다. 값싸고 내구성이 좋을 것이 주문 조건이었다. 1938년 선보인 이 차는 2003년까지 약 2153만대가 생산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다. 폭스바겐은 이 차를 ‘타입 1’이라고 불렀지만 마치 딱정벌레처럼 생겼다고 해서 ‘비틀’이란 애칭으로 더욱 유명하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4_BMW-328.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0" alt="사진4_BMW 328"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4_BMW-328.jpg" width="800" height="533" /></a><br />
▲ BMW 328, 1936년<br />
자동차를 생산하는 신생업체 BMW가 야심 차게 내놓은 기대작이다. 등장하자마자 독일 뉘른부르크링에서 열린 2.0ℓ급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328은 100차례 이상 경주에서 우승하며 BMW의 이름을 알리고 독일차의 자존심을 지키는 큰 역할을 한다. 지금은 BMW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전방의 키드니 그릴이 이 차에서부터 시작됐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5_롤스로이스-팬텀2.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1" alt="사진5_롤스로이스 팬텀2"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5_롤스로이스-팬텀2.jpg" width="800" height="533" /></a><br />
▲ 롤스로이스 팬텀2, 1930년<br />
당시에도 최고급 자동차를 생산하던 롤스로이스가 1929년부터 1936년까지 1680대를 생산한 고급차다. 사진의 차는 1931년 롤스로이스 팬텀2 컨티넨탈 스포츠 살롱으로 당시의 화려함을 그대로 담고 있다. 7668cc의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최고속도는 145㎞/h에 이르렀으며 거대한 차체의 화려함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성능까지 갖춘 고급차였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6_메르세데스벤츠-260d.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972" alt="사진6_메르세데스벤츠 260d"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6_메르세데스벤츠-260d.jpg" width="925" height="542" /></a><br />
▲ 메르세데스 벤츠 260D, 1936년<br />
당시 트랙터나 대형 트럭 일부에만 사용하던 디젤엔진을 벤츠는 승용차에 집어넣었다. 열효율이 가솔린 엔진보다 좋고 토크가 높았지만 소음과 진동은 승용차와 어울리지 않았다. 2545cc, 직렬4기통의 디젤 엔진으로 최고속력 97㎞/h를 냈다. 대중적으로 판매되진 않았지만 미래 디젤 승용차의 원조로 불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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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의 역사 &#8211; 1920년대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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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2 Aug 2013 03:51:3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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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920년대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1914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독일, 러시아, 영국이 얽힌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유럽은 전쟁의 도가니에 빠진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축이 맞붙었다. 이후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참전했고 이듬해 1차대전은 끝났다. 1919년 파리평화협상과 베르사이유협정 조약으로 다시 세계는 평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불붙었던 자동차 개발의 열기가 전쟁으로 인해 군수물자에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1920년대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1914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독일, 러시아, 영국이 얽힌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유럽은 전쟁의 도가니에 빠진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축이 맞붙었다. 이후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참전했고 이듬해 1차대전은 끝났다. 1919년 파리평화협상과 베르사이유협정 조약으로 다시 세계는 평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불붙었던 자동차 개발의 열기가 전쟁으로 인해 군수물자에 집중됐다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p>
<p>본문: 최초의자동차가 등장한 지 불과 20년 만에 자동차는 어수룩한 모습을 모두 떨쳐냈다. 전쟁으로 인한 공백은 오히려 공장과 공업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주요국에서는 자동차 개발 열기가 불타올랐다. 1920년대 자동차는 보다 확실한 모습을 드러낸다. 고급차는 고급스럽게 대중차는 실용적으로 변모하고 세계적으로 자리 잡은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기술개발의 원천이 된다.</p>
<p>&nbsp;</p>
<div id="attachment_5848" style="width: 611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0_1920_wallstreet_bomb_terror.jpg"><img class="size-full wp-image-5848" alt="1920년 미국 월스트리트에 1차 세계대전과 연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0_1920_wallstreet_bomb_terror.jpg" width="601" height="480" /></a><p class="wp-caption-text">1920년 미국 월스트리트에 1차 세계대전과 연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p></div>
<p>전쟁 이후 세계는 대공황에 빠졌지만 미국과 유럽의 상류층들은 오히려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된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lt;위대한 개츠비&gt; 역시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호화 자동차는 마차를 생산하던 장인들의 공방 이른바 ‘코치빌더’를 통해 만들어졌다. 엔진과 차체, 변속기 등을 갖춘 자동차 뼈대 위에 코치빌더가 만든 화려한 차체를 얹었다. 지금은 아우디로 합병한 호르히, 고급차를 생산하던 부가티, 여전히 최고급차로 유명한 롤스로이스와 미국의 고급 브랜드 링컨 등이 화려한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1927년 부가티에서 선보인 타입 41 루와얄은 1만2760cc의 초대형 엔진을 얹고 304마력의 엄청난 출력을 자랑했다. 전 세계의 왕족을 겨냥한 차로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거대하고 화려해 단 6대만 팔렸다.</p>
<p>반면, 대중차의 인기도 늘어났다. 포드의 대량생산으로 자동차의 가격이 내려갔고 유럽과 미국에서 중산층의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실용적이고 저렴한 자동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1ℓ 미만의 소형 엔진을 장착하고 4개의 바퀴, 4개의 브레이크를 장착한 기본적인 자동차가 등장했다. 이보다 조금 더 큰 차로는 유럽에선 1.5ℓ 언저리의 중형 엔진에 튼튼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한 차가 인기를 끌었고 미국에서는 중산층의 자동차도 4ℓ를 넘나드는 대형 엔진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도 포드의 자동차가 일본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신문 광고에는 포드와 쉐보레의 자동차 판매점이 서울 태평로에 자리 잡았다고 전하고 있다.</p>
<p>자동차 판매가 늘어나자 기술도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다. 1921년 듀젠버그는 최초로 4륜 유압브레이크를 적용했고 1925년 베를린의 엔지니어 휀팅거는 자동변속기를 개발해 벤츠에서 테스트했지만 양산하진 못했다. 1926년 캐딜락은 최초로 안전유리를 장착했고 1927년 독일 오펠에서는 최고속도 238㎞/h에 이르는 로켓 프로펠러 자동차 ‘RAK’을 제작해 발표했다. 또한, 최초의 자동 와이퍼가 포드 링컨에 의해 1929년 등장하는데 압축 공기를 사용하는 진공 모터로 작동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1_austin7_roadster_1927.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849" alt="사진1_austin7_roadster_1927"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1_austin7_roadster_1927.jpg" width="772" height="563" /></a><br />
▲ 오스틴 세븐, 1922년<br />
영국 젊은이들이 창고에서 만든 자동차다. 오스틴은 18세의 스탠리 엣지와 함께 집에서 이 차를 완성했다. 자동차의 기본적인 형태를 모두 가져왔고 작고 실용적이었다. 앞에는 4기통 696cc의 소형 엔진이 장착됐고 뒷바퀴를 굴리는 방식이었다. 또,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4바퀴에 모두 브레이크를 장착한 안전한 자동차였다. 출시 이후 약 17년 동안 29만924대가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뒀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2_Ford-Model-A-Deluxe-Tudor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850" alt="사진2_Ford-Model-A-Deluxe-Tudor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2_Ford-Model-A-Deluxe-Tudor1.jpg" width="800" height="562" /></a><br />
▲ 포드 모델 A, 1927년<br />
20세기 초반 창업 이후 위기의 포드를 구해낸 ‘모델 A’가 1920년대 다시 등장한다. ‘모델 T’로 큰 성공을 거둔 포드는 미국 중산층을 위해 ‘모델 A’를 대량생산한다. 포드의 본사가 있는 미국 미시간 디어본을 비롯한 아르헨티나, 독일, 덴마크, 아일렌드, 영국, 오스트리아에서도 생산한 이 차는 1932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484만9340대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택시로 도입되기도 했고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갱들의 자동차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3_lancia_lambda1922.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851" alt="사진3_lancia_lambda1922"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3_lancia_lambda1922.jpg" width="816" height="590" /></a><br />
▲ 란치아 람다, 1922년<br />
세계최초로 프레임과 차체가 하나로 된 모노코크 형태의 섀시를 갖춘 자동차로 당시에는 최신형 기술을 자랑하며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원조로 불린다.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2120cc 4기통 엔진을 얹었고 최고속도는 113㎞/h, 최대출력은 49마력이었다. 독립적인 서스펜션과 쇽업쇼버를 장착해 승차감을 개선했고 4바퀴 모두에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란치아 람다는 특히 당대의 최고 스타였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차를 몰며 달리는 사진으로도 유명하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4_bugatti_type_41_royale_weinberger.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852" alt="사진4_bugatti_type_41_royale_weinberger"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4_bugatti_type_41_royale_weinberger.jpg" width="890" height="1334" /></a><br />
▲ 부가티 타입 41 루와얄, 1927년<br />
루와얄(Royale)이라는 이름처럼 왕족 등 최상류층을 위해 만든 자동차다. 당시에 가장 비싼 자동차로 통하던 롤스로이스 팬텀보다 가격이 3배 이상 비쌌다. 따라서, 생산기간도 길었고 가격도 비싸 애초 25대 생산을 목표로 했지만 6대만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3대는 스페인국왕, 루마니아국왕, 벨기에국왕에게 인도될 정도로 왕족을 위한 자동차였다. 1920년대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이 차는 무게 2.5톤에 길이가 2.7m에 이른다. 1만2760cc이 초대형 엔진으로 300마력 출력을 냈으며 3단 변속기를 장착하고 2단에서 최고속도 145㎞/h를 냈다. 현재는 자동차 수집가들이 가장 탐내는 차 가운데 하나로 국내에도 모 대기업 회장이 섀시넘버 41.150 ‘Berline de Voyage’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각각 6대의 섀시가 모두 다른 코치빌더에 의해 제작돼 모양과 색깔이 다른것이 특징이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5_1928_horch_8_typ_35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853" alt="사진5_1928_horch_8_typ_350"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5_1928_horch_8_typ_350.jpg" width="704" height="396" /></a><br />
▲ 호르히 타입 350, 1928년<br />
지금은 사라진 독일 브랜드 호르히가 화려한 자동차로 타입 350을 내놨다. 1926년 선보인 303의 개선모델로 직렬 8기통 3950cc 엔진을 얹었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와 경쟁하던 호르히는 고급차를 내놓기로 하고 12기통 자동차 670을 생산하기도 했다. 호르히는 1899년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세운 회사로 1928년에는 DKW에 인수되고 아후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유니온으로 합병된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6_bentley-speed-6.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854" alt="사진6_bentley speed 6"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8/사진6_bentley-speed-6.jpg" width="800" height="431" /></a><br />
▲ 벤틀리 스피드 식스, 1928년<br />
유럽에서 보기 힘든 6597cc의 대형 엔진을 장착한 럭셔리 스포츠카다. 1920년대 인기를 끌었던 르망 레이스에서 1929년과 1930년 두 차례나 우승을 하며 가장 성공한 스포츠카로 자리 잡는다. 1924년 등장한 스탠더스 식스의 개량형으로 건식 클러치를 사용하고 4단 기어를 장착했다. 휠베이스는 초창기 모델이 3505.2㎜였으나 점차 늘어나 3568.7㎜까지 커진다.</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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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의 역사 – 1910년대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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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Jul 2013 00:43:01 +0000</pubDate>
		<dc:creator><![CDATA[이다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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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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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엔진을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개발된 이후 1910년대에 들어서는 자동차가 대중의 생활로 들어왔다. 또, 자동차를 이용한 스포츠가 탄생했고 화려함을 더한 고급차와 대중적인 차가 나뉘게 된다. 이와 함께 직렬 4기통 엔진, 전기를 이용한 전조등, 유성기어 변속기, 전기 자동 시동기 등이 개발되면서 자동차는 점차 편리하고 대중적인 이동수단으로 각광받게 된다. 본문: 메르세데스 벤츠가 세계 최초로 차를 발명하며 1900년대를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엔진을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개발된 이후 1910년대에 들어서는 자동차가 대중의 생활로 들어왔다. 또, 자동차를 이용한 스포츠가 탄생했고 화려함을 더한 고급차와 대중적인 차가 나뉘게 된다. 이와 함께 직렬 4기통 엔진, 전기를 이용한 전조등, 유성기어 변속기, 전기 자동 시동기 등이 개발되면서 자동차는 점차 편리하고 대중적인 이동수단으로 각광받게 된다.</p>
<p>본문: 메르세데스 벤츠가 세계 최초로 차를 발명하며 1900년대를 장식했다면 1910년대는 포드의 시대다. 1908년 처음 등장한 ‘모델 T’를 출시한 이후 1913년 이동식 조립라인, 일명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면서 이듬해인 1914년에는 하루 생산량 1000대를 돌파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포드는 자동차의 단가를 낮출 수 있었고 생산성을 높이면서 불과 10년 후에 미국 자동차의 절반 가까이 포드가 차지하게 된다.</p>
<p>이렇게 대중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자동차의 기술 발전도 꾸준히 이어졌다. 1911년에는 미국 캐딜락 사의 찰스 케터링이 자동 시동기를 개발했다. 당시에는 마치 구형 경운기처럼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걸어야 했다. 불편함이 많았지만 자동차 회사에서는 이 고민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전기 시동기의 개발을 앞당겼다. 1907년 디트로이트의 어느 다리에서 한 여인이 운전하던 자동차가 시동이 꺼졌다. 이를 도와주기 위해 남자가 차에서 내렸고 시동을 걸기 위해 쇠막대를 돌리는 순간 엔진이 역회전 하면서 남자의 머리를 강타했다. 며칠 후 남자는 숨을 거뒀는데 바로 이 남자가 캐딜락의 사장 핸리 릴랜드의 친구였다. 릴랜드는 자신이 만든 차가 친구를 죽였다는 자괴감에 빠졌고 자동 시동기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전기 기술자였던 찰스 케더링이 전기로 시동을 거는 장치를 개발했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11" alt="사진1"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1.jpg" width="1000" height="668" /></a></p>
<p>같은 해 유럽에서는 자동차 랠리가 시작됐다. 제 1회 몬테카를로 랠리가 시작된 것. 프랑스 파리에서 10대, 벨기에 브뤼셀에서 4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2대, 스위스 제네바에서 2대, 독일 베를린에서 4대 등 총 22대가 출발했는데 6대는 몬테카를로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인디애나주에서 500마일 경주가 시작됐다. 해마다 전사자 기념일에 치러지는 이 경기는 약 2.5마일(4㎞)의 타원형 트랙을 돌아 500마일을 채우는 단순한 형태로 시작됐고 미국 자동차 클럽(USAC)의 규정에 따라 엔진 형태를 맞춰 경기에 나섰다.</p>
<p>자동차의 대중화가 이뤄지자 여기저기서 자동차 회사들이 생겨났다. 1919년에는 미국에서 캐딜락의 사장이던 헨리 릴랜드가 윌리엄 듀런트의 GM에 캐딜락을 매각한다. 그리고 곧바로 ‘링컨’을 설립했다. 프랑스의 앙드레 시트로엥이 ‘시트로엥’을 설립했다. 포드의 하청업체이던 닷지 역시 1914년 투어링카를 내놨다.</p>
<div id="attachment_5412" style="width: 13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2-알파인-트라이얼-100주년-기념행사-실버고스트.jpg"><img class="size-full wp-image-5412" alt="알파인 트라이얼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주행 중인 롤스로이스 실버고스트"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2-알파인-트라이얼-100주년-기념행사-실버고스트.jpg" width="1300" height="865" /></a><p class="wp-caption-text">알파인 트라이얼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주행 중인 롤스로이스 실버고스트</p></div>
<p>1910년 후반으로 들어서자 자동차는 점차 특색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가 4기통 엔진과 고장 나지 않는 단순하고 간단한 구조를 선택했다면 고급차는 화려한 차체와 거대한 엔진을 얹었다. 당시의 고급차는 5000cc 이상의 초대형 엔진을 얹었다. 또, 수동으로 접었다 펼 수 있는 지붕이나 단단하게 고정된 지붕을 얹어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차가 고급으로 꼽혔다. 도로사정 역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한 승차감을 주는 장비가 있어야 했고 스티어링휠을 편하게 돌리는 파워스티어링과 출발 전에 미리 사용할 기어를 선택해놓고 달리는 사전 선택형 변속기도 고급차의 주요 품목이었다. 현대적 자동차 가운데 가장 고급차로 불리는 롤스로이스 역시 이즈음 등장했다. 1906년 처음 등장한 롤스로이스의 대표모델 ‘실버 고스트’는 1910년대 가장 고급스런 차로 손꼽힌다. 1925년까지 7,876대가 생산된 이 차는 7,410cc의 초대형 엔진과 개방형 운전공간과는 별도로 나눠진 승객 공간을 갖췄다. 자동차 판매상이던 찰스 롤스와 전기 기술자인 헨리 로이스가 함께 만든 롤스로이스는 높은 지붕을 갖춰 당시 유행하던 커다란 모자를 쓴 여인들도 편하게 탈 수 있게 설계했다.<br />
<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3_1908_ford_model_T.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13" alt="사진3_1908_ford_model_T"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3_1908_ford_model_T.jpg" width="668" height="1000" /></a></p>
<p>▲ 포드 모델 T, 1908년<br />
비록 처음 선보인 것은 1908년이었지만 1910년대 가장 유명한 차가 바로 포드 모델 T다. 대량 생산을 위해 가볍고 단순한 구조를 추구한 결과 등장한 자동차다. 바나듐강을 사용해 무게를 줄였고 컨베이어벨트 생산라인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한때는 건조속도가 빠른 검은색 페인트만 사용하기도 했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미국에서 타기 좋도록 가로 배치 판형 스프링을 추가해 넣었다. 또, 현재의 승용차와 비슷한 ℓ당 11㎞∼13㎞의 연비를 내 경제성도 갖췄다. 2,896cc의 엔진은 20∼22마력의 출력을 냈고 2단 유성기어가 장착돼 최고속도 64㎞/h∼72㎞/h를 기록했다. 1927년까지 생산된 포드의 모델 T는 전 세계에서 1,500만 7,003대가 판매돼 자동차 역사에 대기록을 남긴다.</p>
<p>&nbsp;</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4-1913_Bugatti_Type_18_2.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14" alt="사진4-1913_Bugatti_Type_18_2"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4-1913_Bugatti_Type_18_2.jpg" width="800" height="549" /></a><br />
▲ 부가티 타입 18 ‘갸로’, 1912년<br />
1912년부터 1914년 사이에 만들어진 이 차는 오버헤드 캠 샤프트와 2중 흡기 밸브를 달아 101마력의 강력한 출력을 냈다. 엔진은 5,027cc로 4단 슬라이딩 피니언 기어박스를 갖춰 최고속도가 169㎞/h에 달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엔진 실린더의 폭(보어)이 100㎜, 깊이(스트로크)는 160㎜로 매우 길었다. 그래서 이 엔진은 최고 회전수가 2400rpm에 불과했다.</p>
<p>&nbsp;</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5_brooke-swan-car-1910-76713_64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15" alt="사진5_brooke-swan-car-1910-76713_640"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5_brooke-swan-car-1910-76713_640.jpg" width="640" height="410" /></a><br />
▲ 브루크 25 스완, 1910년<br />
인도 캘커타에 살던 영국인 로버트 니콜 ‘스코티’ 매튜슨이 만든 독특한 형태의 자동차다. 고급차로 만들었는데 마치 요즘 시각에서는 놀이동산의 차와 비슷해 보인다. 나무로 만든 차체는 영국의 유명 증기기관 놀이기구 업체에서 만들었다. 4,788cc의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해 시속 60㎞/h까지 달릴 수 있었고 증기기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배기가스가 나오는 곳에는 여러 가지 음을 낼 수 있는 혼을 장착해 마치 연주하듯 키보드로 소리를 조절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백조의 주둥이에서 뜨거운 물을 쏘는 장치를 장착해 복잡한 인도 시내를 지나갈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한다.</p>
<p>&nbsp;</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6_800px-Argyll_Flying_Fifteen.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16" alt="사진6_800px-Argyll_Flying_Fifteen"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6_800px-Argyll_Flying_Fifteen.jpg" width="800" height="543" /></a><br />
▲ 아가일 15/30, 1913년<br />
영국 에드워드 7세가 재위했던 시기에 스코틀랜드의 최대 자동차 메이커 아가일은 포드에 이어 생산량에서 큰 성공을 거둔 회사였다. 1899년 알렉스 조반이 설립한 회사는 전쟁을 겪으면서 뻗어나가지 못하고 1932년 문을 닫는다. 이 차는 2,614cc의 직렬 4기통 엔진으로 최고속력 76㎞/h를 냈으며 당시에는 드물게 4바퀴 모두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또한, 1914년에는 싱글 슬리브 밸브 엔진을 디자인하며 혁신을 이뤄나갔다.</p>
<p>&nbsp;</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7_푸조타입126.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17" alt="사진7_푸조타입126"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7_푸조타입126.jpg" width="945" height="630" /></a><br />
▲ 푸조 타입 126 투어링, 1910년<br />
2,200cc의 직렬 4기통 엔진을 장착한 이 차는 프랑스 오토메이커 푸조가 만들어 350대만 판매한 모델이다. 최대 12마력의 출력과 최고속도 55㎞/h의 차는 커피 그라인더를 비롯한 가정용품을 만들던 푸조가 새로운 사업으로 자동차에 뛰어든 이후 만들어낸 결과다.</p>
<p>&nbsp;</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8_Cadillac_57_V8_Town_Car_1917.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5418" alt="사진8_Cadillac_57_V8_Town_Car_1917"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8_Cadillac_57_V8_Town_Car_1917.jpg" width="800" height="484" /></a><br />
▲ 캐딜락 모델 51, 1914년<br />
캐딜락 최초의 8기통 엔진을 얹은 이 차는 크고 럭셔리한 자동차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최초의 좌 핸들 방식으로 등장한 캐딜락이다. 휠베이스는 3,099㎜에 이를 정도로 컸다. 1916년에는 모터사이클 레이서였던 어윈 베이커와 윌리엄 스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7일 11시간 52분 만에 달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5,157cc의 8기통 엔진이 특징인 이 차는 첫해 1만3,000대가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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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의 역사 &#8211; 1960년대 한국의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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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Jul 2013 08:20:07 +0000</pubDate>
		<dc:creator><![CDATA[박기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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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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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대한민국은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경제 대국, 자동차 대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모든 과정과 노력을 다 살필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자동차 역사를 차례로 짚어 보는 일은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첫 번째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대한민국은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경제 대국, 자동차 대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p>
<p>그 모든 과정과 노력을 다 살필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자동차 역사를 차례로 짚어 보는 일은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p>
<p>그 첫 번째로 1960년대 이전 한국의 자동차를 살펴보았다.</p>
<p>농업을 근본으로 삼아 온 조선에 공업의 대표 상품인 자동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p>
<p>1901년경 미국인 버튼과 홈즈가 서울을 구경하고 쓴 여행기에 자동차와 소달구지가 함께 찍힌 사진이 실린 것으로 미루어 자동차가 서울에 들어온 것은 그 이전일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국내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p>
<p>공식적으로 등록된 기록이 남아 있는 첫 차는 1903년 고종 황제가 즉위 40 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공사 알렌을 통해 들여온 고종황제 어차다.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 차가 포드 인지 캐딜락인지 확실치 않은 가운데 포드의 오픈카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지고 있고 운전사는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이 첫 차는 1904년 러일 전쟁 중에 자취를 감추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p>
<p>그 후 1911년에 다시 황실에서 2대의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영국 다임러의 4기통 리무진은 고종 황제를 위해, 미국 캐딜락의 8기통 리무진은 순종 황태자를 위해서였다. 이후 다임러는 순종황제가 캐딜락은 순정효황후가 탔다. 이들 두 어차는 현재 국립 고궁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p>
<p>이즈음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는 황실용 2대와 총독부용 1대, 총 3대가 전부였다. 그 후 1911년 말에 일본인 에가와가 경남에서 승합차 영업 허가를 얻고, 8인승 포드 승합차로 그 이듬해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1913년에는 일본인 오리이와 곤도가 서울에서 택시 대절업을 시작했고, 이어서 한국인 이봉래씨와 함께 오리이자동차상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운수사업이 시작됐다. 1914년에 총독부의 허가를 받은 오리이상회는 평양-진남포, 사리원-해주, 신의주-의주, 천안-온양, 김천-상주, 공주-조치원 등 9개 노선에서 본격적인 버스 정기노선을 열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활발한 운송사업이 전개되었고 한국인으로서 처음 버스운송업체를 설립한 사람은 공주갑부 김갑순이었다.</p>
<p>자동차 등록대수가 늘어나고, 교통사고도 발생하기 시작하자 1915년 서울 경시청에서 자동차를 단속하기 위한 &#8216;자동차 취재령&#8217;이 공포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셈이다. 이 때 자동차 속도 제한은 25km/h였고, 1921년에 개정된 취재규칙에서는 40km/h로 제한되었다.</p>
<p>민간인으로 자가용을 가진 최초의 한국인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1명인 의암 손병희 선생으로 1918년 캐딜락 2대를 들여와 1대는 고종황제에게 진상하고, 1대를 자신이 탔다고 한다.</p>
<p>1928년에는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에서 20인승 대형버스 10대를 들여와 처음으로 서울시내 정기 노선 버스를 운영했다.</p>
<p>자동차 정비 업체와 부품 생산 업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거의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운영하는 업체들이었고, 한국인이 운영한 업들은 대체로 영세했다. 정비 업체로 가장 큰 곳은 국내 정비의 60% 정도를 차지했던 경성 서비스를 들 수 있다.</p>
<p>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은 통치 및 물자 수탈을 위해 많은 도로를 건설하였다. 1917년 국내 도로는 총 연장 4,987km, 1930년 말에는 18,910km, 해방된 1945년 8월에는 24,031km였으며, 포장도로의 비율은 4.4%에 불과했다.</p>
<p>1944년 12월 고 김철호 회장이 기아산업의 전신인 경성정공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난한 기간에 국내 첫 브랜드인 3000리호 자전거를 발표했으며, 52년에 기아산업(주)으로 사명을 바뀌었다.</p>
<p>현대자동차공업사가 설립된 것은 해방 후인 1946년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40년대 초 자동차 정비회사인 아도서비스를 시작했다가 43년 기업정리령에 의해 철수 했다가 다시 자동차산업으로 돌아왔다. 현대자동차공업사는 한 때 현대건설에 통합되었다가 67년 현대자동차(주)로 다시 태어난다.</p>
<div id="attachment_5392" style="width: 60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1-시발.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2" alt="시발"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1-시발.jpg" width="598" height="395" /></a><p class="wp-caption-text">시발</p></div>
<p>1955년 9월 우리나라의 첫 국산차인 &#8216;시발&#8217;이 등장했다. 해방 전부터 자동차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씨 3형제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서울에서 국제공업사의 문을 열었고, 불하 받은 미군용 지프의 엔진, 변속기, 섀시 위에 드럼통을 펴서 만든 바디를 얹어 지프형태의 승용차 시발을 만들었다. 그 해 10월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정부의 지원과 계약이 밀려들면서 1억 환 이상의 자금이 들어와 본격적인 양산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1대 만드는데 수개월이 걸려, 55년에 7대를 생산했고, 56년에는 1주일에 1대 꼴인 74대를 생산하는데 그쳤지만, 57년 새로운 공장 시스템과 인력을 확충한 후 하루 1대씩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p>
<p>시발은 엔진 블록과 실린터 헤드 등 엔진 주요 부품을 포함한 많은 부품을 국산화해 국산화율이 50%를 넘었고, 60년에는 완전국산화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기까지 했으나 실제 달성하지는 못했다.</p>
<p>탄력을 받은 시발자동차는 한 달에 1천대 생산이 가능한 현대적 시설을 갖추겠다는 부푼 꿈을 꾸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가지만 운영자금이 부족해지고, 사업 승인은 늦춰지던 즈음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정부는 시발자동차 대신 62년 등장한 새나라 자동차에 소형자동차 부문의 힘을 실어 주었고, 새나라 자동차에 밀린 시발자동차는 63년 말 총 2,235대 생산을 기록하고 생산 중단에 들어갔고, 64년에는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p>
<p>1955년에 김창원씨가 설립한 자동차 정비공장 신진공업사가 1957년 신진공업(주)으로 성장했는데, 이 회사가 훗날 대우의 전신이다.</p>
<div id="attachment_5393" style="width: 664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2-새나라.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3" alt="새나라"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2-새나라.jpg" width="654" height="602" /></a><p class="wp-caption-text">새나라</p></div>
<p>1962년 등장한 새나라 자동차는 재일교포 박노정씨가 닛산과의 기술제휴로 설립한 회사다. 1,200cc급 닛산 소형차 블루버드를 &#8216;새나라&#8217;라는 이름으로 SKD 생산하기로 하고, 초기 완성차 400대를 들여왔고, 조립공장이 준공된 후 9월부터 조립생산을 시작했다. 62년과 63년에 각각 1천여 대씩 총 2,372대를 조립생산 한 후 외환사정 악화로 생산이 중단되었다.</p>
<p>손으로 철판을 두드려 만들던 시발과 달리 현대적인 생산시설에서 조립된 새나라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국산화율은 5%에 불과했다.</p>
<div id="attachment_5394" style="width: 507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3-K-360.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4" alt="K-360"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3-K-360.jpg" width="497" height="338" /></a><p class="wp-caption-text">K-360</p></div>
<p>1962년 1월 기아산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3륜 트럭 K-360을 출시했다. 1944년 설립된 경성정공이 52년 피난 간 부산에서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바꾸었다. 57년에 시흥공장을 준공하였고, 61년에는 자전거에 원동기를 붙어 오토바이 생산을 시작한 데 이어 자동차까지 생산한 것이다.</p>
<p>3륜 트럭 K-360은 356cc 공랭식 2기통 엔진을 얹고 중량 485kg, 적재량 300kg, 최고속도 65km/h의 성능을 냈다. 가격은 당시 9만 5천원이었다. 이듬해 3월에는 성능이 높아진 3륜 트럭 T-1500을 출시했는데, 배기량 1,484cc 수냉식 4기통 엔진을 얹고, 중량 1,480kg에 적재량 2톤, 가격은 12만원이었다. 하지만 두 모델 모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p>
<div id="attachment_5395" style="width: 6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4-신성호.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5" alt="신성호"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4-신성호.jpg" width="600" height="339" /></a><p class="wp-caption-text">신성호</p></div>
<p>63년 3월 신진공업은 생산이 중단된 새나라를 그대로 본 떠 만든 신성호를 출시했다. 이 신성호도 시발처럼 철판을 두르려 만든 차체에 1,500cc 재생 엔진과 변속기 등을 조립한 것으로 새나라보다 훨씬 비싼 가격 때문에 65년까지 총 322대를 생산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신성호 생산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정부의 소형자동차 공장의 실수요자로 선정되면서 발전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p>
<p>1964년에는 자동차공업 종합육성계획이 발표되었고, 이 계획에 따라 신진공업은 종합조립공장의 실수요자로 선정되었다.</p>
<p>1965년 아시아자동차공업(주)이 설립되었고, 신진공업은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했다.</p>
<div id="attachment_5396" style="width: 61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5-코로나.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6" alt="코로나"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5-코로나.jpg" width="600" height="323" /></a><p class="wp-caption-text">코로나</p></div>
<p>1966년 1월 신진공업이 토요타와 기술 제휴를 맺고, 신진자동차공업(주)으로 사명을 바꿨다. 그리고 차관을 바탕으로 근대화된 조립공장을 건설해 토요타의 1,500cc급 코로나를 CKD 생산하기 시작했다. 67년에는 중형급의 크라운, 68년에는 800cc급의 퍼블리카 생산을 시작했다. 코로나는 큰 인기를 끌다가 중국이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와의 거래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책을 내 놓자 토요타가 신진에서 철수하면서 코로나는 1972년까지 4만 4,248대를 끝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p>
<div id="attachment_5397" style="width: 508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6-코티나.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7" alt="코티나"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6-코티나.jpg" width="498" height="278" /></a><p class="wp-caption-text">코티나</p></div>
<p>1946년에 설립되었던 현대자동차공업사는 1950년 현대토건사와 합병하여 현대건설(주)이 되면서 자동차사업은 부설 중기공장으로 존재하다 1967년 12월 현대모타(주)로 부활했고, 곧바로 현대자동차(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1968년 1월 제조업체 삼원화 방침에 따라 새롭게 자동차산업에 진입하게 된 현대자동차는 2월에 포드와 기술 및 조립, 판매계약을 맺고 현대자동차 최초 모델인 코티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코티나는 4기통 1,598cc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75마력, 최고속도 160km/h의 성능을 냈다 71년 뉴 코티나로 바뀌기까지 9,290대가 생산됐다.</p>
<div id="attachment_5398" style="width: 730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7-T-2000.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8" alt="T-2000"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7-T-2000.jpg" width="720" height="320" /></a><p class="wp-caption-text">T-2000</p></div>
<p>기아산업은 초기 3륜 트럭의 실패 이후 다시 3륜 트럭에 도전해 도요고교의 여러 모델을 분석 후 중형 3륜차인 T-2000을 도입했다. 1,985cc 엔진을 얹고 적재량이 2톤인 이 모델은 97년 기아마스타 T-2000으로 출시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69년에는 기아마스타 T-600도 성공시키며 70년대 본젹적인 4륜차 생산의 기초를 닦게 되었다.</p>
<div id="attachment_5399" style="width: 509px" class="wp-caption aligncenter"><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8-T-600.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99" alt="T-600"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8-T-600.jpg" width="499" height="333" /></a><p class="wp-caption-text">T-600</p></div>
<p>&nbsp;</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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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동차의 역사 &#8211; 1900년대 자동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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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Jul 2013 08:12:37 +0000</pubDate>
		<dc:creator><![CDATA[이다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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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자동차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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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현대적인 자동차의 역사는 불과 100년 남짓이다. 1700년대부터 증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가 도로를 달렸고 심지어 1826년에는 22명이 탈 수 있는 버스 형태의 증기자동차가 영국 런던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자동차’라고 부르는 모습은 1900년 초반에 갖춰졌다. 가솔린 내연기관을 장착했고 고무로 된 타이어를 붙였으며 둥근 스티어링휠과 라디에이터 등을 가졌다. 1800년대 후반에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개발이 이뤄지며 관련 부품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현대적인 자동차의 역사는 불과 100년 남짓이다. 1700년대부터 증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가 도로를 달렸고 심지어 1826년에는 22명이 탈 수 있는 버스 형태의 증기자동차가 영국 런던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자동차’라고 부르는 모습은 1900년 초반에 갖춰졌다. 가솔린 내연기관을 장착했고 고무로 된 타이어를 붙였으며 둥근 스티어링휠과 라디에이터 등을 가졌다. 1800년대 후반에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개발이 이뤄지며 관련 부품이 발명된 성과다. 자동차는 1900년대 들어서야 당시 유행하던 전기자동차나 증기기관 자동차에 비해 근대적인 모습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p>
<div id="attachment_5374" style="width: 810px" class="wp-caption alignnone"><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1-benz_patent_motorwagen_1886.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74" alt="독일 칼 벤츠가 만든 ‘페이턴트 모터바겐’"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1-benz_patent_motorwagen_1886.jpg" width="800" height="530" /></a><p class="wp-caption-text">독일 칼 벤츠가 만든 ‘페이턴트 모터바겐’</p></div>
<p>19세기 이전에도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삼륜 자동차나 여성들이 이용하던 전기자동차가 있었지만 최초의 현대적 자동차는 독일 칼 벤츠가 만든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꼽는다. “특허받은 자동차”라는 뜻의 이 차는 1885년 만들었고 이듬해 특허를 받았다. 가벼운 차체와 4 행정 가솔린 엔진, 철제 스포크 휠을 장착해 만든 차로 954cc엔진으로 0.75마력의 힘과 최고속도 15㎞/h의 성능을 냈다. 물론 이전에도 4바퀴의 마차에 증기기관, 전기모터, 디젤엔진 등을 얹은 차가 돌아다녔지만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의 진정한 의미로 자동차는 이때 시작됐다.</p>
<p>180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자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발전과 함께 증기기관의 크기도 점차 작아졌으니 자연스럽게 마차에 얹어 스스로 굴러가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핵심인 엔진을 두고도 어떤 방식이 주도권을 잡을지 정리되지 않았다. 증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는 계속 물을 끓여야 하기 때문에 최소 3명의 운전수가 필요했다. 1명은 물을 끓여야 하고 또 다른 1명은 방향을 조절하는 운전을 했다. 나머지 1명은 증기기관차 앞에서 걷거나 달려가며 도로에 있는 사람이나 말들이 놀라지 않도록, 혹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경고를 해야 했다. 영국에서는 말이나 사람의 안전을 고려해 최소 3명의 운전사를 두도록 법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때, 차에는 붉은 깃발을 걸어 표시하도록 해 이른바 ‘적기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동차 역사에서 이 법은 영국의 자동차 개발을 늦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적기법이 1896년 사라지고 영국에서도 자동차 개발을 시작했지만 자동차는 산업혁명의 본고장 영국이 아닌 독일에서 먼저 탄생하게 된다.</p>
<p>본격적인 자동차의 시작은 어떤 엔진을 장착 했는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칼 벤츠가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만들어 가솔린 단기통 엔진을 얹고 특허를 받은 1886년, 독일의 고틀립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 역시 이미 만들어뒀던 가솔린 엔진을 만들어 마차에 얹었다. 칼 벤츠의 차보다는 마차에 가까웠지만 이들의 엔진은 마차, 보트를 비롯한 여러 곳에 쓰기 위해 개발했다. 이들이 만든 경량 휘발유 엔진으로 인해 자동차 업계는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경쟁사라고 볼 수 있는 자동차 회사들이 다임러의 엔진을 가져다 차를 만들었다. 유럽은 자동차 제작에 빠져들었고 같은 시간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헨리 포드에 의해 자동차 제작이 대중화 단계에 들어간다.</p>
<div id="attachment_5375" style="width: 610px" class="wp-caption alignnone"><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2-1903-ford-A.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75" alt="미국 헨리 포드가 만든 '모델 A'"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2-1903-ford-A.jpg" width="600" height="443" /></a><p class="wp-caption-text">미국 헨리 포드가 만든 &#8216;모델 A&#8217;</p></div>
<p>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독일에서 개발했지만 자동차 대중화에 큰 공을 세운 것은 미국인 헨리 포드다. 1903년 포드 모델 A를 거쳐 1904년에는 모델 C를 내놨고 1908년에는 모델 T를 선보인다. 직렬 4기통 2896cc의 엔진으로 최고속력 68㎞/h를 낸다. 포드의 모델 T는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포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차를 살 수 있도록 저렴하고 빨리, 많이 만들기 위해 모델 T를 내놨다. 이때, 한 차를 완성하는데 여러 명이 달라붙어 부품을 가져다 붙이는 방식을 벗어났다. 작업자들은 정해진 자리에 서 있고 자동차를 얹은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인다. 뼈대부터 바퀴까지 순서대로 부품을 조립하면 하나의 차가 완성된다. 이 방식으로 포드는 1908년부터 1927년까지 1,500만7,003대의 모델T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조립 과정에서 페인트가 빨리 마르도록 검은색만 사용하기도 했다. 1910년 이전의 자동차들은 이제 막 공장에서 도로로 나온 놀라운 발명품이었다. 또한, 대량 생산의 기술까지 등장하며 전 세계에 자동차를 알리는 시발점이 됐다.</p>
<p>▲ 페이턴트 모터바겐, 1885년<br />
독일의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다. 1878년 개발한 1기통 2행정의 가솔린 엔진으로 3개의 바퀴 위에 마차와 비슷한 형태를 갖췄다. 1885년 2인승으로 개량하고 1기통 4행정 엔진을 넣으며 드디어 현대적인 자동차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완성됐다. 초기에는 0.75마력(hp)에 불과했다. 이듬해인 1886년 칼 벤츠는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이는 차’로 특허를 받았다.</p>
<p><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3-1903-60-hp-Mercedes-Simplex-racing-car.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376" alt="사진3 1903-60-hp-Mercedes-Simplex-racing-car"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3-1903-60-hp-Mercedes-Simplex-racing-car.jpg" width="1024" height="674" /></a></p>
<p>▲ 메르세데스 60hp, 1903년<br />
아직까지도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증기기관자동차와 느리고 주행거리가 짧았던 전기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시절에 메르세데스는 무려 9293cc의 초대형 가솔린 엔진을 얹은 차를 내놓는다. 최고속력은 무려 117㎞/h였다. 당시 잘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가 40㎞/h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속도였다.</p>
<p>▲ 포드 모델 A, 1903년<br />
유럽에서 자동차 개발이 한참인 시대, 미국에서도 자동차 개발이 붐을 이루고 있었다. 일부에는 전기자동차가 달렸고 이를 위한 충전 시설도 곳곳에 설치됐었다. 자동차 대량생산으로 유명한 헨리 포드는 1896년 첫 차를 만들었고 1903년 1668cc의 수평대향 2기통 엔진을 장착한 ‘모델A’를 내놨다. 시카고의 치과의사 어니스트 페닝이 첫 주인이 된 이 차는 이후 1년 만에 1750대나 생산하게 된다. 2인승과 4인승으로 만들었으며 천정을 옵션으로 제공했다.</p>
<div id="attachment_5377" style="width: 810px" class="wp-caption alignnone"><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4-Fiat_16-24hp_Coupe-Sedan_1903.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77" alt="피아트 16-20 HP"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4-Fiat_16-24hp_Coupe-Sedan_1903.jpg" width="800" height="476" /></a><p class="wp-caption-text">피아트 16-20 HP</p></div>
<p>▲ 피아트 16-20 HP, 1903년<br />
이탈리아에서도 같은 시기 자동차를 만들었다. 뒷바퀴 굴림 방식을 채용하고 4기통 4179cc, 20마력(hp)의 엔진을 얹었다. 또, 4단 변속기를 장착해 시속 71㎞/h까지 달렸으며 현대적인 자동차에 가장 근접한 형태로 등장했다. 1906년까지 해마다 개량을 이어가 총 691대를 만들었다.</p>
<div id="attachment_5378" style="width: 474px" class="wp-caption alignnone"><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5-rover-8hp-04.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78" alt="로버 8HP"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5-rover-8hp-04.jpg" width="464" height="340" /></a><p class="wp-caption-text">로버 8HP</p></div>
<p>▲ 로버 8HP, 1904년<br />
영국의 로버 자동차는 최초의 4륜구동차를 만들었다. 다임러에서 일하던 에드먼드 W. 루이스가 로버에 들어와 개발했다. 백본 형태의 엔진 크랭크케이스와 기어박스 하우징, 리어엑슬을 갖췄고 1327cc 1기통 엔진에 페달 형태의 가속장치를 장착했다. 로버트 제퍼슨과 로버트 웰라스가 이 차를 타고 영국 자동차의 고향 코번트리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달려 첫 유럽횡단 자동차의 기록도 가졌다.</p>
<div id="attachment_5379" style="width: 680px" class="wp-caption alignnone"><a href="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6-1910Ford-T.jpg"><img class="size-full wp-image-5379" alt="포드 모델 T" src="http://www.motorian.kr/wp-content/uploads/2013/07/사진6-1910Ford-T.jpg" width="670" height="527" /></a><p class="wp-caption-text">포드 모델 T</p></div>
<p>▲ 포드 모델 T, 1908년<br />
최초의 대량생산차로 등장했다. 수제작으로 차를 만들던 헨리 포드는 좀 더 많은 차를 이른 시간에 만들어 단가를 낮추기로 했다. 생산 라인을 따라가며 부품을 얹는 일명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포드는 대량 생산을 시작한다. 1908년 간결한 디자인의 모델T를 발표한 포드는 6850대를 판매했고 이듬해에는 1만 대를 판매했다. 이후 1913년 포드 모델T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이용한 최초의 대량생산차로 인기를 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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